다음은 아베 신조의 배후 ‘일본회의’의 설립선언의 일부이다.
...국민의 충실한 노력을 토대로 나라를 경제대국으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런 놀랄 만한 경제적 번영의 그늘에서 일찍이 우리 선조가 키우고 계승한 전통문화는 경시되었고, 빛나는 역사는 잊히고 오욕되었으며, 국가를 지키고 사회공공에 힘쓰던 기개는 사라졌다. 그 결과 오직 개인의 보신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풍조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여 바야흐로 국가를 무너뜨리고 있다.
아울러 냉전구조가 붕괴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오류는 철저히 폭로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는 각국이 노골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새로운 혼돈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에는 이 격동의 국제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확고한 이념과 국가목표가 없다. 이대로 무위도식한다면 망국의 위기가 소리 없이 닥쳐오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주.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겪어왔고 일본은 빨리 격동의 시대를 인식했다.
최근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지만 한국은 아무런 인식도 없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으로서 혹독한 자각에 근거하여, 국가발전과 세계공영에 공헌할 수 있는 활기찬 국가건설과 인재육성을 추진하고자 본회를 설립한다.
[주. 한국의 얼빠진 엘리트들에겐 이런 결사조차 없다.]
일본 국회의원 중 약 270여 명 정도가 일본회의 회원이다. 이는 일본 중의원 총원의 40%에 달한다.
일본회의 창립 멤버인 전 총리 아베 신조를 포함해,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당시 기준으로 각료 총 20명 중 15명이 일본회의 회원이었다. 현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와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 아소 다로 전 총리도 회원으로 소속되어있다.
일본의 과거는 무치사회이고 패도가 전통이므로 일본의 복고는 폭력성을 수반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으로의 복구는 일본처럼 폭력성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한국전쟁 이후 병영국가가 된 것이 한국사에선 더 이례적이다.
한국의 전통이란 무엇인가.
단연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 본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한국인은 최소 삼국시대부터 이러한 미학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고조선인이 입던 흰옷은 오늘날 자동차의 무채색과 같다.
헌법 제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도 이와 같은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남북이 경쟁적으로 어떤 ‘주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며 전통까지 파괴한 결과, 북한은 다만 누추해졌고(陋), 남한은 다만 사치스러워졌다(侈)
그 결과 두 체제는 종말을 앞두고 있다. 북한은 중세 조선보다도 못사는 경제난으로, 남한은 중세 조선보다 낮은 저출산으로.
어느 쪽이 먼저 종말을 맞을지가 궁금하다.
이게 한민족의 한계일까?
이쯤에서 일본을 지키는 모임(1974), 일본회의(1997)에서 내건 활동 목표를 살펴보자. 일본의 전통과 한국의 전통은 앞서 말한 바 차이점이 있으나 공통점도 있다.
* 일본식 성풍속 복고
* 천황 중심의 전통적 남성 중심 사회 건설
* 부부별성 법안에 반대
* 페미니즘 운동 저지
* 젠더 프리(성소수자) 교육의 시정
나머지 부분(평화헌법, 천황제) 일본 특유의 전통과 상황과 관계있어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슈이다.
다만 성 이슈에 관해서만 한국의 전통과도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은 과거 모든 국가가 그러했으므로 이 전통이 없는 사회를 찾기 더 힘들다.
이를 손보지 않고서는 경제대국 일본조차 영광과 기풍을 다시 재현할 수 없음을 한국과 달리 일본 고위층은 모두 알고 있다.
반대로 한국 최고의 간첩 문재인이 가장 주안점을 두고 강력하게 밀어부친 정책은 페미니즘이다.
남성 우위는 커녕 여성 우위를 손보지 않고 방치하면 한국은 망가질 것이며
눈감고 죽을 때 쯤이면 어떤 식으로든 한국은 파괴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뒤에도 견해를 달리하지 아니하고 전정권의 정책에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아니하니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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