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과 여성성 각 소비의 총합은 비슷하다

그런데 여성성은 무제한으로 소비를 탐하는 반면, 남성성은 기본적으로 소비욕구가 크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성성은 소비욕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성과 소비의 총합이 비슷할 수 있을까?

비결은 전쟁으로 인한 리셋과 복구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군수물자와 전후복구를 위한 생산이 이뤄진다



2차대전을 거치며 점차 여성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남성성이 극우로 몰린 것도

(1) 전쟁방지 (2)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도 소비 활황

2개가 핵심이다.

따라서 이 2개를 논파하는 것이 핵심이다.

후자에 대한 이론적 배경은 대공황 이후 나타난 케인즈이론 일 것이다. 인위적으로 소비를 존나게 해줘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종국에는 청교도 윤리의 붕괴를 낳았다



한국도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남의 나라 계집의 소비욕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장도 개방하라는 압력을 받았고(한국 계집의 소비욕구를 이끌어내라)

그것이 극적으로 폭발한 형태가 IMF고 곧바로 이어진 여성부 설립이다.

마찬가지의 요구를 받고 굴복한 일본은 김영삼의 무례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구원하려 애썼지만 미국은 일본에 한국을 돕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미국 자기들이 먼저 계집 통제권을 놔버리고 한국, 일본에도 같은 요구를 하며 이것을 세계화라고 한 것이다.

IMF 이후 한국 엘리트들은 좌우 할 것 없이 충실하게 새로운 세계 질서에 녹아들었다

세계 누구보다 당연히 일본보다도 더 열심히 숭녀억남 정책을 하며 출산율을 떨구는 대가로

미국 엘리트들의 기대에 부응한 결과(전세계로 수출된 k-pop k-drama도 계집의 소비욕구 팽창에 효과적이다.)

한국의 인당GDP는 드디어 일본에 맞먹게 되고 세계화의 과실을 향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세속화와 반비례하는 출산율은 0.6을 찍고 나라는 소멸위기다.

괜히 일본이 이런 극단적인 길을 택한 한국을 혐오스러운 나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결과 발생한 극단적인 출산율이다.

세계적 주류로 자리잡은 ‘숭녀억남’으로 (1) 전쟁방지 (2)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도 소비 활황 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데

후자의 경우는 생각해봐야하는 것이, 결국 미래를 팔아서 현재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출산율이 무너져 나라가 없어지면 지금 소비를 일으켜서 억제로 경제 펌핑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결국 소비해줄 인간이 사라지면 대공황은 필연적 아닌가?



전자의 경우에도, 숭녀억남을 하지 않고도 전쟁을 막는 종교 ‘반례’가 존재한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바로 유교이다. 유교는 춘추전국 혼란기에 만들어졌다.

출산율을 위해 숭녀억남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도, 남성성의 발현인 전쟁만큼은 극도로 억제하므로

전쟁방지와 출산율이라는 두 목표에는 그야말로 최적이다.



남성성 기질을 억제한다는 점은 자본주의 경쟁 환경과 맞지 않아보이지만 이는 전통적인 출세 경쟁의 연장으로 해결하면 되고,

그것이 맞물려 동아시아의 산업화 근대화는 성공했다.

또한 여자의 소비 욕구 억제가 대공황을 일으킬 것 같지만 이는 한국여자의 극단적 유행추종 소비 성향을 생각해볼 때 유교 같은 종교를 동원해야만 간신히 억제하는게 가능한 수준이다.

조상들조차 윗세대조차 실제로는 와이프에 잡혀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유교로 간신히 억제한다하여 한국여자의 기질이 완벽히 통제될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이 내재적인 한국여자의 기질로 인해 인위적으로 유교를 발달시켰을지 모를 일이다.



사회문화적 보수화를 파시즘이라 공격해대는 세력에겐 이만한 대응이 없다.

폭력성이 배제된 유교로는 전쟁광 파시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도 어느 정도 이뤄지면서, 출산율을 회복하고, 전쟁방지까지 되는 종교는 유교가 최적이다.

애초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적절히 섞어 대국은 소국을 침략하지 않고 베풀고, 소국은 대국을 존중하고 이 관계가 군신, 부자, 남녀 모두에 적용되고

괜히 평화의 종교라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과도한 평화와 안정은 정체를 낳지만, 새로운 트렌드에 맞게 농본을 버리고 남성성의 기질을 경제 산업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시키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일본이 그렇다.

싱가폴도 유교 권위주의의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