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젠가와 같다
한국의 위상은 그 절대적인 높이만 봤을 때 분명 낮은 편이 아니다. 현 시점만 두고 보았을 때 충분히 상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나라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한국의 위상은 한국 사회는 젠가 게임에서 밑의 젠가를 뽑아 맨 위에 쌓는 방식과 같이 높게 쌓아올린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를 빠르게 높이 쌓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보니 내실과 기반을 완고하게 다지며 튼튼하게 쌓아올린 건물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자본을 갈취하며 매우 부실한 구조로 거품을 잔뜩 만들며 쌓아올렸다.
블록의 갯수는 한참 부족한데 블록이 더 많은 국가들을 따라잡으려다보니 시작부터 부실하게 쌓아올렸고, 그 와중에도 한계가 보이니 아랫층에서 건물을 지탱하던 블록을 빼와 그걸로 쌓아 올려온 것이다.
아랫층의 블록을 뽑아 가장 위에 올리다보면 점점 젠가 타워의 높이는 상상하는 반면, 아랫층의 구조는 당연하게도 점점 부실해진다. 처음에는 분명 대충 슥 뽑아도 안전하게 잘 뽑혔던 반면 후반부로 갈 수록 블록 하나 뽑는데에도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구조는 임계점을 넘기 직전의 젠가 타워다. 어떤 층에서든 무슨 블록 하나만 뽑아도 우르르 무너지게 생겼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발전의 미래는 결국 젠가처럼 완전히 풍비박산나도록 무너지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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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거대 집합체는 반드시 종교가 존재했다.
집합의 크기가 커지면 개인의 소속감 없이는 조직이 유지되지 못한다.
거대 문명의 접착제가 종교인 셈이다.
역사속에 수천개의 종교가 생기고 사라졌지만
수천년을 살아남은 종교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장수한 종교들은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가치관들이 있다.
금욕, 속죄주의, 양심 강조, 사회속에서 역할 강조,
도덕 중시, 남녀의 역할 구분 등등 생각해보면
문명이 지속되기위해 꼭 필요한 덕목들이다.
종교는 문명에게 일종의
수천년의 노하우가 축적된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했다.
종교와 작별한 문명은 불안정하다.
근대 문명이 비교적 잘 작동했던 까닭은 종교의
관성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국가 정체성, 가족중심 공동체, 엄격한 성문화
수직구조의 계급 사회, 단일인종 국가,
여전히 비교적 높았던 종교인구 등등
많은 구조가 관성처럼 지탱하고 있었다.
특히 서울 바로 위에 북한이 있는 한국은 그런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근대 유럽의 패망으로 주도권이 미국에게 옮겨진 후
미국문명은 단기간의 팽창을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골조를 부수고 있었다.
쾌락주의, 1인 중심 사회, 다인종 국가, 정체성이 없는것이 정체성.
골조가 부서진 건물은 무너져내릴수 밖에 없었다.
미국 문명과 그와 동조된 유럽 문명은
현대에 와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둘씩 발생하기 시작한다.
서구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낮아지는 범세계적 저출산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미국 문명은 딱 한 세대의 영원한 젊음과 쾌락
충족을 끝으로 패망하는 1회용품 사회가 되었다.
미친듯이 소비하고 생산하지만
대부분의 구성원은 제자리 걸음을 아니
오히려 실질적인 부는 퇴화하고 결혼은 커녕
혼자 살 돈도 빠듯해 지속 불가능한 사회로 퇴화한다.
원래라면 괴사해야할 문명은 비 서구 문명권의 인구를
수혈해서 이를 강제로 지속시킨다.
문명의 물리적 조건, 자원 배분이 고장난 것이다.
문명의 정신적 조건도 수명을 다해간다.
미국 주도 문명의 피상적인 속물 근성은 성 정체성,
국가 정체성, 역사, 종교, 신념 모든것을 증발시켜 버리고
쾌락만을 남겼다.
종교에서 교훈으로 드는 지속 불가능한 문명이
미국이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결정적인 대립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인들의 소비가 곧 수출이지만
미국의 지속불가능성도, 한국의 지속불가능성도 중요한 문제다.
야생에서 있는 식물을 집에서 키운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물만 줘도 잘 자라니 키우기 쉽다고 오만에 빠질 것이다.
처음 자연을 정복한 근대 문명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변수가 양호했기 때문이다.
토양의 상태, 습도, 온도, 햇빛의 세기 등등
수백가지 변수가 한가지만 틀어져도 순식간에 식물은 시든다.
종교 중심의 문명은 야생에 있는 자연 발생 식물과도 같다.
그리고 과학을 통한 종교와 독립한 문명은
인위적이고 집에서 키우는 식물과 같다.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전부 고려하지 않으면 식물은 시든다.
집에서 식물을 키운 순간 모든 변수를 신중하게
컨트롤해야지만 식물은 죽지 않는다.
이제 식물을 키우는 자는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소스는 무갤 탈갤에서 상당히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