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번햄, 『마키아벨리주의자들: 자유의 수호자들』


제3부 모스카: 지배계급론


V 최고의 정부와 최악의 정부


모스카는 마키아벨리처럼 정치적 삶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데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어떤 정부가 최고이고 어떤 정부가 최악인지 자신의 선호와 의견을 분명하게 밝힌다. 모든 마키아벨리주의자가 그렇듯, 그의 목표는 초자연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좋은 정부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완벽한 국가'나 '절대적 정의'를 꿈꾸지 않는다.


사실 모스카는 단테를 논할 때 언급했던 맥락과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 유토피아와 절대적 정의(正義)를 약속하는 정치 이론은 겉보기에는 매혹적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훨씬 더 나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상적 프로그램은 본래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들이 자신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가면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절대적 정의를 실현하기 불가능하다 해서 노력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사회에서 도달할 수 있는 근사치만큼이라도 정의를 이루려는 노력은 여전히 가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지닌 한계를 고려할 때,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는 있어도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이상적 정의에 온전히 부합하는 정치 제도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러한 이상론이 수많은 사람의 지적·도덕적 에너지를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에 쏟아붓게 만들 때, 그것은 명백히 위험해진다. 그 허황된 목표가 실현되었다고 선언되는 날, 그 결과는 결국 가장 사악한 자들의 승리와 선량한 이들의 고통 및 실망으로 끝날 뿐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버크(Edmund Burke)는 백여 년 전, 초인적이거나 영웅적인 미덕을 전제로 삼는 정치 시스템은 결국 악덕과 부패만을 낳을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배 계급』 288쪽)


“인간이 진정 하느님의 형상과 모습을 닮아 가기 전까지 이 세상에 절대적 정의란 존재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법 잘 조직된 사회에는 언제나 상대적 정의가 존재해 왔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시대와 민족에 따라 형태는 다르더라도 여론이 제정하고 집행하는 법률, 관습, 규범의 총체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규범에 따라, 우리가 흔히 우위를 점하기 위한 투쟁이라 부르는 것, 즉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고 드높이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조율된다.” (『지배 계급』 456쪽)


모스카는 마키아벨리를 따라,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도 한 '상대적 정의(正義)'의 핵심 요소로 자유를 꼽는다. 그는 이 '자유'라는 개념을 '사법적 방어(juridical defence)'라는 용어로 규정하며 그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한다.


"도덕 관념을 규율하는 이러한 사회적 기제가 바로 '사법적 방어', 즉 법에 대한 존중과 법치주의다. 나아가 우리의 이러한 관점은 인간이 본래 선하지만 사회가 그를 악하고 타락하게 만든다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교리와 정반대다. 우리는 사회 조직이 인간 개개인을 상호 제어함으로써 그들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고 믿는다. 이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없애서가 아니라, 악한 본성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지배 계급』 126~127쪽)


"귀차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는 정치적 자유를 '특정 개인의 욕망보다 법률과 공공의 명령이 우위를 차지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특정 개인'을 권력을 쥔 이들을 포함한 '개개인'으로 이해한다면, 이보다 더 엄격하고 과학적인 정의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의 이름이든 인민의 이름이든, 통치자가 '자신의 뜻을 법으로 정당화하는' 부패한 정부는 사법적 방어라는 본연의 임무를 결코 완수할 수 없다." (『지배 계급』 130~131쪽) 


"가장 자유로운 국가란 통치자의 자의적인 변덕과 독재로부터 피통치자의 권리가 가장 잘 보호되는 나라다." (『지배 계급』 13쪽)


결국 사법적 방어란 단순히 헌법이나 법률의 문구에만 머무르는 형식적 법치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법과 적법 절차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즉, 권력자에게는 비인격적인 제약을 가하고, 이에 대응해 국가와 권력자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법적 방어의 구체적인 모습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민주적 권리'다. 


"지금껏 자유롭다고 인정받아 온 나라에서는 사유재산을 자의적으로 침해할 수 없다. 시민은 정해진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체포되거나 처벌받지 않는다. 누구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믿을 수 있다. 언론은 검열을 받지 않으며 정부 정책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정한 규칙만 따른다면 시민들은 정치적 토론을 위해 모일 수 있고, 도덕적·정치적·직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단체를 결성할 수도 있다." (『지배 계급』 469~470쪽)


모스카는 이러한 모든 권리 중에서도 흔히 표현의 자유라 부르는 '공개 토론의 권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나아가 이 권리야말로 사법적 방어 전체를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토대라고 보았다.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사법적 방어가 필수적이다. 모스카의 정의에 따르면 문명의 수준은 '사회적 힘(social forces)'의 개발 정도와 그 종류의 수로 측정된다. 즉, 사회적 힘이 다양할수록, 그리고 각 힘이 완전하게 발달할수록 그 문명의 수준은 높아진다. 예술과 문학, 상업, 과학, 산업이 활발하게 작동하고 강한 군대와 진보적인 농업까지 갖춘 문명은, 이 중 한두 가지에만 치중하거나 대부분의 분야가 평범한 수준에 머무는 문명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문명의 수준'이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문화를 평가하는 대략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높은 수준의 사법적 방어와 문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우리는 모스카의 사상 중 가장 깊이 있고 중요한 핵심에 도달하게 된다. 이 역시 마키아벨리에게서 비롯된 생각이다. 게다가 모스카가 내놓은 답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여러 이론과 확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지배 계급을 대변하는 거의 모든 대변인의 주장과도 정면으로 대치된다.


법률과 헌법, 혹은 제도적 장치라는 단순한 형식적 구조만으로는 사법적 방어를 보장할 수 없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 헌법과 법률은 실제 현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히틀러는 바이마르 헌법을 폐지한 적이 없었고, 스탈린은 '세계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채택하라고 명령했다. 형식적으로 가장 완벽한 조직 체계도 마찬가지다. 단원제든 양원제나 삼원제든, 독립형이든 책임형이든, 국왕이든 대통령이든, 성문 헌법이든 불문 헌법이든, 법관 임명제든 선거제든, 이러한 형식적 절차에 대한 결정은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그 어떤 이론도, 인간의 선의에 대한 기대도 신뢰할 만한 보장책이 되지 못한다. 권력을 원하고 그것을 쟁취할 능력이 있는 자들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선의를 품지 않으며, 언제나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더 큰 권력만을 좇기 때문이다.


실제 사회생활에서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또 다른 권력뿐이다. 사법적 방어는 다양하고 상반된 성향과 세력들이 함께 작동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제어할 때만 공고해진다. 최악의 정부 형태인 독재는 사법적 방어가 상실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사회의 어느 한 성향이나 세력이 다른 모든 것을 흡수하거나 억누르는 데 성공할 때마다 사법적 방어는 예외 없이 사라졌다. 최고 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통치하게 되고, 개인은 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도가 없어진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전제주의적 원리와 자유주의적 원리 사이, 그리고 귀족주의적 성향과 민주주의적 성향 사이에서 보호 장치 역할을 하는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귀족주의적 성향이 권력을 독점하면 폐쇄적이고 경직된 카스트 제도가 고착화되어 사회가 화석처럼 굳어버린다. 반면 민주주의가 극단에 이르면 고삐 풀린 무정부 상태가 되어 사회 질서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요 사회 세력들 사이에 대등한 균형이 이루어지거나, 최소한 그 어떤 세력도 나머지 모두를 압도할 수 없는 가변적 균형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설령 다양한 세력과 종교, 정당 사이의 갈등과 경쟁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수많은 유토피아주의자가 꿈꾸는 세상)이 실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그리 바람직한 세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인간과 사물을 차분하고 냉철하게 생각하고 관찰하며 판단할 자유는—비록 소수의 개인에게만 허용되었을지라도—수많은 종교적·정치적 조류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온 사회에서만 늘 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조건은 흔히 말하는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즉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 존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다." (『지배 계급』 196쪽)


"역사는 시대를 통틀어 어떤 사회 조직이 문명의 수준을 높이는 데 유익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때마다 예외 없이 권력자들의 개인적·집단적 의지가 다른 이들에 의해 억제되고 균형을 이루었음을 가르쳐 준다. 이 '다른 이들'이란 완벽하게 독립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들이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할 권력자들과 어떠한 공통의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다원적인 정치 세력이 존재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많은 서로 다른 길이 열려 있는 것은 그야말로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지배 계급』 291~292쪽)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 자유란 통합과 조화의 산물이 아니라, 갈등과 차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관념주의', '이상주의', 그리고 '대중 선동'이 왜 위험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관념주의자와 이상주의자, 선동가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세력이 절대적으로 승리할 때 비로소 정의롭고 좋은 사회가 실현된다고 늘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의 사실들은 그 어떤 세력이든, 그 어떤 이론이든 단 하나의 원칙이 절대적으로 승리하는 순간 그 끝은 오직 독재뿐임을 보여준다.


"단일한 정치 세력의 절대적인 우위, 국가 조직 내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개념의 득세, 모든 공법에서 단 하나의 원칙만을 엄격하게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것 등은 모두 전형적인 전제정치의 핵심 요소다. 그것이 신성한 권리에 기반한 전제정이든 표면상 인민 주권을 내세운 전제정이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일방적인 구조는 권력을 잡은 자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월한 지위를 더 철저하게 악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이나 민주주의적 광신에 깊이 물든 사회에서, 지배 계급의 지도자들이 신의 뜻이나 인민의 뜻을 독점적으로 해석하고 그러한 추상적인 개념의 이름으로 주권을 행사할 때, 그리고 국가 주권의 기반이 되는 지배 원칙을 대변하는 세력 외에 독립적으로 조직된 다른 사회적 힘이 존재하지 않을 때, 사회 권력의 정점에 선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려는 본능적인 성향을 저지할 방도는 전혀 없다. 그 어떤 저항도, 실질적인 통제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배 계급』 134쪽)


모스카가 자신의 주요 저작을 개정했던 1923년 당시(영어 번역본은 이 개정판을 바탕으로 삼았다), 그는 19세기의 위대한 의회주의 대의정부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문명과 사법적 방어를 이룩했다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여러모로 볼 때 이는 모스카가 가졌던 매우 주목할 만한 견해다. 그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이론의 토대 전체를 무참히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현대 의회 정부 아래에서 자행되는 구체적인 폐해들을 신랄하게 폭로하는 데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했다. 일례로 그는 집단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이론이 지닌 힘은 긍정적인 대안보다는 부정적인 측면, 즉 현재의 사회 조직에 가하는 세밀하고 날카로우며 자비 없는 비판에서 나온다"고 언급하며(286쪽), 그러한 비판이 상당 부분 정당하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스카는 이상향이나 절대적 정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사회는 늘 다른 곳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실제 현실에서는 '가장 덜 악한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세기 의회주의 국가들은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나라들보다 비교적 우월했다. 이들 정부 구조에서는 관료제를 통해 작동하는 전제주의적 원리가 의회를 통해 표현되는 자유주의적 원리와 균형을 이루었다. 가문과 상속이라는 귀족주의적 성향은 신생 세력의 활력 넘치는 인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지배 계급에 진입할 수 있게 되면서 적절히 견제되었다. 무엇보다 이들 정부 아래에서는 단 하나나 소수의 사회적 세력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세력들이 놀라울 정도로 확장되었으며, 그 어떤 세력도 나머지 세력 위에 독점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덕분에 문학뿐만 아니라 상업, 교육과 과학, 기술과 예술이 모두 함께 번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의회 정부에 대한 그의 판단은 자신의 일반 원칙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과였다. 그는 의회제 그 자체를 찬양한 것이 아니라, 19세기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의회제가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문명과 사법적 방어를 동반했기에 이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모스카는 19세기형 의회 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체제가 반드시 지속되리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소망과 앞으로 일어날 현실을 혼동하는 것은 단테처럼 정치를 염원으로 해석하는 이상주의자들의 오랜 버릇일 뿐,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스카는 19세기 국가들이 경험했던 형태의 의회 정부가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믿었다.


그는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1789년 프랑스 혁명과 함께 시작된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보았다. 의회 정부는 그 시대가 이룩한 위대한 사회적 성취였으나, 이제 그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새로 막 시작되는 시대에는 이들 정부가 다른 체제로 대체될 터였다. 그는 새로운 사회 조직이 기존의 의회 대의제보다 더 우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유럽이 현재 겪고 있는 난관을 극복해 낸다면, 다음 세기 동안 혹은 그 반세기 안에 새로운 사상과 감정, 요구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 지금 존재하는 그 어떤 시스템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정치 체제의 기틀을 마련해 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배 계급』 490쪽)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유럽이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사실은, 결국 극단적이고 파멸적인 해결책들이 시도될 것임을 암시했다. 모스카는 이러한 극단적 시도가 자유를 파괴하고 문명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믿었다. 일말의 낙관론을 가질 여지는 남겨두었을지언정, 눈앞의 현실은 온통 비관적인 전망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류 역사를 선입견 없이 바라볼 때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은, 모순된 자질을 지닌 이 가련한 인류에 대한 연민이다. 우리 인류는 때로 자기를 부인하고 개인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숭고하지만, 도덕적·물질적 발전을 이루려는 모든 시도는 예외 없이 증오와 원한, 그리고 가장 비열한 욕망의 분출을 동반해 왔다. 참으로 비극적인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늘 자신이 선이라고 믿는 것을 추구하고 달성하려 갈망하면서도, 서로를 학살하고 박해할 구실을 끊임없이 찾아내니 말이다. 과거에는 종교적 교리나 성경 구절의 해석을 두고 서로를 죽이고 박해했다. 그다음에는 자유와 평등, 박애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명목으로 칼을 겨누었다. 오늘날에는 또 다른 신념의 이름으로 서로를 학살하고 박해하며 잔혹하게 고문하고 있다. 어쩌면 내일은 지구상에서 폭력과 불의의 마지막 흔적까지 소멸시키겠다는 구실로 서로를 죽이고 고통 속에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지배 계급』 198쪽)


James Burnham, The Machiavellians: Defenders of Freedom (Endeavour Media Ltd, 2019), pp. 7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