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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소개할 레전드 볼러는 '딕 웨버' Dick Weber


시작 전에 뭔가 익숙한 이름이지 않은가? 한번쯤 들어봤었을 이름이다

바로 월드 볼링스타 피트웨버의 아버지이고 딕 웨버 대회투어라든지

그의 이름을 차용한 것들이 많기 때문임 이제 시작하겠다


격동의 미국 1929년 걸출한 볼링스타가 태어난다

1929년 10월 미국은 대공황이 시작되고 미국엔 커다란 암흑기가 도래함

부유하게 자라지 못하고 어렵게 큰 딕 웨버는 어려서부터 잡일을 다 도맡아 했음


길거리 사진사부터 우편 배달같은 잡일을 통해 생활을 이어나가던 딕 웨버에게 있어서

여러 잡일중 볼링장 알바는 인생에 있어 엄청난 터닝 포인트였음


1930년 미국에서는 볼링이 꽤 인기있고 매력적인 스포츠산업으로 성장하게됨

돈줄이 될 것이라는 강한 촉이 온 기업들이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고,

볼링경기를 자동으로 세팅해주는 기계들도 발전을 하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임

2차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는 볼링장도 많은 수가 들어서고 볼링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음

지금이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흥한 스포츠였음....

시장 규모가 수조원 대였는데, 존나 멋진 마초남의 이미지를 부여했고, 미군의 지지도 한몫했다고 함


볼링장 알바를 하던 가난했던 딕 웨버는 볼링장 영업이 끝나고,

공짜로 볼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됨

볼링장에서 상주하던 볼링 선수들에게도 볼링을 배우고

워낙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금방 남보다 월등한 볼링 실력을 가지게 됨


이후 본격적으로 10대 후반부터 볼링선수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각종 대회에서 좋은성적을 거두기 시작함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두곽을 나타내서 인지 1955년 최초의 프로 볼링팀에서 들어가게됨

근데, 볼링팀을 후원하던 회사가 버드와이저였음


당시 미국 프로볼링은 맥주회사들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았는데, 각종 투어부터

선수들 후원까지 아낌없는 투자를 쏟았는데, 이는 과거시절 스포츠로서 잘 나가던 볼링의 인기를 증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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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딕 웨버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했고,

자잘한 투어부터 큰 대회까지 좋은 성적을 이어나갔음


팀 성적도 뛰어나서 고향 세인트 루이스에서 열린 5인 스쿼드 대회에서

3,858핀을 넘기고 138의 스트라이크를 남기는 등(1994년 기록이 깨지는데 수십년간 이어진 대기록)

호성적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함

딕 웨버는 버드와이저 간판모델로 나설정도였는데, 수입도 굉장히 좋았다고 함


1958년 PBA(미국프로볼링협회)가 설립되었고, 딕 웨버는 창립 멤버였음

1959년 열린 2번째 PBA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딕 웨버는 많은 우승을 쓸어담았음




지금처럼 리액티브 공이 없고, 갓 플라스틱볼이 나오면서

볼링볼의 반응이 처참했던 과거에는, 볼러 개인의 기술과 능력이 훨씬 더 중요했던 시기임


딕 웨버는 1,3포켓으로 진입하는데 있어서, 굉장한 정확도를 우선시했고,

남들보다 좀 더 볼의 회전력을 가미하였으며, 현대의 큰 움직임의 볼링과는 달리

잔잔한 무브먼트의 볼링을 구사하였음




전설의 1966년 Nelson Burton Jr와의 Dick Weber의 경기


당시 1->3->5->9코스로도 정확도로 많은 스트라이크를 기록한 딕 웨버는

통산 26개의 PBA 투어 타이틀을 보유해 이 부문 7위에 올라 있고,

그외 다수의 이벤트전과 대회에서 우승을 쓸어담음

1961, 1963, 1965년 3차례 'PB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그는 1977년 킹 루이스 오픈에서 47세에 마지막 PBA투어 우승을 하였고,

그 이후에도 시니어투어에서도 왕성한 볼링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는 볼링 스포츠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는데, 1964년 보잉 707기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서

볼링을 했고, 많은 쇼에도 나타나 홍보활동을 펼쳤고, 볼링 교육비디오 촬영도 찍었음

많은 선수들이 볼링을 시작하게된 계기가 딕 웨버의 경기를 본 후에 영감을 받았다는 선수들이 많았음


딕 웨버는 2005년 75세의 나이로 별세함

그 날은 USBC의 회의에서 도착한 직후였을 정도로, 심각한 병세가 있던것이 아니었는데 갑작스런 사망으로

주변을 안타깝게했음 마지막까지 볼링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하직하셨음


딕 웨버는 1975년 PBA 명예의 전당 1999년 위대한 볼러 투표에도 1위로 뽑혔고,

그의 이름을 딴 투어대회도 있고, 그의 이름을 딴, 레인패턴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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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웨버는 볼링 실력뿐 아니라, 볼링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위대한 헌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영화배우급의 존잘러였으며 유려한 몸놀림으로 볼링계의 슈퍼스타이며 레전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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