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상판이 허리에 붙어있는 짭경 손을 떼어내며 말했음.
”누구.” 짭경은 핸드폰에 시선을 그대로 두고 떨어진 손을 부러 집요하게 붙이며 물어봄. 사실 상판이 짭경한테 좋아하는 사람 얘기한 건 한 두번이 아니었고 대부분 짝사랑으로 끝났음. 그리고 짭경은 그런 상판을 어릴 때부터 쭉 좋아해왔음.
“적센이라고, 우리 반 반장이야.”
짭경은 적잖이 놀랐음. 상판이 좋아하는 상대로 남자를 얘기한건 이번이 처음이었음.
상판은 짭경을 그냥 편한 형으로만 생각했음. 어릴 때 부터 봐온 가족같은 사이라서 짭경이 자기를 좋아할거라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음.
적센의 좋은 이유를 시도때도 없이 말해대는 상판을 보면서 짭경은 기분이 좋지 않았음.
“나 바쁜 일 생겨서 먼저 간다.” 상판이 자기 신경도 쓰지 않을거라는 거 알면서 괜히 투정부리듯이 상판 집을 나와버렸음.

반장 적센은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인기가 좋았음. 반에서 항상 소극적이고 거의 혼자 다니는 상판을 유일하게 챙기는 존재였음. 조별 활동에서 혼자 남은 상판을 자기 조에 넣는다거나, 종례 끝나고도 엎드려 자고 있는 상판을 깨워주는 등 사소하게 챙겨줬음. 상판한테 특별히 관심이 있었다기보단 원래 그런 꼴을 잘 못 보는 성격이었음.
어떻게 보면 금사빠 상판이 적센을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음. 상판은 딱히 티내지 않았지만 적센은 곧 상판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 원래 그런 쪽으로 기민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칭찬해줬을 때 빨개진 귀나 가까이 다가갈 때 유난히 굳는 모습, 그러면서도 꾸준히 옆에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음.

적센은 상판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음.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내가 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건.. 좀 이상하잖아. 이런 이유였음.
적센은 상판을 밀어내지 않았지만 상판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상판이 하는 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음. 싫었던 게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상판 손을 탁 쳐내버림. 상처받은 듯한 상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해버렸고, 적센 머릿 속 상판의 비중이 점점 커져만 갔음.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상판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고 곧 자기도 상판을 좋아하게 됐다는 걸 깨닫게 된 적센이었음.

짭경은 집에 놓고 간 상판 넥타이 가져다 주러 도착한 2학년 교실 앞에서 상판 옆에 있는 키 큰 남자애를 보고 직감적으로 알게 됨. 쟤가 적센이구나. 그리고 쟤도 상판을 좋아하는구나. 내가 낄 자리는 없구나. 결국 넥타이도 돌려주지 못했음.

한편 상판은 짭경이 신경쓰이기 시작했음. 원래 자기 짝사랑 얘기, 연애 고민은 꼭 들어주고 위로해주던 짭경이 적센 얘기가 나오면 표정이 안좋아지다가 곧 자리를 떴음. 
“형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요즘 연락도 잘 안보고.. 형한테 못한거 있으면 말해줘. 고칠게.”
상판이 고심해서 카톡을 보내면 별 일 아니라며 둘러대고 피한 적 없다는 듯이 구는 짭경이 이상하고 서운했음. 우린 한 번도 멀어진 적 없었는데. 너무 내 얘기만 해서 질린건가.


시험기간이 끝나고 적센이 상판에게 말했음.
“상판아 시험 끝나면 나랑 영화보러 갈래? 아는 사람한테 표 공짜로 받았는데.”
”나? …나? 나랑?“
당연히 기뻐야 할 일인데 상판은 기쁘지 않았음.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적센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고 짭경한테 서운한 감정이 아직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음.
“바빠? 그럼 어쩔 수 없고…” 당연히 좋다고 신나서 말할 상판의 모습을 기대했던 적센은 약간 실망했음.
“아니야. 보러 가자. 나 영화 보는거 좋아해.” 상판은 적센에게 대답하면서도 답장이 오지 않는 짭경과의 카톡방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음. 짭경에게는 벌써 며칠째 연락이 오지 않았음.

결국 상판은 짭경의 집에 찾아감. 얼굴 보고 직접 말하면 풀겠지 하고.
인터폰으로 상판의 얼굴을 본 짭경은 연속적으로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문을 열어줬음. 만나면 쿨하게 응원해줘야지 했던 짭경의 다짐이 상판의 얼굴을 보자 마자 사라져버렸음.
“형 그냥 솔직하게 말해줘… 내가 질린거면 더 안 찾을게..”
아니라고 잡아떼던 짭경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상판에게 말했음.
“솔직히 나 니가 적센 얘기하는거 듣기 싫어. 니가 다른 사람 좋아하는 얘기 듣는거 이제 힘들어서 못 하겠다.”
“아… 너무 내 얘기만 했네. 그동안 귀찮게 굴었지…나 같아도 질리겠다. 미안..“
“짝사랑하는 상대 연애상담을 누가 하고싶겠냐고.”
상판은 정말 놀랐음. 그 오래 함께한 시간동안 짭경이 자기를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음. 동시에 짭경에게 너무 미안했음. 나 엄청 이기적이었네.
짭경은 그새 촉촉해진 상판의 눈가를 쓸어주며 말했음.
“적센한테 가. 너 걔 좋아하잖아.” 짭경은 이렇게 말하고 현관문을 닫아버렸음. 자기가 먼저 끊어내야 상판이 떠날 것 같았음.

적센과의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상판은 영화관으로 향했음. 우울함과 자기혐오로 가득차서 영화를 볼 기분이 전혀 아니었지만 적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았음.
“먼저 와 있었네. 오래 기다렸어?”
적센은 평소 입던 교복이 아니라 단정한 사복 차림에 향수를 방금 막 뿌린 것 같았음. 평소보다 신경써서 나온 것 같았음.

상판은 영화 보는 내내 짭경 생각을 했음.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음.
영화가 끝나고 적센과 상판은 상판의 집 앞까지 쭉 걸었음. 적센은 뜸들이다 말했음.
“나 사실 너가 나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어.”
“아…”
“나도 내 마음에 확신이 없어서 모르는 척 덮어뒀던 것 같아. 미안해. 너무 이기적이었지.”
상판은 그 와중에 또 자괴감이 들었음. 짭경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근데.. 이제는 확실해졌어.”
“…”
“우린.. 연애는 아닌 것 같아.”
“…”
”내가 너무 늦어버렸어.“
”…어?“
상판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음.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늦어서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너 나 좋아해?” 적센이 물었음.
상판은 도무지 대답이 나오지 않았음. 그토록 바라왔던 상황이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 입이 열리지 않았음.
”상판아. 너는 나 안 좋아해.“
”어? 아니야… 나 너 좋아하는데..난..“
”좋아했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
”니가 날 좋아하면… 좋아하는거면“
”…“
”너는… 너는 있잖아.“
적센의 얼굴이 상판의 앞으로 쑥 다가왔음. 상판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음. 주머니에서는 짭경한테 걸려온 전화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음.
”이거 봐.. 너는 나를 좋아한다면서“
”…“
”나만 키스할 생각을 해.“
상판의 집 앞에 다다랐고, 적센은 인사를 하고 떠났음. 
상판은 그 자리에 혼자 남아 한참을 서 있었음.



보고싶은 장면만 써서 문맥 더러움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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