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fed8275b5816af151ed87e44e827c73e26cb2dc9179e1dc323a6fc9885318

* 분량 조절 실패로 좀 김

쌀쌀했던 날씨가 조금은 풀린 어느 날. 처음 다흘을 만나고 한 주가 지난 토요일에 쿠팡은 지난 주부터 보고 싶었던 지하 아이돌 공연에 가보기로 결심함. 다른 공연들은 친구가 같이 보자고 해서 갔던 거라 원해서 가는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음. 뭘 입고 가야하지? 고민하다가 그냥 맨투맨에 슬랙스 입고 패딩 걸친 채로 나감.

6시에 합정역에 도착한 쿠팡은 지난 주에 둘을 만났던 기억을 더듬어보며 길을 걸어감. 지난번 옆 남자애가 가리킨 술집을 찾아다니며 정처 없이 걸어가던 쿠팡은 15분을 걸어간 끝에 그때 기억과 일치하는 술집을 발견함.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BOYS ONE' 로고를 발견하고 이름 존나 구리다... 속으로 생각하며 내려감.

내려가서 유리문을 여니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림. 공연장에서 새어나오는 리허설 소리와 사람들의 수다소리, 그리고 스텝들의 입장권 구매 도와드리겠습니다~ 굿즈랑 체키권 사전구매 가능합니다~ 소리가 그를 정신 없게 만듬. 내가 정말 이거 봐도 될까...? 여자 팬들로 가득한 공간 속에 유난히 키 큰 사람이 눈에 띔. 덩치를 보니 남자 같긴 하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츄리닝을 입고 온 그의 모습을 보며 스탭인가? 근데 저렇게 입고 일해도 되나?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공연을 보러 입장권을 구매하러 감.

ㅡ 입장권 3만원입니다~

결제를 하니 직원이 카드를 돌려주며 같이 종이 하나를 손에 쥐어주고

ㅡ 단체 촬영 사진 수령권 분실하시면 수령 힘드세요~

ㅡ 예?

ㅡ 이거 분실하시면 단체 사진 못 받으세요~

단체 사진? 값싼 입장권에 단체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그 단체 사진에 누가 나오는 지 궁금해하던 쿠팡. 바로 옆에 있던 굿즈 판매 테이블에 눈을 돌려 봤는데, 체키? 그건 또 뭐지?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마구 적혀있는 종이를 보고 굿즈는 나중에 마음에 들면 사기로 결심함.

쿠팡은 정신없이 입장권 구매를 마치고 비어있는 의자에 잠시 앉음. 다들 손에 기다란 봉 같은 걸 들고 있는 걸 보니 뭐에 쓰는 거지? 생각하는 순간 아까 본 츄리닝 입은 남자가 옆에 앉음.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갑자기 쿠팡을 스캔하더니

ㅡ 처음이죠?

ㅡ 예?

ㅡ 이런 공연 보러 온 거 처음이죠?

ㅡ ...

ㅡ 못 보던 얼굴 같은데.

뻘쭘해하던 쿠팡.

ㅡ 응원봉 없으면 외로울거에요.

저음의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던 츄리닝 입은 남자는 이내 자리를 뜸. 뭐하는 새끼지? 그렇지만 응원봉 없으면 외롭다는 말을 듣고 하나 정도는 사볼까? 하며 굿즈 테이블로 감. 응원봉 가격은 15,000원. 경광봉 같이 생긴 주제에 왜 이리 비싸?

ㅡ 응원봉 누구 거로 드릴까요?

예? 여전히 이곳에 적응이 안된 쿠팡은 되물으니 여기 멤버 중에 어떤 거로 드릴까요? 라는 대답이 돌아옴. 종이 속에 써져 있던 이름 중 이다흘 이름이 눈에 띔. 저 다흘이요. 응원봉을 받아 밑에 있던 버튼을 누르니 핑크색 빛이 나옴. 근데 이거 내구성 별로일 거 같은데? 생각하니 입장 시작하겠습니다~ 외치는 소리가 들림. 아까 받은 입장권을 주고 입장하는 쿠팡.

공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함. 남자애 5명이 올라오더니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서 애교를 함. 우리 단독 공연장 생긴지 벌써 일주일째라며 넙죽 90도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일본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춤. 이어서 케이팝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마지막에 자신들의 오리지널 곡이라며 지난 버스킹처럼 형편 없는 무대를 보여주고 관객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머 끝냄.

그런데 쿠팡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무대를, 실력 없는 가수들의 퍼포먼스에도 환호하며 응원봉을 마구 흔들던 팬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자꾸만 다흘에게 눈이 감. 아니 아예 그냥 두 눈이 다흘만 따라감. 노래는 그냥 그렇고 춤은 뚝딱이지만 그럼에도 귀엽게 싱글싱글 웃고 있는 얼굴, 그리고 말할 때마다 나오는 의외의 동굴 목소리. 나중에는 이다흘이 무슨 말만 하면 와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됨. 공연이 끝날 때 가지 말라고 소리 치는 것까지.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받음. 아, 아까 막판에 멤버가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라고 말하던 소리가 이거였구나. 사진 속 구석에 혼자 짜져있는 채 브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큽. 웃으며 이제 집 가야지 생각하는데 하이터치권이랑 체키권 판매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들려옴. 하이터치? 그거 사면 20초 동안 대화할 수 있다는데.

ㅡ 저, 하이ㅌ...

ㅡ 네~ 장당 1만 5천원입니다~

옆 종이를 보니 하이터치 + 체키 라고 써져있음. 세트로 있으니까 좋은 건가?

ㅡ 그 체키권까ㅈ...

ㅡ 두 장 3만원입니다~ 멤버 누구로 하시겠어요~

ㅡ 저 이다...

ㅡ 결제 도와드릴게요~

왜 사람 말을 다 자르고 지랄이야. 계속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지만 곧 다흘과 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뭔가 들뜬 쿠팡은 화살표로 하이터치라고 써진 곳으로 이동함. 그곳에는 멤버들이 서있고 팬들 열댓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음. 근데 이상하게 다흘이는 줄이 별로 안 김. 많아야 한 두명? 하이터치를 하러 가고 2명이 끝낸 후 자신의 차례가 옴. 키는 작지만 하얀 얼굴에 입술은 빨간 그의 모습을 제 눈 앞에서 직접 보니 조금 두근두근함.

ㅡ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오신거죠?

ㅡ 아, 네...

ㅡ 지난 주에 버스킹 보고 전단지 받아가셨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둘. 어쩌다 여기 오게 됐냐. 그냥 심심해서... 오늘 공연 어땠냐. 재밌었어요... 등등 이야기를 나눠가고 있었음.

ㅡ 저 다음에도 보러 와주실 거죠?

다흘이가 손을 내밀면서 말함. 어... 당황한 쿠팡. 쉽사리 대답이 안 나오자 다흘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간절하다는 듯 쿠팡을 바라봄.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쿠팡의 심장이 요동치더니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ㅡ 무, 물론이죠!!!!!!!!!!!!!!!

얼떨결에 큰 소리를 지름. 그것도 공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화들짝 놀랄 만큼. 다흘도 깜짝 놀라면서 아, 아하..... ㅎㅎ 감사해요. 말하고 진짜 오시는거에요? 말해서 대답하려는 순간 스탭이 감사합니다~ 다음 분! 외치고 손으로 둘 사이에 벽을 만듬. 시발시발시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생각하며 벽면의 화살표에 적힌 체키권을 따라 다흘이 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이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