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김음: 반지. 사랑의 관계...한 쪽은 홀로, 다른 쪽은 맞잡은 손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는 전체 16회 분량이다. 그런데 주의 깊게 본 사람들이 많이들 포착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극본의 내러티브만이 아니라 시각적 연출 면에서도 꽤나 ‘대칭’ 구조를 애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줄거리 상으로 앞과 뒤의 이야기가 서로 대구(對句)를 이루는 경우가 다수 발견되고, 음악의 선곡도 그러하며, 미장센을 구축하는 방식에서도 그러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 사례는, ‘선(線)’을 통해 등장인물들 간의 물리적 관계는 물론 심리적 거리를 은유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나는 특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고전음악사의 에피소드를 가져다 사랑의 관계에 대해 만들어낸 대구에 주목하고 싶다. 의도했을 수도 있고, 우연한 결과일수도 있다. 또 실제 드라마보다 해석의 시선이 강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제작진은 요컨대 베토벤과 슈만, 이 두 작곡가의 개인사, 특히 러브 어페어가 배면에 깔린 음악을 선곡해 드라마 속 두 남녀 주인공의 서사에 덧입힘으로써 3회와 16회에서 로맨틱한 대구를 만들어낸 것 같다.
먼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소나타(Mondscheinsonate)’. 그 곡은 3회 끝부분에서 송아의 짝사랑이 허무하게(동윤과의 관계가 이뤄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감정이 자기가 행하지 않은 원인으로 강제 종료되기에) 끝난 상황, 깊이 상처받았을 송아를 위로하기 위해 준영이 선택한 곡이다. 그는 이미 앞서 다른 자리에서 송아가 그 곡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그런데 월광은 사실 베토벤이 평생 “불멸의 연인”으로 마음에 간직했던 여인,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헌정한 곡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베토벤은 줄리에타를 열렬히 사랑했으나 결실을 맺을 수 없었으며, 그녀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벤첼 로베르트 폰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했다. 그러므로 베토벤의 월광은 미완의 사랑이 만들어낸 음악적 성취, 홀로 된 사랑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음악적 헌신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 소나타는 고독한 예술가의 정념과 고통이 빚어낸, 그러나 지극히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선율로 풀어낸 음악의 승화라 할 수 있다.
반면, 슈만의 성악곡집 <미르테의 꽃> 중 첫 번째 곡인 ‘헌정(Widmung)’은 전혀 다른 서사를 갖고 있다. 스승이자 연인의 아버지였던 프리드리히 비크가 결혼을 반대했기에 몇 년에 걸친 소송까지 감내해야 했던 슈만과 클라라. 하지만 두 사람은 그 힘든 시기를 겪어냈고, 비로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관문 앞에 설 수 있었다. 슈만의 ‘비드뭉’은 바로 그 결혼식 전날 밤 미래의 신부, 그러나 통상의 신부가 아니라 “나의 영혼”이자 “나의 심장”이며, “나의 기쁨”이자 “나의 고통”이어서 결국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나의 세계” 그 자체인 한 여인에게 바치는 연가다. 나아가 “보다 나은 나”라고 까지 해야 할 어느 절대적 존재를 향한 숭고한 고백이다.
이렇게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얽힌 서사와 슈만의 ‘헌정’을 감싸고 있는 서사를 두 대극으로 가로질러 보라. 그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대중 드라마 속에서 은밀하고 비애미 넘치게 세공된 사랑의 불/가능성이 아닌가? 아니, 이렇게 말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이뤄지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홀로인 존재의 사랑’과 ‘홀로됨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벗어난 존재들의 사랑’의 문제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연인의 연인됨이란 무엇일까?
전혀 다른 두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물질적/신체적으로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반지다. 그것은 둘이 각자의 손가락에 끼우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연인들의 반지란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가장 친밀하고 깊은, 유일무이한 공동 관계를 가장 심플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만들어주는 의미의 집합체이기도 하다(모든 예술의 역사 속에서 ‘운명’과 ‘불멸’로 심미화됐던 그 관계, 그러나 우리시대에는 ‘급’과 ‘격’, 이해타산으로 맺어지는 그 관계). 물론 바로 그 반지가 얼마든지 한 순간에 ‘소유’와 ‘구속’, ‘배신’과 ‘부정’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그래서 요컨대 핵심은 연인이든 부부든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각각 왼손 약지 손가락에 나눠 끼는 반지가 그만큼의 개인성(individuality)과 단독성(singularity)을 확보해야만 투명한 사랑의 징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내 존재가 숨 막히고, 내 손가락에 맞춰진 당신의 삶이 일그러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의 16회 엔딩에서 준영은 송아에게 반지를 끼워준다. 시청자인 우리는 그 반지가 어떤 의미의 기호인지 직관적으로 알지만, 실제로 어떤 목적과 기능을 하는지(커플링? 약혼? 청혼?)는 알 수 없다. 의미를 설명하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반지의 오롯한 의미, 진정한 자신의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는 보통 사람들의 습관을 벗어던지고, 연인 송아의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준 것이다. 심지어 그 행동은 오로지 바이올린이 좋아서, 그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경영대와 음대 학부를 두 번 다닐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인내심 강하게 자기 청춘을 닦아온 송아 본인조차 주의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끼워줄게요”라고 말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자신의 왼손을 내미는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의 관습, 보통의 연인들이 취하는 질서를 따랐다. 그런 송아의 왼손을 준영은 부드럽게 어루만지지만, 이내 오른손을 바꿔 잡고 반지를 끼워준다.
이 짧고 미세한 행위에서 감상자는 어떤 메시지를 받아드는가? 단언컨대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포용적인 연인의 연인됨이다. 데이트폭력이 난무하는 이 험악한 현실과 비교하면 그 화면은 지나칠 정도로 섬세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시적이다. 결국 드라마가 묘사하는 따스한 제스처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작은 행위는 연인의 존재를 무한 긍정하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 센 태도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두터운 메시지를 담은 약속의 징표다. 이를테면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씨”를 존중한다는, 당신이 직업으로서 바이올린을 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게 당신은 한 명의 연주자로 여전히 “두 발을 땅에 딛고 우뚝 서 있다”는 말을 함축한 것으로써.
ㅊㅊ
리뷰추 글 진짜 잘쓴다 고마워 잘 읽었어
고퀄 리뷰네. 너 단원 글 잘쓴다. 준영이가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감동스럽다. 글 잘봤어. 고마워.
반지끼는 손이 그런 의미였구나 ㄹㅂ잘 읽었어
논문인 줄 ... 글 좋다 고마워
추추
개추
쓰는 글마다 마음에 와닿네. 고마워. - dc App
리뷰추 마음이 찡해짐 본방볼 때 왜 오른손에 껴주지 했던 멍충단원 반성한다
정말 좋은 리뷰 고마워
좋은글 잘 읽었어 - dc App
거의 문학작품 수준 리뷰네 잘 읽었어
고품격 리뷰 정성글 너무 좋다 . 감동
리뷰 너무 잘 읽었어 ★★ 리뷰북 준비중인데, 혹시 이 리뷰를 리뷰북에 넣어도 될까? 동의한다면 제목 앞에 리뷰동의완) 이라고 수정해주면 고맙겠어! 좋은 글 많이 싣고 싶으니까 꼭 동의해줘라 ★★
개추
멋진리뷰다
좋은 글 잘 읽었다 오른손에 반지껴주는 준영이는 진정 유니콘임 리뷰추
프로의 향기가 느껴진다...브람스 작가님도 궁금하지만 여기 리뷰쓰신분들 진짜 궁금함....덕분에 감사
정말 문장과 단어의 선택이 프로의 향기가 나는 리뷰다...
리뷰 정말 잘 읽었어 댓 확인한다면 리뷰북 동의 부탁해도 될까? 너무 좋은글이라 꼭 싣고 싶은데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