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반짝거릴 천재적 재능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음악을 포기해야했던 사람

모든 희망이 아스라이 사라져가는데 경후 장학생에 선발돼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음악을 할 수 있다니
이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이게 말이 돼?
너무 행복하고 기뻐

그런데 알고 보니 날 지원하는 재단의 돈이
누군가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뒤 받은 돈이래
나와 같은 나이, 같은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나와 달리 이미 반짝거리고 있던 아이
그건 사고 였대, 하필이면 그 아이의 생일에
그런 비극이 일어나다니

그 돈 덕분에 난 음악을 할 수 있게 됐고
한없이 반짝거리던 정경이는 엄마의 죽음 이후로
슬픔에 잠겨 구렁텅이 속에 고여버렸지
다들 수군거려 쟤, 엄마 죽고 추락했네
천재 천재 김칫국 마시더니 아무것도 아니었네
안 그래도 좁은 바닥에 안 들릴 수가 없는 말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준영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죄책감? 부채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쳐
어떻게 해야 너의 공허를 채울 수 있을까
나의 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계속 습관처럼 너의 주변을 맴돌아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 자기소개를 하고
매년 생일을 챙기고 음악을 보내


너의 슬픔 덕분에 나의 음악이 계속 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정경이의 주변을 맴돌다 생겨난 애정은
짝사랑이라는 더 큰 무게로 다가왔지
여기저기 일을 벌리며 사고치는 아버지,
굽은 어깨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하며
돈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
시작부터 죄책감과 부채감이 함께했던 음악의 길


자신이 고갈되어감을 느끼는 준영과는 달리
현호는 사랑이 가득해
사랑을 받고 자라 따뜻한 사람,
생각에, 말투에 따스함이 묻어나는 사람
정경이를 향한 마음에 사랑만을 확신하는 사람
하지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준영이의 사랑은
얼룩덜룩 오염되어있어
내가 뭘 해도 될까? 내가 마음을 표현해도 될까?
내가 그래도 되는 걸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이 정경이는 현호에게 가버리지
...이제 뭘 어떡해?


그냥 옆에 있을 수 밖에

왜냐면 이건 단순한 마음이 아니니까
그냥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소중한 친구들, 친구이기도 하면서 좋아하기도 하는 여자
좋아하기도 하면서 미안한 사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준영이는 정경이 옆에 머물러 있으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겠지
정경이가 나가보라고 한 쇼팽 콩쿨에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이 은혜를 헛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음악에 대한 즐거움? 그게 뭐야?
결과를 내야해


너의 슬픔에 대한 댓가가 아무것도 아니면 안되니까
내가 힘들고 외롭고 공허하고 고갈되어가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생겨난 결과, 한국인 최초 쇼팽콩쿨2위
이제 좀 떳떳해졌을까?
이제야 좀 네 앞에 가벼운 마음으로 설 수 있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정신차린 줄 알았던 아버지가 정경이 집안에서 돈을 받고 있었대
나에게 비밀로 하고서 계속 계속, 나 모르게 돈을 받았대
아마 나를 위한다는 마음 아래 이루어진 일이었겠지
경후재단 장학생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가
가정사로 마음이 무거워선 안될테니까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주기 위해 그런 거였겠지
준영이한테 정경이란 사람은
그저 단순한 과거 짝사랑 상대가 아니야

이토록 지독하게 마음을 빚진 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