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니, 무의식적으로 브랜디를 많이 접하게 되네요.


오늘은 아흐마냑, 그 중에서도 샤토 드 라퀴의 1997년 빈티지를 마시고 있습니다.


숙성기간이 1997-2022 이니까, 25.x년 숙성이 되겠네요.


알콜%는 47.5%. 많이들 좋아하시는(?) Brut de Fût 입니다. 캐스크 스트렝스죠.


프랑스인이 읽어주는 건 "브휫 드 퓨" 정도로 들리던데, 한국인은 대충 브룻드풋 정도로 읽는 듯합니다. "법란서 말을 한글로 쓰기" 이것은 풀 수 없는 난제 그 자체...


아무튼,


이 아흐마냑의 특징은 원물(포도)이 Baco 품종으로만 100% 라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Baco Blanc 이겠죠?


사실 Baco가 특별히 귀한 품종인 건 아닌데 -- 오히려 역사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 왠지 유명한 포도 브랜디를 찾다 보면 또니블랑만 주야장천 마시게 되죠?


밝고 싱그러운 맛은 우니블랑이 일품이지만, 가끔 다른 맛이 궁금할 땐 바코로 돌아가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바코 브랜디가 무슨 느낌이었느냐 하면...



#



#



처음으로 코를 갖다 대면, 달콤한 백포도와 제법 산미가 있는 자두 껍질 느낌이 반겨줍니다. "역시 과일 증류주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곧 이어 시럽을 졸일 때와 같은 달콤한 향, 그리고 earthy한 식물 뿌리 뉘앙스가 따라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30년 미만의 어린(?) 술이라 그런지 알코올이 치고 올라옵니다.


코가 따끔할 정도로 찌르는 순간이 있는데, 왠지 에스테리함이 제법 강한 편이라 알코올도 더 세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잠깐 쉬면서 알코올을 잘 걷어내고 나면, 붉은 꽃 계열의 플로럴함과, 산미가 연상되지만 자두와는 다른, 라즈베리 계열의 과일향이 피어오릅니다.


청포도와 자두, 리치 시럽이 연상되는 달콤한 향, earthy함 등 첫 인상에서 느꼈던 노트들은 여전히 살아있구요.


입에 넣으면, 뭉쳐있던 스파이스가 확 풀리는 느낌입니다. 정향, 감초, 후추, 펜넬 정도가 찾아집니다.


후추는 처음에 입에 넣었을 땐 제법 화- 하게 느껴지지만, 금방 누그러집니다.



재미있는 건 펜넬의 뉘앙스인데,


이게 감초, earthy함, 강한 시럽 뉘앙스 등과 어떻게 잘 조합이 된 것인지, 달큰하고 강렬한 홍삼향을 만들어냅니다.


달콤하면서 어딘가 인공적인 홍삼 캔디의 향이 아니라, 진짜 홍삼 향에 가깝네요.


한약 계열의 냄새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이건 제 입맛에도 괜찮네요. 홍삼 위스키로 유명한(?) 보모어 딥 & 컴플렉스 보다도 훨씬 직관적입니다.


이 펜넬 베이스의 재미있는 홍삼 향이 피니쉬까지도 길게 이어지면서, 달큰한 여운을 남겨주네요.


게다가, 브리딩이 될 수록 홍삼 뉘앙스가 더 강해지는 느낌입니다.



맛은 노즈의 느낌 그대로, 정직한 조합인 듯합니다.


직관적으로 달콤하고(물론 설탕만 100-150g/L 수준의 탄산음료 느낌은 아닙니다만), 그에 버금가는 새콤함이 있어 "새콤달콤" 그 자체입니다.


오키함과 탄닌이 살짝 있는 편이고, 그에 상응하는 쓴맛도 있기는 합니다만, 새콤달콤을 누르고 튀어 오를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탄닌감은 뭐랄까... 입 전체가 텁텁해질 정도로 강한 수준은 아닌데, 뭔가 거친 느낌이 있습니다.


알코올에 수분이 빼앗기는 느낌과 겹치는 건가 싶기도 한데, 사실 47.5%면 증류주 치고는 그렇게 강하진 않은 거라... 왜 유독 거칠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네요.



#



1700년대부터 이어진 Lacquy의 역사와 달리, Baco는 역사가 그리지 길지 않은 품종입니다.


익히 아시는 19C Phylloxera 침공 때문에 개발된 품종으로, 우니블랑 대비 진한 베리의 뉘앙스, 묵직한(?) 플로럴함, 강한 에스테리함...이 특징인 듯합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의하면요.


얘를 기반으로 잘 만지면 소위 말하는 "묵직함"을 표현하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생산자들에게 딱히 사랑받는 품종은 아닌 것 같네요.


재배 난이도(기후와 토양을 고려한), 생산성, 시장의 트렌드, 어른의 사정... 등등, 결국 현 시점에 이르러 우니블랑이 또니블랑으로 된 데에는 제가 모르는 합당한 이유가 있겠죠?


그럼에도, 브랜디의 팬이라면, 또니블랑에서 벗어나 바코, 폴 블랑쉐 등 다양한 포도를 접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들의 사업을 영위해주는 건 -- 그래서 후손에게 배턴을 넘길 수 있도록 -- 결국 브랜디 팬들 뿐이기도 하고, 순수하게 팬 입장에서 재미있기도 하거든요.


기호식품 소비와 취향의 확장에 대단한 사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같이 알아주고 같이 좋아해준다면 행복이 배가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Lacquy의 Baco 100% 제품은 꽤 괜찮은 선택지인 것 같습니다.


또로즈, 또칸타다 외에(사실 이쪽은 네고시앙) 아흐마냑에서 괜찮은 퀄리티의 제품을 찾으신다면, 부디 Lacquy에 도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