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도쿄 긴자에 위치한 해병들의 성지 doux bar 두 바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프렌치 럼, 깔바도스, 꼬냑, 아르마냑 등 프렌치 스피릿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합 있는 바이고, 어째서인지 오너가 이곳 doux bar와 아사쿠사의 BAR DORAS에 들르는 수상한 한국인들의 정체를 대략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긴자의 많은 바들이 그렇듯 일요일에는 영업을 안합니다. 실은 일요일에 갔다가 허탕치고 다른 바 갔었네요.
방문한 날이 평일이다 보니 가게에 들른 사람은 저랑 한명 정도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머무는 시간동안 1대1로 브랜디에 관한 얘기를 실컷 나누다 왔습니다.

최초 방문시 많은 일본 바가 그렇듯 따뜻한 손수건을 내주시면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이런 술들을 주로 취급하는데 혹시 마셔본 적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또 어쩐지 한국에서 왔다 하니 뭔가 알고 있는듯한 눈치로 요새 한국사람들이 doux bar를 상당히 오고 있다고 하시네요.

오너인 요코이 타카히사 상은 딱히 프랑스 사람들이나 문화가 좋아서 프랑스 술 전문 바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젊을때부터 맛있는 스피릿을 찾았었는데 왠지 프렌치 럼이 충격적으로 좋았고 꼬냑도 좋았고 아르마냑도 좋았고 칼바도스가 좋았다보니 '좋아 그럼 내가 좋아하는 술만 있는 바를 만들테야....'하는 마음으로 가게를 여니 희안하게도 전부 프랑스 술 밖에 없었어서... 이런 프랑스 스피릿 위주의 바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앞에 다른 가게에서 보리끼린물을 너무 마시고 왔고 일정이 타이트해 피곤하다 보니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못해 두잔 정도 마시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아르마냑을 마셔본 적 없는데 마셔보고 싶다고 추천을 부탁하니 나온 도멘 브와니에 2001 폴 블랑슈입니다.
아르마냑 쪽은 연속증류기에 넣고 증류하는거라 꼬냑과 비교하면 다소 드라이한게 특징인데 이 도멘에서 나오는 알마냑은 다른 아르마냑보다 상당히 프루티 플로랄하다... 정도의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폴 블랑슈 포도는 필록세라에 엄청 취약했어서 필록세라 이후로는 꼬냑에서는 1%정도의 농가만 재배하는 고런 포도라고 들었는데... 아르마냑쪽은 어떤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아르마냑도 유니 블랑 포도가 주력이고 폴 블랑슈는 찾기 힘들다고 했네요.

연속증류를 거쳐서 그런것도 있고 숙성하는 통도 다르고 숙성기간이 더 오래 됐다 보니 전날 마신 JLP 로르가닉 폴 블랑슈에서 느꼈던 매운, 금속재질의 노즈는 좀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후추쪽의 매운 향신료스러운 노즈는 좀 느꼈네요.
바디감이 다소 있고,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탄닌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프루티, 플로럴했네요. 플로럴하다 마지막에 약간 민트 느낌도 났던거 같구용

요것 마시면서 또 상당한 브랜디 얘기를 나눴는데 이것들은 아래 대담집에 따로 정리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혼자밖에 없었다지만 오랫동안 술 안시키고 얘기만 하고 있는것도 왠지 좀 미안한 기분이고, 또 출국 전날 마지막으로 한잔 아주 맛있는걸 마셔보고 싶어 좀 특별한 꼬냑을 부탁드렸습니다. 추천하고자 하는 술들 이름 말해주면서 먹어봤냐고 물어봤는데 아쉽게도 전부 한잔씩은 마셔봤거나 바틀로 산 것들이라.... 다시 고심하시더니 레이몬 라뇨를 꺼내옵니다. 앞에 다른 레이몽 라뇨 있었는데 모처럼이니 젤 좋은 오다쥬 먹고 가라 하시네요 ㅋㅋㅋ

이 술은 컨디션도 안좋았고 요코이 상이랑 얘기하는게 너무 재밌어서 테이스팅 노트를 안써서... 어땠는지 잘 기억이 안납니다. 한가지 기억나는건 엄청 맛있었고 왜 레이몽 라뇨라는 훌륭한 도멘이 어째서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는건가....하는 강한 의구심만.
이것은 좀 양해를 부탁드리는 것을 용인하실수 있는지를 감히 죄송하지만 여쭤볼 수 있는지를 (이하 108 중첩의문문)

이하는 기억에 남는 요코이 상과의 대담
1. 왠지 브랜디 갤러리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 오너
- 한국에서 도쿄 브랜디 바는 바 도라스 상이랑 이곳 doux bar 두곳의 바가 상당히 유명하다고 하던데 이거 기쁘네요.... 요즘 들어 상당히 한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어떻게 알고 왔냐고 여쭤보면 많이들 한국의 브랜디 SNS(아마 브갤이 아닐지)에서 추천을 많이 받았다고 하십니다. 거기서 후기를 잘 써주셔서 감동했었네요.

2. 일본인은 브랜디를 잘 마시지 않는지?
- 역시 잘 마시지 않네요. 혹시 긴자쪽에 오신 적이 있나요? 밤 시간대 긴자에 드레스 입고 다니는 여성분들이 있지 않던가요? 실은 그 분들이 바로 호스티스입니다. 30년쯤 전에는 호스티스들한테 꼬냑이 상당히 인기여서 그사람들이 바에 들어가면 일단 꼬냑부터 주문했었는데 대부분은 헤네시 꼬냑이었죠. 그 뒤로는 점점 브랜디 지분율이 떨어지더니 이제는 사람들이 브랜디를 확실히 잘 마시지 않게 됐습니다. 15년 쯤(기억 확실치 않음)에 가게 열었을때도 브랜디 위주로 한다니 주변으로부터 그래서야 장사가 되겠냐는 말을 들었네요.
요새는 원하는 사람이 잘 없다보니 바에서는 이런 꼬냑들... 5대 이외에 장퓨라던가 폴 지로라던가 다니엘 부쥬 정도를 빼면 찾기 힘듭니다.

3. 일본에 이상하다시피 폴 지로가 흔히 보이는데, 그 이유는?
- 재팬 임포트 시스템이라는 수입사가 있는데 옛날부터 거기서 엄청 영업했어요. 20년 전쯤에 폴 지로는 이메일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어서 수입 문의를 하려면 국제우편을 붙여야 한다거나... 했습니다만 일본에서 엄청 많이 사다준 덕분에 요새 폴 지로상은 돈을 엄청 많이 벌어서 페라리 몰고 다니고 ㅋㅋㅋ 아들도 런던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형편이 좋아졌죠. 그 아들이 폴 지로의 다음 당주가 될텐데 아마 다음 대에서는 위험할지 모르겠네요.
아, 그리고 실은 폴 지로 하니 생각나는게 있는데 몇년 전 부터 폴 지로는 근처에 있는 다른 유명 도멘 OOOOO(유기농 꼬냑으로 유명한, 가까이 있는 도멘인데 혹시 몰라 직접 언급은 자제)에서 위탁증류를 계속하고 있어서 최근 출하되는 폴 지로 V.S.O.P 어쩌면 그 이상 그레이드의 꼬냑의 내용물은 실은 폴 지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여기 자주 들리는 일본 모 유명 블로거가 꼬냑에 가서 직접 보고 들었대요.

3.1 폴 지로의 미래에 대해...
- 폴 지로의 다음 당주, 그러니까 아까 말한 아들은 블렌딩을 많이 못해요 그닥 공부하려는 것 같지도 않고... 20년쯤 지나면 그 사람이 당주가 될텐데 폴 지로의 방향성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좀 걱정이네요

3.2 라뇨 사보랑이 미국 회사에 팔린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 아 그렇죠 합병... (이때 이해 못함) 합병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하자면... 그러니까 M&A, 피에르 페랑에 M&A 당했습니다. 라뇨 사보랑이라는 브랜드는 페랑 안에 남아있는데 실제로는 더이상 포도 수확도 안하고 통 재고는 피에르 페랑 창고에 들어간데다 증류기도 다 없애버렸다고 하더라구요.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라뇨 가는 아들 없이 몇대째 독녀인데 이번대의 라뇨 사보랑 당주는 힘든 일이기도 하니 이제 꼬냑은 우리 대에서 그만할까 ㅋㅋㅋ 싶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아쉬운 일입니다. 중국인들이 헤네시를 유난히 사랑하는 것처럼 꼬냑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 라뇨 사보랑처럼 사람들이 잘 찾지 않게 되면 도멘이 없어져버리는 문제가 생기죠. 어느쪽이나 어렵네요....

4. 유럽과 꼬냑 여행에 대해. 실은 꼬냑 순례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꼬냑은 어땠는지?
- 파리는 치안이 안 좋아 밤에 밖에 혼자 나가지 않는 편이 좋죠... (Pickpocket? 그러니까 소매치기가 많던가요?) 아 네네 소매치기 많죠.. 유럽은 치안이 좀 별로에요. 실은 밤에 여성이 혼자 나가도 괜찮은 정도는 한국과 일본 정도의 나라밖에 없어서... 유럽은 약간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꼬냑은 좋았어요. 애초에 밤에 혼자 나가도 시골이라 아무것도 없어서 ㅋㅋㅋ 괜찮아욬ㅋㅋㅋㅋ
그리고 꼬냑은 시골 사람들이기도 하고 실은 그 사람들 돈이 엄청 많아요! 스고이 리치 ㅋㅋㅋ하죸ㅋㅋㅋ. 꼬냑 시에서 헤네시같은 대기업한테 세금도 많이 거두고 꼬냑 사람들도 그런 대규모 꼬냑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마을 자체가 돈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어를 야쿠자 영화로 배운 일이라던가 한국은 춥고 삼계탕이랑 삼겹살이 맛있다던가 이런저런 재밌는 얘기를 쉼없이 나누다 보니 슬슬 다음 일정을 위해 호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무척 아쉬웠지만 도쿄는 앞으로도 올 것 같고, 아쉬움이 있어야 나중에 또 오기 때문에 그만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계산 후 서로 명함을 교환하고, 저는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무척 친절하고 친근한 접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식 바의 엄청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접객을 받는것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마스터랑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쪽의 바가 좋은데 doux가 딱 그런 바라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규모 생산자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도 들으니 재미있었구요.
내년에 도쿄에 온다면 다시 들르기로 약속했습니다.

부란데 갸라리의 해병 미나상타치도 도쿄 긴자에 갈 일이 있다면 기합 넘치는 해병성채 Bar doux를 들러보시면 좋겠습니다.
ライライライライチャチャチ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