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리에 대한 것을 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자기도 행복하고 가정도 행복하고 사회도 맑고 향기롭고 복된 사회가 이루어진다.
 진리를 등진 가정을 언제 서로 배신할 줄 모른다. 그건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거다.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불성의 마음이다.
 불성의 마음자리는 무한대하여 한계가 없다.
 불성의 마음은 대자비, 대지혜, 포용, 긍정, 공익, 공존, 공심의 마음이다.
 불성의 마음이 아닌 것은 삿된 사심이고 개인 편리 독주를 따진다. 그러다 보니까 모든 게 안되는 거다.  개인 편리 독주로서 자기 욕망 욕심을 먼저 채우려는 목적으로 하니까 서로가 시비하고 투쟁하게 된다.
 ‘내가 무한대한 불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 불성의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고 하면 그것이 현실 살아가는데 지표가 되고 나침반이 된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부부간에 안좋은 일로 싸움을 한다고 하자. 왜 싸움을 하느냐면 자기의 바라는 욕구에 안맞으니까 그렇다. 그건 중생의 사심이다.
 ‘내가 불성의 마음을 가졌는데 내가 왜 사심을 쓰지? 이리되면 서로 갈라지고 불행해지는데 이건 아니지.’
 하고 불성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 마음을 쓴다.
 상대방이 나에게 악담을 했다고 하자. 불성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대책이 없다. 같이 악담하고 싸움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봐야 결과가 좋은게 아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불성의 마음을 가진 걸 아는 사람은 ‘내가 불성의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같이 맞대응 해서 안 좋게 시비할 것이 있나? 그건 저질이고 저차원인데. 불성의 마음은 무한대한 진리의 마음인데 불성의 큰 마음을 써야지’
 하고 반대로 그 사람한테 “훌륭한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다. 불성의 마음으로 뒤집어 엎어서 불성의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 말을 분명히 잘 알아들어야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다.
 현실 생활의 부딪히는 속에서 모든 걸 불성의 마음에다 비추어서 불성의 마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틀림없는 말이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은 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으니 실체가 어떤 것인지 ‘무엇인가’ 하고 조용히 나를 비추어 보는 것이 선(禪)이다.
 ('19. 8.11 대원스님 소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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