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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청정하고 복된 업을 지으려면 공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복된 업을 닦아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석실국(石室國)에 오월기(烏越★)란 왕이 있었다.
온 나라의 인민들이 함께 부처님 모시는 모임을 베풀 때에 어떤 한 부인(婦人)이 창문 사이로 세존을 엿보았는데,
그때에 저 왕이 여인의 단정한 모습을 보고는 곧 영락(瓔珞)을 풀어 곁에서 시중들던 신하를 시켜서 저 여인에게 보내 주었다.

그러자 왕의 가까운 신하들이 곧 왕에게 아뢰었다.
“저 부인은 바로 이 나라의 여인인 만큼 왕께서 만약 사랑하실 생각이라면 바로 가서 불러올 수 있는데,
어찌 번거롭게 구슬을 주어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받으십니까?”

왕이 이 말을 듣고는 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쯧쯧, 참으로 나쁘구나.
어째서 이런 말이 내 귀에 들리게 하느냐?”

곧 게를 설하였다.

이 맹세의 주문을 말하노니
만약 내게 다른 마음이 있었다면
이는 나에게 큰 악업이 되겠지만
나는 이 구슬을 염착된 마음으로
저 여인에게 보낸 것이 아니었네.

내가 말하는 이유를 들어 보게.
업(業)은 자유로운 주인이 된다고
가장 훌륭한 업을 지은 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네.

이것은 주재자(主宰者)가 지은 것이 아니고
오직 업으로써 지은 것이니
마음이 주재자가 되는
착한 업을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만큼


이와 같이 묘한 색은
다시 주재하는 나가 없고
오직 착한 업으로 된 것이네.

착한 업은 내가 공경해야 하고
나쁜 업은 내가 여의어야 하니
과거세에 지은 착한 업의
과보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네.

나는 구슬 꿰미 같은
뭇 보배들을 섞어 장엄하였고
이마에는 다라니를 달았으니
구슬 꿰미가 눈처럼 흰 것은
내가 과거세에
색욕(色欲)에 탐착하지 않은 공덕이네.

만약 착한 업과 나쁜 업을 안다면
어찌 다시 색욕에 탐착하리요.
멀리서도 오히려 보지 않겠거늘
하물며 더럽히거나 집착하겠는가.

차라리 굶주림과 목마름에 죽을지언정
법이 아닌 탐욕은 부리지 않겠고
차라리 불덩어리 속으로 들어갈지언정
간사스런 일은 하지 않으리니

내가 만약 애착이 있었다면
지금의 몸이나 후생의 몸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네.

ㅡ대장엄론경 제15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