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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닛맨>

미국 독립 전쟁에서 활약했던 민병을 가리킨다. 평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에 1분 만에(minute) 무장하여 소집할 수 있는 남자들(men)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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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닛맨의 병력이 부족하면, 바로 옆마을 그 옆마을 식으로 벌떼처럼 미닛맨들이 들고 일어나 지원공격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소총과 대량의 실탄은 평소 가정에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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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미국인들은 주로 사냥을 통해서 식량을 얻었기 때문에, 유년기부터 일찍이 사격술을 배운 사람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로부터 터득한 풍토적 환경에 유리한 생활의 지혜를 적극 활용하는 편이었다.

때문에 미닛맨이 활약했던 곳은 주로 미국 동부지대의 숲이었다. 이러한 전장환경에서 숲의 지형을 숙지한 민간 저격병들은 영국 정규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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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콩코드 전투>

1775년 4월 19일에 일어난 ‘미국 독립 전쟁’의 포문을 연 영미 간의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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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 보스턴 학살사건과 1773년 보스턴 차사건 이후 메사추세추 주에선 영국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민병대까지 결성하자 지령을 받은 스미스 중령이 700여 명의 군인을 이끌고 콩코드로 반란군을 체포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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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렉싱턴에서 민병대가 진군하던 영국군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미국 독립 전쟁 최초의 전투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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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4월 19일, 스미스 중령은 핏케언 소령 휘하의 경보병 부대를 파견해 콩코드의 다리를 확보하게 했다. 핏케언 소령은 명령을 받들어 진군하다가 렉싱턴에서 민병대 77명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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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명에 불과한 민병대는 화력에 밀려 퇴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 마을에서 3800명의 미닛맨들이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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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영국 육군에는 이후에 800명만 증원되어 영국 육군 1500명 대 렉싱턴 미닛맨과 콩코드 미닛맨이 합쳐 3800명으로, 미닛맨들이 병력의 우위를 달성했다.

결국 영국군은 자신을 쫓는 민병대의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자 전의를 상실하고 찰스 타운까지 퇴각했다. 이리하여 렉싱턴-콩코드 전투는 민병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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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지 워싱턴이 대륙의회로부터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보스턴 인근에 모인 민병대를 규합해 보스턴 탈환 작전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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