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 중세전쟁 영화와 실제
Patronu..(westerlund)
2024-10-15 09:27:00
추천 15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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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무너뜨려도 치워야해서 답이 없다던데 - dc App
실제 중세전쟁은 사람도 안죽이고 평화롭데!
와아아아!
저 성은 외부 보급이나 자급자족이 가능해서 2년을 버틸 수 있는거고 병자호란은 외부 보급 자급자족이 불가능해서 머가리 박은거임?
청나라는 공성 대포 쐈음 - dc App
ㅇㅇ 험준한 산성인만큼 외부 보급루트도 한정적이라
성도 당연히 성 나름이긴 한데 일단 보급이나 자급자족문제는 공성거는쪽이 더 심각함 시대도 너무 다르긴하고 보통 서로마 멸망이 중세 시작이라고 보는데 청나라는 17세기애들이라 중세초기로 생각하면 1000년차이가 넘음...
은근 식량은 잇엇다고 함. 근데 게임마냥 식량만 잇어서, 그거 요리할 가마솥 수저 식기 이런게 거의 없다싶이해서 요리를 못햇고 병사들 입을 옷을 구비 안해둬서 모랄빵남
준비가 거의 안된 남한산성 가서 진 거임 당시 청나라 상황도 진짜 개좆된 상황이라 만약 강화도로 빠르게 런했으면 청나라가 gg치고 중국 먹지도 못했을거임
병자호란 남한산성에 식량 거의 없었음. 농성용 식량을 남한산성 안에 보급해야 되는데 성에서 40리 떨어진 창고에 넣어놓고 땡치는 바람에 청나라군이 그거 털어서 잘 먹고, 성 내부에서는 굶었음
남한산성 영화에 나오는 묘사랑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됨 청나라도 주변 다 씹고 돌진만한거라 이전 호란처럼 강화도 가는거 성공했으면 무조건 청나라에서 먼저 gg치는 구조였는데 그 루트가 막혀서 급하게 되는데로 간거라 물자없음 + 포위망 뚫고 보급받는게 불가능해서 ㅈㅈ
100년전쟁은 저러고 100년있은거임?
백년전쟁때 성을 끼고 싸웠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엄청 여러번 싸운거임
물론 100년 내내 싸운건 아니고 그냥 종전이나 휴전없이 상태가 100년 이어졌을 뿐임
ㄴㄴ 백년 전쟁은 저런 도시들이랑 협상해서 항복하는 대신 물자랑 돈 뜯어내고 대신 성내는 안건드리거나 힝복 거부라면 털어서 약탈하고를 백년동안 한 거임 실제 전쟁은 거어어어어어어의 안하고 아가리로만 전쟁했음
100년 전쟁은 잉글랜드군이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대규모 약탈 강간 방화 학살하는거 프랑스군이 쫓아다니는 싸움 양상이었음
근데 별동대 만들어서 성 주위 마을 약탈하고 파괴하면 성 놈들은 그냥 방관함?
중세에서 앵간하면 시민들 안건듬 대장 따잇 하고 난 뒤 내마을인데 파괴할 이유가 없고 약탈도 잔인하거나 무자비하다고 소문돌면 입지 좆박아서 자기 영지에 인구유입도 안되고 궁정에서 야리돌림 당해서 평판도 중요함 - dc App
서민은 땅 지배하는놈 달라져봤자 세금내고 농사짓고하는건 똑같으니까 뭐
무엇보다 저때 전쟁이 시민들 무장시켜서 대가리수로 기싸움 하는거라 민간인 학살 > 군사력+노동력 기회비용,민심, 종교계, 정치적 리스크 다 떠앉는 개병신 짓꺼리라 앵간하면 안함 - dc App - dc App
저땐 영주나 성주,왕이 말만 거창하지 사실상 도지사 수준임
동아시아와는 다르게 지배계층만 바뀔뿐이지 시민들과 피지배층이랑은 전쟁과 크게 상관 없었음 그래서 유럽에 민족주의가 나타난게 이미 동아시아엔 민족 = 국가 개념이 깊게 자리잡아서임 쟤들은 국가에 소속된거고 전쟁나봤자 국가만 달라지고 끝인 경우가 중세시절엔 대부분이었음
중세가 1000년이라 일관되지 않은데, 초-중-후로 나누면 초반에는 윗댓들처럼 했음. 다만 "민중들은 기사계급과 상관없다"는 사상적 이유보다는 싸우러 가는 영지도 농사를 짓기 때문에 전투 시기를 수확이 끝난 농한기로 잡고 처들어갔기 때문에 약탈하려 해도 할게 없는 경우가 많았던거. 다만 가을~겨울에도 외부에서 물자를 들여와서 생활하기 때문에 이걸 차단해서 상대 영지 피말리게 했음 / 성안에서 버틴다 = 윗짤처럼 공성전없이 서로 기싸움 / 못참고 성밖으로 나가서 싸운다= 우리가 아는 중세 전투 / 결국 원정나온 입장이 더 힘들기 때문에 웬만하면 적당히 협상하고 돌아감 "A영주는 B영주의 고생을 실감했으니 ㅇㅇ부분은 서로 ㅁㅁ하기로 계약함" 이런식
대충 지금의 '군' 단위의 소규모 전투가 그런거고 '왕국' 규모에서의 전쟁은 농사철에도 전쟁을 할수있을뿐더러 영주들은 어떻게든 이득을 챙기려했기 때문에 얄짤없이 약탈이 이뤄졌음 이건 중세의 시작인 프랑크왕국 시절부터 아예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는 십자군 전쟁, 클라이막스인 백년전쟁 같이 기억에 남는 전쟁에서는 전부 약탈, 파괴가 있었기 때문에 "중세 전투에선 약탈이 있나?없나?" 의 답은 "소규모에서는 없고 대규모에선 있다" 정도 / 물론 근대와는 다르게 중세 기사들은 '웬만하면 안하는게 좋겠지?' 라는 기조가 있는게 맞음 그때까지는 전투부대-보급부대의 연결이 느슨했기 때문에 오래싸우려면 현지에서 거래해서 지속적으로 보급을 하는게 더 좋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