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첫날 다녀온 복린이입니다

복싱장을 등록하게 된 계기가 좀 긴데.. 

혼자서 거동을 못 하시는 어머니의 병원 문제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서 한 3개월 정도는 여기저기가 아프신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일을 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자마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자격지심 때문인지 오랫동안 앓았던 우울증이 엄습하더군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여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하고, 어머니께서는 요양병원에서 넘어지셔서 갈비뼈 골절을 입은 탓에 예약해뒀던 병원 진료도 취소하고, 얼마 전에 이사 온 전세집은 수도관이 문제가 생겨서 며칠동안 공사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집주인분께 백수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갈 곳은 없지만 저녁이 될 때까지는 집에 못 들어가는 신세가 되겠네요 곧...

너무 우울해서 힘든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이런 기분을 떨칠 수 있을만한 운동을 찾아봤는데, 늘 유튜브 숏츠에 가끔씩 나오는 복싱 영상들이 생각 나더라구요. 

한번은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말도 안되는 활력으로 혼자서 섀도복싱을 하시는 영상을 봤는데 저 나이에도 저런 움직임과 활력이 가능하구나, 나도 권태감과 무기력함에 찌들었을 때 그걸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근처에 있는 복싱장을 마구 찾아보기 시작했네요.

처음에는 거리는 조금 멀지만 조용히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은 복싱장을 선택했는데 직접 찾아가보니 없어졌더라구요. 그래서 집이 더 가깝고 단체 운동하는 복싱장에 가게 되었네요.

그렇게 해서 오늘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복싱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역시나 제가 가기 전에 우려했던 점과 100프로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됐죠ㅜㅜ

저는 몸을 정말 못 쓰는 몸치입니다. 구기종목부터 해서 간단한 동작을 따라하는 것까지 모두 잼병이고 정말 못합니다. 잘하는 운동이라고는.. 이것도 잘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정을 붙인 운동이라고는 수직수펑으로 밀고 당기는 것만 반복하는 헬스 뿐입니다. 조용히 혼자서 운동하고, 남 눈치 볼 필요 거의 없고, 동작도 간단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헬스는 정말 제가 숨통 트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입니다. 헬스 만세... 물론 이것도 우울증 때문에 시작했었고 이제는 정체기가 와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지만요.

말이 딴데로 샜네요. 아무튼 관장님께서 어제 등록하셨다는 20대 초반 여자 회원분과 저를 따로 불러서 원투 잽과 어퍼 훅 동작 등을 가르쳐 주셨는데 

아.......

동작 하나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고 뚝딱뚝딱 삐그덕삐그덕 고장난 몸뚱아리와 간단한 동작 하나 외우지 못해서 계속 틀리는 학습능력이라곤 없는 머리가 도저히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겁니다.

반면에 옆에서 운동하시는 여자분은 정말 잘 하시더군요. 부드럽고 간결하고 저와는 달리 동작 하나하나 완벽하게 수행하는 그분에게 관장님께서는 칭찬과 감탄 연발

저는 옆에서 쭈굴쭈굴 거리며 고장난 고양이마냥 이상한 행동만 하고 있었네요.

제가 단체로 하는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이유가 이런식으로 비교대상이 되는 것과 좀 모자란 친구 보는 듯한 다른 분들의 시선 때문인데... 

오늘 그걸 제대로 겪으면서 20대 초반에 번화가를 걸으면서 겪었던 공황상태를 오늘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 뿐인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의 해결법이 머리속에 가득차서 고생하셨다고 사람들에게 인사 드리고 도망치듯 나왔네요.

오늘 그런 경험을 하고나니 부끄럽게도 다닌지 하루만에 그만둬야겠다 라는 판단으로 글을 올렸었는데, 생활복싱갤러리 분들이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주셔서 덕분에 하루만에 포기하는 바보짓은 안 하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일 복싱장에 가는 시간이 두렵게 느껴지는 건 변함이 없네요. 나이 서른 중반 먹고 이런다는게 참 한심한데... 

살면서 항상 스스로가 멍청하고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늘 벽에 갇혀 사는 기분이 들었었습니다.

부디 이번에는 그 벽을 한 번 깨부숴보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