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존재하는가? 그것은 확실한가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며 인간이라면 계속해서 이러한 의문을 던져야만 한다.


존재성에 대한 의문은 인간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은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자신을 성장시키는 동인이 된다.


그렇기에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왜 존재하는지와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답해졌다.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성을 신을 통해 알고자 하거나 누군가는 비교하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를 규정한다.


누군가는 철학함을 통해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기도 한다.


자기 실존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수많은 도구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것은 철학함에 있다.


철학은 자신의 실존하는지에 대한 의문에 정확한 답을 직접적으로 내려줄 순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철학함에 있어 자신의 실존에 대한 의문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철학의 본질은 그런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읽는다고 해서, 나와 남을 논리적이며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는다고 해서, 존재와 시간에 대해 규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음과 현재에 대한 불안을 떨쳐낼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가디머의 『진리와 방법』을 읽는다고 해서 성경을 비롯한 텍스트가 가진 본질적 의미와 그것이 가진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레비나스를 읽는다고 해서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라캉을 읽는다고 해서 인간이 가진 심리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정신분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대철학은 우리가 갖는 의문과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해결 할 의지가 없다.


혹자는 철학의 기능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철학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철학함에 있어 본질은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 해답을 내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줌과 동시에 사고-사상적으로 자유를 부여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기에 철학은 우리의 존재성을 더욱 확고하고 견고하게 해준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 때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야의 확장은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전개되는데 우리의 믿음은 역설적으로 철학적 논증으로 도출될 수 없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철학은 더이상 쓸모없는 것인가?


우리의 믿음에 대한 철학적 논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미리 전제된 '기초적 믿음'(토대)에 의존해야 한다.


즉. 우리를 규정하고 규명하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 진정으로 믿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념과 자기 결단의 문제이다.


기초적 믿음(토대)는 자신의 결단에 의존적이고 어떠한 믿음은 견지할지는 논증의 대상이 아닌 결단의 문제이다.


믿음이 존재하기 이전에 자신이 어떠한 것이 존재한거나 그러하게 성립한다는 믿음에 대한 결단이 있기에 그것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것에 '확실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지의 문제는 결단의 문제인 셈이다.


철학은 우리가 그 신념들을 받아들였을 때 다른 신념에 대해서도 추론적으로 개입하게 되는지를 성찰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개념적 장치가 되거나 그것들을 잇는 징검다리가 될 뿐이다.


이렇게 믿음에 대한 문제는 결단의존적이고 나아가 믿음은 자신의 존재성의 기틀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는 철학함, 정확히는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결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결단-믿음-철학함-존재성에 대한 확신'의 구조가 이루어 질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로 남아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