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100달러, 한국을 흔들다

2026년 3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공식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168달러를 넘어섰고,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면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95달러대까지 재차 급등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지속됐다.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넘어섰고, 이란 전쟁 이전 1,600~1,700원대에 익숙해 있던 서민들에게 이 숫자는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기름값이 전기차 할부금을 이겼다"

역설적이게도, 고유가의 최대 수혜자는 전기차 시장이었다. 올해 1분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4월 17일 기준 올해 신규 전기차 보급 대수는 이미 10만 6,939대를 돌파했으며, 이 속도라면 연간 누적 등록 대수 100만 대 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중고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다. 2월 기준 중고 전기차 실거래량은 전년 동월 대비 20.7% 급증했으며, 4월 기준 중고 전기차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49%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차를 감당하기 어려운 중·저소득층이 중고 전기차를 통해 연료비 부담을 대폭 줄이는 '생존형 전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소득 낮은 동네가 먼저 달라졌다

SNE리서치는 "소비자들이 리터당 2,000원이 넘는 주유비를 단기간에 체감하면서 유가가 안정돼도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전기차 조기 도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 전기 화물차 보조금이다. 소형 화물차를 주로 운용하는 자영업자와 생계형 운전자들의 보조금 신청이 급증하면서, 서울시 상반기 예정 물량 1,200대가 4월 초 이미 소진됐다. 서울시는 추가 예산 확보를 위해 추경 편성을 검토 중이다. 포터 일렉트릭의 경우 보조금 적용 후 디젤 대비 연료비를 연간 338만 원 절감할 수 있어, 2년 1개월이면 초기 차량 비용 차이를 만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득이 낮은 동네는 최근 전기차가 급속도로 늘어나 충전이 힘들다는 볼멘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돈 없다'던 20대도 전기차 큰손으로

또 하나의 이변은 20대 소비층의 등장이다. 올해 1분기 20대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3배 급증(4,605대)했으며, 20대 신차 등록 중 전기차 비중은 22.6%로 13.3%포인트나 올랐다. 구매력 저하와 차량 가격 상승으로 신차 시장에서 멀어졌던 20대가 보조금 확대와 제조사 가격 인하 경쟁, 고유가라는 세 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전기차를 발판으로 다시 전시장을 찾고 있다.

"내연차 타면 부자" — 뒤집힌 세상
한때 전기차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선택지였다. 테슬라가 즐비한 강남 주차장이 '있는 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불과 수 년 전이다. 그러나 호르무즈발 유가 충격이 이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제는 소득이 낮은 지역일수록, 생계가 빠듯한 계층일수록 전기차로의 전환이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오히려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다시 내연으로 회귀하던 상황속에 연료비를 아끼지 않으면 생활이 흔들리는 현실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풍경이다.

잇달아 터진 전기차 화재 사고와 배터리 안전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은 꺾이지 않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매달 수십만 원씩 나가는 기름값 앞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민심이다. 이제 동네 골목 어귀에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면 "저 사람은 여유가 있나 보다"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 됐다. 양극화는 소득과 자산의 문제를 넘어, 이제 어떤 연료로 달리느냐는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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