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5일에서 7일에 걸쳐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앞바다에서 미 ·일 양군 사이의 해전이 발생했다. 바로 그 유명한 미드웨이해전이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쟁취하게 된 미국이다. 반면에 일본은 패망을 향한 출발선에 서게 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점점 하락세를 맞이하게 된 일본이었기에 미드웨이해전은 일본의 운명을 뒤바꾼 역사적인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미국에게 있어서는 열세의 함대로 승리를 거머쥔 자랑스러운 전투로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작용했던 미드웨이해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공습했다. 이는 일본에 대한 금수조치에 대한 반발이자 석유같은 전략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일본의 타개책이었다.
(진주만 공습)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은 미국은 본격적으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며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의 승리로 사기가 찌를듯이 올라가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당시 일본은 총 19척의 항공모함을 소지하고 있는 최대 규모의 해상강국이었다. 미국의 전력보다도 상당히 앞서있는 수준이었다. 산호해 해전에서 쇼호함을 잃은 일본이지만 여전히 미 해군을 압도하는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진주만 공습의 피해로 미국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드웨이 해전의 승자는 미국에게로 돌아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1. 부적절한 시기의 전투
미드웨이해전 자체가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 이 전투를 주도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미 항공모함을 빠르게 격퇴할 필요성을 느끼고 미드웨이해전을 밀어붙였다. 이미 미 본토에서는 수백척의 항모와 항정들이 건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미군의 해군력을 압도하고 있는 이 시점이 마지막으로 미국의 항모들을 모두 격퇴할 수 있는 기회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는 않았다. 당시 일본 해군에게도 휴식과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산호해 해전에서 피해를 입은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수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두 항모는 가장 최신식의 주력 항모였기 때문에 수리가 완료된 후에 작전을 실시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모토 제독은 전투 준비를 강행했다. 따라서 일본은 당시 자랑하던 압도적인 해군력을 활용할 수 없었다. 미국이 열세였던 것은 맞으나 결과적으로 일본 해군의 총동원 가능한 항공기는 319기로 예상되었지만 미군은 하와이에서 출격하는 육상기까지 포함하면 348기로서 비슷한 규모가 되고말았다. 정비를 마친 후에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에 나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2. 미군의 압도적인 암호 해독능력
죠셉 존 로체포트가 지휘하고 있던 하와이 미 해군 정보부의 능력은 아주 뛰어났다. 로체포트 중령은 미 해군 암호 첩보분야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그의 작전으로 인해 계속해서 일본군 무전에서 등장하던 AF가 미드웨이임이 밝혀졌다. 이어서 이곳에 대규모의 일본군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 판단도 이루어졌다.추가적으로 미드웨이 공격부대의 병력과 예정 항로, 공격 시기까지 파악해내면서 공습을 준비할 수 있었던 미국이다. 이처럼 미국은 압도적인 정보력 덕분에 열세인 병력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세계 최대 전함 일본 야마토)
일본은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전함을 출동시켰다. 주력 항모들은 제 1 항공전대의 아카키, 카가, 제 2 항공전대의 히류, 소류의 네 척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참전하지 못했다. 만약 이 두 항모가 참가했더라면 미드웨이 해전의 운명을 바꿔 놓았을지도 모른다. 총 350척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미드웨이섬의 미군기지 공격을 감행한 일본이다.
반면에 미국은 진주만 공습을 피해 운좋게 살아남은 배들만이 있었다. 당시 미 해군은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이 3척밖에 없었고 그중 요크타운은 응급수리만 된 상태였다. 처음엔 참전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밤샘작업으로 겨우 전투에 투입된 요크타운다. 심지어 이동 중에도 기술자들이 승함해서 계속 수리했을 정도로 미 해군으로서도 전력을 쥐어짜내 동원한 전투였다.
3. 미 전투력에 대한 일본의 오인
무엇보다 이미 미국이 일본의 미드웨이 공습을 눈치채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일본이다. 따라서 미국의 항국모함의 출현자체를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나구모 제독은 미국 항공모함이 출현을 대비하녀 정찰기들을 발진시키기는 했으나 고닥 8기만을 날렸다. 그만큼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20기나 정찰에 투입했던 미군이다. 병력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미군은 일본 항모의 파악이 필수적이었다.
일본은 결국 미 항공모함의 존재를 찾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미드웨이 공습을 감행하게 된다. 이 점이 미드웨이 해전의 가장 큰 패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실수는 또 있었다. 일본측은 요크타운이 산호해 해전의 피해가 너무 커서 출동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만약 미 기동부대의 반격이 있다면 미군이 미드웨이 작전에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2척의 항모만이 출동하리라고 판단했었다.
반면에 미국은 이미 일본 항모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일본의 수많은 항공기가 미드웨이 섬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도 미리 인지했다. 이는 무려 레이더 포착시간보다 10여분 빠른 파악으로 즉각 26기의 전투기와 16기의 공격대를 출격시켰다. 그리고 10여분 후, 미드웨이 상공에서 미국과 일본 항공기 사이의 공중전이 벌어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미리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피해를 입은 미국이다. 성능과 실전경험에서 앞선 일본의 제로전투기들이 점차 우세를 차지했고 미국의 주요시설들은 다수 폭격되었다.
4. 일본의 잘못된 판단
일본은 애초에 혹시 모를 미군의 항모에 대비하여 아카기의 공격기 절반은 어뢰를 장착하고 대기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 항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일본은 잘못된 판단의 기로에 서게된다. 1차 폭격효과는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은 토모나가 대위는 함대 지휘부에 바로 2차 공격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항공모함의전설 엔터프라이즈)
이에 나구모 제독은 2차 공습 요청에 따라 대기중이던 어뢰를 빼고 육상 공격용 폭탄을 무장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일본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일본 함내 승무원들이 분주히 갑판 위에서 폭탄을 싣기 위해 움직이는 사이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발진 명령이 떨어졌다.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 총 117기의 함재기가 출격된다.
일본 항모의 격납고가 폭탄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난장판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명중률은 높으나 뇌격에 비해 낮은 파괴력을 가진 급강하 폭격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함재기들과 폭탄들이 유폭해서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결국 적은 수의 폭탄에도 쉽게 불길에 휩싸이게 된 아카기, 카카 소류 항모 3척은 전투불능 상태에 빠진다.
일본의 항모 4척 중 히류만이 유일하게 무사했다. 하지만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 출격한 급강하폭격기 편대에 의해 마지막으로 남은 히류마저 격침되면서 일본은 항모 4척을 모두 잃고 퇴각해야만 했다. 미국도 히류에 의해 요크타운이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지만 열세의 전력으로 엄청난 성과를 올린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 그 후..
이처럼 1942년 6월에 벌어진 미드웨이해전에서 완패를 경험한 일본이다. 주력 항공모함 4척과 병력 3,500명, 항공기 300대라는 상당한 전력손실을 겪어야만 했으며 제공권 상실로 작전을 중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해군의 전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도 약 1년 가까이는 일본 해군의 세력이 미군보다 더욱 우세했다고 한다.
그래도 태평양 전선의 주도권은 미국에게 넘어갔다. 일본에게 있어서는 주력 항공모함 4척과 수많은 함재기들을 잃은 것이 이후의 치명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드웨이 해전으로 일본의 제1, 제2항공전대가 사라진 것도 타격이 컸다. 제1, 제2항공전대는 일본 해군에 항공모함이 탄생한 이래 수년에 걸친 실전경험으로 단련되어 있어 그 가치가 상당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도 일본의 항공모함 및 항공전력의 숫적 우세는 여전했으나 주력항모를 4척이나 잃으면서 질적 우세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더불어 경제적으로 막강한 부를 자랑했던 미국의 물량공세로 항공모함을 마구 만들어내면서 숫적 우세마저 역전되게 된다. 그렇게 1944년 6월 필리핀 해 해전과 사이판 전투 등에서도 패배하면서도 일본은 완전히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글 CCBB 오토앤군사
시시비비랩


카가는 미제전투기를 태우고 다시 부활한다
미드웨이의 원수를 갚는거예요!
일뽕들 또 주인님이 시키지도 않은 정신승리 대신 해주러 올듯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ㄹㅇ 일본 까기만 하면 명예황국신민들 알아서 만물국뽕설 전파하자너~ 명예황국신민들 사실 숨겨진 반일제조기자너~
근데 정작 일본인들도 일뽕 싫어함ㅋㅋ
야갤에서 쳐발리고 여기서와 국뽕짓 하고 있었노 ㅋㅋ
원숭이가 원숭이했다
이제 조센은 뭐했노충 등판해라 이기야
식민지좆집이던 씹센징새끼들 열등감에 ㅂㄷㅂㄷㅋㅋㅋㅋㅋ
병신들이 미국은 왜 건드려서ㅋㅋ
착한우익게임 좆코레충들 등판해주세요
天皇陛下万歳!
일뽕충 실드 치는거 댓글보러 왔는데 아직인가
아직 쿨 안됀듯 ㅋㅋ
식민지좆집창년이던 씹센징새끼들 열등감에 ㅂㄷㅂㄷㅋㅋㅋㅋㅋ
카가 부활한다니까 애미뒤진 좆빠가 년인가
식민지좆집으로 창년질한 씹센징새끼들 ㅂㄷㅂㄷ
드디어 쿨 찻노? 명예황국신민 신속한 입갤 이기야 ㅋㅋ
이건 일뽕도 실드를 못치니까 일단 욕부터 박을꺼 같은데?
뭔글에 오타가 이렇게많냐
다시 써야 할 것 같은데..
5ch에서 그대로 일뽕 넘들 글 그대로 가지고 왔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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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은 역시 정신병이네 ㅋㅋ
국뽕들의 조상은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쪽본에 그냥 넘겼거든요 ㅋㅋ
국뽕 해굲의 라이벌은 워마드? ㅋㅋ 근데 그마저도 못 이긴 듯 엌
미드웨이 전역을 선급하게 전개한 원인 중에 하나라면 두리틀 쇼크도 있지 않음? 전과야 둘째 치더라도 사상 초유의 본토 폭격 사태에 쇼크를 먹었으니 대본영에서 ;이소로쿠 시발롬아 나가서 뭐라도 좀 해 봐' 라고 쪼아댄 정황이 있지 않겠음?
물론 진주만 공습 때 미국 항모들은 귀신같이 다 나가고 없어서 못 잡은 것도 이소로쿠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겠지만 ㅇㅇ 그리고 그 살아남은 항모 중에 하나인 호넷이 두리틀 특공대를 띄워서 일본 본토에 폭탄을 던지고 왔고...스노우볼이 구르고 굴러서 미드웨이에서 펑!
칸코레 망가 처음봤을땐 꼴렸도
과거에 취해만사네... 현실은 세계2등해군인데;;
적기직상, 급강하!
한때는 미국이 저렇게 정의로웠는데 지금은 왜
앰뒤 일뽕 새끼들 개발악질하넼ㅋㅋㅋㅋㅋㅋㅋ 세계 2위 해군 드립에 ㅂㅅ 쪽바리가 뭔 2위냐 일뽕 ㅅㄲ들 정신병 오지네 ㅋㅋㅋㅋㅋㅋ 국뽕도 병신새끼들인건 매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