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미아리 텍사스 상처 보듬고 치유했죠”... ‘건강한약국’ 이미선 약사




성매매 여성 돕는 하월곡동 88번가 ‘터줏대감’

52세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따

후원을 이어주는 ‘통로’의 삶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가. ‘청소년 통행 금지구역’이란 낡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미아리 텍사스’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이 그간 걸어온 세월을 담고 있는 듯했다. 20~30년 전에는 400여곳의 성매매 업소가 있었다. 지금은 뉴타운 사업이 한창이다. 이제 약 100여곳이 남았다. 


이 곳이 대표적인 집창촌이던 수십년전부터 제자리를 지키는 터줏대감이 있다. 1996년도부터 ‘건강한약국’을 운영 중인 이미선 약사다. 2012년에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땄다. “이 지역 홍등가의 붉은 빛이 다 꺼지고 평안이 찾아올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겠다”는 이미선 약사를 만났다. 


◇ 미아리 텍사스 터줏대감, ‘약사 이모’ 이미선



건강한약국 앞에 서 있는 이미선씨의 모습/jobsN


-본인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건강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이모’ 이미선이다.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은 서로를 ‘이모’라고 부른다. 어쩌다 보니 나도 ‘약사 이모’다. 약 23년간 이 곳에서 일하고 있다.”


-건강한약국 주변에 병원이 없다. 이곳에 약국을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혼 후 갈 데가 없었다. 결국 1994년에 친정이 있는 하월곡동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 곳이 일반적인 공간이 아닐 수 있지만 나한테는 편하고 익숙한 공간이다. 어렸을 땐 이 거리가 집창촌은 아니었다.”


◇ 내 눈물도 한 보따리인데, 남의 눈물이 보였다


-여성들을 어떻게 돕고 있나?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한 ‘스토리펀딩’으로 약 1000만원을 모았다. 미아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후원금을 모은다. 그 돈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사업`을 진행해 다같이 비누를 만들고 쿠키도 구웠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일을 해내면서 스스로가 귀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으면 했다. 제약회사에서 후원이 들어온 피로회복제, 영양제 등은 여성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처음부터 성매매 여성들을 도울 계획을 갖고 있었나.


“아니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인생이 큰 역할을 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다. 86년에 숙명여대를 졸업한 뒤 노동운동을 하는 남편을 만나 인천으로 갔다. 하지만 10년 후 이혼했다. 남편의 빚을 떠안고 어린 아들을 홀로 키워야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린 소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8세, 19세의 아이들이 성매매를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봤다. 내가 흘린 눈물만 해도 한 보따리였다. 그런데 남의 눈물이 눈 안에 자꾸 들어오더라. 그들을 격려하면서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약국 앞에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이미선 약사의 한 마디가 적혀있다. /jobsN


-기억나는 경험이 있나. 


“항상 웃는 얼굴로 ‘이모’라고 부르던 한 여성이 있었다. 이혼하면서 양육권을 남편한테 빼앗겨 어떻게든 빨리 돈을 모아 아이를 되찾아야 했다. 고아원에서 쭉 자라온 그녀에게 아이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런데 2005년에 집창촌에서 큰 불이 났다. 화재 소식을 접하고 달려가보니 거기서 이 친구의 시신을 찾았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하는 미래를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허망하게 가버렸다. 이후 여성들과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버텨야 한다, 그래야 밖에 나가서 남들과 똑같이 살 수 있다, 여기가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다’ 이런 말을 해주곤 했다.”


-그들이 낯선 이의 호의에 경계하진 않았나.


“당연하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친구들은 살아오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질문을 던지면 ‘왜 그래요’라고 되묻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래서 사과한 적도 있다. 그저 진심을 다해서 이들을 대하고 싶었다. 꾸준히 하다 보니 마음의 문을 여는 친구들이 생기더라. 진심이 통하니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52세에 시작한 사회복지사 생활


-약국에 걸려있는 자격증들이 눈에 띈다. 약사자격증 옆에 있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무엇인가.


“나는 늦깎이 사회복지사다. 2012년에 시험을 봐 합격했다. 당시 52세였다. 합격률은 22% 남짓이었다. 평일엔 약국을 운영하면서 주말에 실습을 나갔다. 120시간 실습까지 무사히 마쳤다. 이후 약국 계산대 옆에 빈 공간을 만들었다. 손님들을 상담할 때 활용하는 일종의 상담 공간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딴 이유가 궁금하다.


“복지 제도, 행정 절차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곳 사람들은 본인 직업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기관에 전화해서 물어보는 걸 어려워한다. 있는 제도도 잘 활용하지 못하더라.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실제 행정과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길 바랐다.”



약국 앞에는 '건강한 상담센터' 팻말이 걸려있다. /jobsN


-실제로 도움을 준 사례가 있나.


“벽에 걸려 있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보고 ‘이모 사회복지사도 하는구나’라고 말하면서 평소 궁금해하던 것들을 물어오는 경우가 꽤 있다. 한 독거 노인은 아들이 있었지만 연락이 끊겨서 혼자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했다. 가족관계단절사유서를 작성하고 기초수급자격을 신청하라고 말해줬다. 나중에 와서 병원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면서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더라. 처음엔 괜히 부끄러워서 자격증을 괜히 붙여 놓았나 싶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붙였다고 생각한다.”


-요즘도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꽤 있나.


“많다. 대뜸 전화를 걸어서는 상담 비용이 얼마인지 묻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돈은 받지 않는다. 내가 원해서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일 뿐이다. 상담이 끝나고는 같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편하게 쉬었다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상담센터’ 팻말도 걸어놨다.”


◇ 후원금 모을 때는 ‘글쟁이’가 되기도


-사람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후원 받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글쓰기를 적극 활용한다. 동문회, 교회 친구 메신저 단체방엔 “바하밥집을 후원해 줍시다”라고 올린다. 바하밥집은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식사, 의류 등을 무료로 제공해 이들의 자활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다. 한 약사 선배는 ‘잔소리가 지겨워서라도 후원해야겠다’고 하더라. 선배는 안 입는 남편 옷을 정리해 한 박스로 바하밥집에 기부했다.”


-지금 따로 후원하고 있는 데가 있나.


“바하밥집을 10년째 후원 중이다. 미혼모 가정도 돕고 있다. 아이는 7개월 정도 되었고 엄마는 아파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작년 여름 무척 무더워 후원금 200만원을 모아 그 가정에 에어컨을 놨다. 아기 엄마가 에어컨을 받은 뒤 ‘그 동안 아이가 더워서 보챘는데 이젠 잠을 잘 잔다’고 하더라.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기쁘다.”



이미선씨가 후원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이미선씨 제공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삶


-최종적인 목표가 있나.


“청소년 쉼터를 만들고 싶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을 많이 봐왔다. 누군가 옆에서 이들을 조금만 도와줘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 청소년기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그 인생을 결정한다. 어른으로서 미안함, 부채감을 갖고 있다.”


-좌우명이 있나. 


“‘now and here. I can do my best’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뜻이다. 원래 꿈은 사람을 돕는 변호사였다. 그런데 문과를 선택하기에는 영어를 못했다. 이과로 대학을 진학해 약사가 됐다. 결국 돌고돌아 변호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돕고 있다. 최선을 다한 결과다. 


내 인생 목표는 ‘편하게 살자’다. 편하다는 건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편한 인생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다. 그래야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다. 인생이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열심히 살아야 한다. 최소한.”


글 CCBB 신재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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