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면 안 되는 모델?...내추럴 사이즈 모델 박이슬씨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달라

‘바디 포지티브’ 알리는 모델 되고파


“키 165cm, 몸무게는 62kg입니다. 제 직업은 모델이죠. 살 뺄 생각 없냐고요? 다이어트 관둔 지 오래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아는 ‘모델’은 주로 44 사이즈나 더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는다. 이와 반대로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은 88 이상 사이즈 옷을 입는다. 내추럴 사이즈 모델은 44 사이즈와 88사이즈 사이의 공백을 메워준다. 일반 모델들보다는 크지만 플러스 사이즈 모델보단 작은 55~77 사이즈의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선다.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인 박이슬씨(26)는 본인을 ‘중간 사이즈를 담당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박이슬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 박이슬이다. 2017년 12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국내 첫 내추럴 모델 박이슬씨. /박이슬씨 제공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무슨 일을 하나.


“일반 모델들과 같은 일을 한다. 의류 홍보 사진을 찍거나 패션쇼에 나간다. 다만 입는 옷 사이즈가 다르다. 보통 모델들은 44 사이즈나 더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는다. 나는 66~77 사이즈의 옷을 걸친다. 키 165cm에 몸무게 62kg이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체형이다. 이 사이즈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는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모델이 되기 위해선 키가 커야하지 않나. 키가 작은 편인 것 같다.


“모델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 키 작은 모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다. 예를 들어 쇼핑몰 피팅 모델이나 룩북(Look-book) 브랜드 모델은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다. 옷에 초점을 맞춘 사진을 많이 찍기 때문이다. 룩북 브랜드 모델이란 패션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신상품 소개 사진집을 찍는 사람들이다.”


-원래 있는 직업인가?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은 더 큰 사이즈의 옷을 입는다. 이들은 주로 88~99 사이즈 체형이다.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라는 직업은 2012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미국 모델 마키타 프링(Marquita Pring)은 플러스 사이즈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패션쇼에 설 때마다 업계 관계자들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을 더 찌우라고 요구했다. 더 풍성한 몸매를 위해서 살을 억지로 찌워야만 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살을 찌우는 대신 본연의 모습으로 모델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첫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내추럴 사이즈 모델만을 관리하는 모델 에이전시가 생길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내추럴 사이즈 모델은 아직 생소한 직업이다.”



미국의 내추럴 사이즈 모델 에이전시. / 'natural models la' 홈페이지 캡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기존 모델 지망생들은 모델학과에 진학하거나 모델학원을 다니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추럴 사이즈 모델 준비과정은 아직 없다. 패션 현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나는 쇼핑몰, 의류 브랜드 회사들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모델도 필요하지 않나요’라고 묻고 다녔다. 모델을 필요로 하는 데가 어딘지 알아봐야 되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직접 돌려야 한다.” 


-모델들은 주로 식단 조절, 체형 관리를 강도 높게 한다. 본인은 어떤 관리를 하나.


“필라테스, 걷기 등 운동을 한다. 식단을 따로 조절하지는 않는다. 살을 빼려고 먹고 싶은 걸 안 먹는 경우는 없다. 살이 빠지면 오히려 걱정한다. 밤샘 작업을 하다 보면 일시적으로 살이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유튜브 구독자들이 ‘헬쑥한데 무슨 일 있는 것 아니냐’면서 걱정한다.”  


-모델로서 어떤 작업을 했나.


“쇼핑몰 모델로 활동했다. 란제리 브랜드 모델로도 일했다. 여기선 ‘자연스러움, 편안함’을 콘셉트로 한 사진들을 찍었다. 사진 보정을 안 해서 접힌 살이 사진에 그대로 다 나온다. 아직까지 디자이너가 여는 패션쇼에 서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내가 패션쇼를 직접 열었다. 지난해 외국계 회사가 주최한 공모전에 참가했다. ‘청년들의 꿈’이 주제였다. 패션쇼를 기획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지원을 했는데 합격해서 상금 8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내일 입을 옷’이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열었다. 사이즈 구분 없이 모델들을 섭외했다. 이 모델들은 각자 사이즈에 맞는 옷을 입은 채로 런웨이에 섰다. 모델이 20명, 관객은 150명 정도 왔다. 작은 규모였지만 몇몇 언론사들이 취재를 올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사이즈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아름답다는 걸 패션쇼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내일 입을 옷'에 참가한 모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박이슬씨. 맨 앞줄 가운데가 박이슬씨다. /박이슬씨 제공


-원래부터 꿈이 모델이었나.


“어렸을 때부터 모델을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사진을 자주 찍어 주셨다. 사진에 잘 나오려고 포즈 취하는 법을 연습하곤 했다. 꿈을 묻어두고 살다가 대학생이 되고 난 뒤에 모델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60kg에서 40kg까지 빼기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살을 독하게 빼려고 1년간 휴학계를 냈다. 친구들이 왜 휴학하냐고 묻길래 공부하려고 휴학계를 냈다고 거짓말 쳤다.”


-그런데 왜 일반 모델이 아닌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 됐나.


“매일 운동하면서 식이요법까지 병행했지만 살이 쉽게 안 빠졌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토해냈다. 이 때 목이 붓고 탈모까지 왔다.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멈춰야 했다. 마른 모델보단 살이 많으니까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업계 관계자가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선 부족하다면서 살을 찌워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꿈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인스타그램에서 내추럴 사이즈 모델들의 사진을 봤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있고, 마른 사이즈 모델이 있으면 평균 사이즈의 모델도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라는 단어를 접했다.” 



박이슬씨는 '바디 포지티브'에 관한 유튜브 영상도 찍는다. /유튜브 캡처


-바디 포지티브가 뭔지 궁금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이 단어를 알고 난 뒤 바디 포지티브를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그만 뒀다.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에 식이 장애를 겪었을 때 이 단어를 계속 생각했다.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 일단 내 자신을 사랑하자고 결심했다. 예전엔 살을 빼야만 내 인생이 잘 풀릴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거울을 볼 때면 ‘살 빼고 제 2의 인생을 살자’고 혼자 되뇌곤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입은 얼마인가.


“내추럴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면서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번다.”


-내추럴 사이즈 모델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비만을 합리화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을러서 살을 빼지 못한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는 취지로 모델 일을 하고 있다. 이 행동이 과연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잘못한 것인지 그 사람들한테 되묻고 싶다.”



박이슬씨 모습. / 비브비브 홈페이지 캡처, 박이슬씨 제공


-본인만의 강점이 무엇인가. 


“살집이 있지만 포즈로 이를 보완하려고 한다. 옷을 살리면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는 포즈에 대해서 연구한다. 옷마다 취할 수 있는 포즈는 다르다. 각 쇼핑몰, 브랜드에 맞는 포즈들을 연구하고 있다. 또 나는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체형이다. 사람들이 날 보면서 ‘나와 같은 체형을 가진 사람이 이런 옷을 입으면 저런 느낌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모델로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유튜브에서도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어떤 영상을 찍나.


“체형과 상황에 맞게 코디하는 법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서 나와 비슷한 사이즈를 가진 사람들이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을 입어보고 싶은데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 모르겠다’고 댓글을 남긴다. 그럼 내가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으로 코디를 해서 입어본다. 옷은 직접 입어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의 차이가 크지 않나. 옷을 대신 입어보고 관련 정보를 준다. 바디 포지티브를 알리는 영상도 찍는다.”



박이슬씨는 '치도'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활동을 한다. /유튜브 캡처


-일하면서 힘들 때,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국내 첫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라는 점이 힘들었다. 사람들한테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다 설명하고 알려야 했다. 언제 일이 들어올지 기약도 없었다. 반면, 유튜브 영상에 긍정적인 댓글들이 달리면 보람을 느낀다. 내가 찍은 영상을 보고 쇼핑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바디 포지티브 영상을 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은 살에 구애받지 않고 입고 싶은 대로 스타일링 하면서 일상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모델’이란. 모델로서 최종 목표도 궁금하다.


“편안한 패션 라이프를 보여주는 사람. 몸이 편안할 뿐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패션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살이 쪘다는 이유로 입을 수 있는 옷의 선택지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사람이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엔 나를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 아닌 그냥 ‘모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최근에 다양한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추럴 사이즈 모델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모델, 살집이 있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 등 현실을 반영한 모델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 모델들 앞에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구분 없이 그냥 ‘모델’로 설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글 CCBB 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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