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중동에 '자물쇠 달린 냉장고' 수출한 이유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목표로 하는 나라의 문화와 풍토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역 특성을 잘 반영한 상품이나 마케팅 전략은 현지에서 호응을 얻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 전자 업체들은 과거 이런 지역 특화 상품을 다수 출시해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았다.

 

◇중동에서의 LG전자

 

지난 2003년 LG전자는 중동 시장에 ‘메카폰’을 출시했다. 성지(聖地) ‘메카’의 방향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를 내장한 모델이었다. 지역민 대부분이 이슬람 신도로,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절을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모델은 현지에서 매우 인기를 끌어, 2009년엔 후속작 ‘메카폰2’까지 나왔다. 기존 사양에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음성과 문자로 제공해주는 기능을 더했다. 또한 매일 기도 시간을 정시에 알려주고, 기도 중 전화가 울릴 때 자동으로 수신 거절하는 옵션까지 붙였다.



메카폰./ 네이버뉴스



2004년 10월엔 ‘대추야자 냉장고’를 내놓아 히트를 쳤다. 중동인이 즐겨먹는 음식 ‘대추야자’를 최적 상태로 보관해주는, 한국으로 치면 김치냉장고와 비슷한 스타일 가전제품이다. 대추야자를 영하 25도에서 급속 냉각해 6개월간 보관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LG전자가 비슷한 시기 판매한 ‘트로피컬 에어컨’도 인기였다. 보통 에어컨과는 달리 섭씨 54도에서도 무리 없이 작동하는 중동 특화형 상품이었다.



대추야자 냉장고./ 네이버 뉴스



이런 일련의 현지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어, 2004년 실시한 중동 지역민 대상 갤럽 조사에서 LG전자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전자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요르단에선 무려 80%가 LG전자를 지목했고, 중동 전체를 통틀어도 LG전자를 고른 비율은 55%에 달했다. 훨씬 먼저 현지 시장에 진출해 있던 일본 제조사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였다.

 

◇'자물쇠 냉장고' 마케팅

 

대우전자는 1998년 중동 지역에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출시했다.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중동인의 기질을 감안한 동시에, 물이 귀한 중동 지역에서 냉장고 속 음료를 자주 꺼내 먹는 걸 억제하는 효과까지 노린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한때 대우의 수출형 냉장고 모델 중 8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네이버 뉴스



LG전자도 비슷한 시기 자물쇠 냉장고를 내놓았다. 이들은 중동뿐 아니라 인도 시장에도 이 제품을 내놓아 상당한 판매량을 올렸다. 인도에선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하인을 두는 일이 흔한데, 이들이 음식을 마음대로 꺼내 먹는 걸 방지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LG전자는 2009년 인도에서 가장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뽑는 ‘브랜드 에쿼티’ 조사에서 소니와 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들을 제치고 소비자내구재 부문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전장에서의 스피커폰

  

지금은 사라진 기업의 사례긴 하지만, SK텔레텍이 2001년도 즈음 이스라엘 시장에 진입했을 때 썼던 전략도 유명하다. 이들이 첨병으로 쓴 아이템은 ‘스피커 휴대전화’였다. 전시상황이 잦은 이스라엘에선 사용자가 빈번하게 총격전을 벌여야 하는 위급 상황이 많다. 양손으로 소총을 쥐거나, 한 손으론 총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운전을 하는 때가 드물지 않다. 스피커 휴대전화는 이런 때에도 비교적 간단히 통화를 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인구는 600만명, 휴대전화 판매량은 연간 70만대 선이던 이스라엘 시장에서 SK텔레텍은 이 모델 하나만으로 2년여에 걸쳐 총 30만여대를 팔았다. 시장 점유율도 50% 선을 오갔다.


◇항상 성공은 아니야

   

물론 현지화를 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도리어 어설픈 시도로 욕을 먹는 경우까지 있다. 가령 코카콜라는 외국어 사용을 꺼리는 중국 현지 정서를 반영해, 발음이 비슷한 ‘커커컨라(蝌蝌啃蜡)’ 이름으로 상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현지화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명칭을 ‘커커컨라’로 잡은 게 문제였다. 이는 ‘올챙이가 양초를 씹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처음 보는 검은색 액체에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훗날 현지 문화를 다시 연구해 제품명을 ‘커코우커러(可口可乐)’로 바꾼 뒤에야, 코카콜라는 중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또한 현지화를 잘 해놓고도, 기존에 지역을 제패하던 상품을 제치질 못해 의미 없이 끝나는 때도 있다. 음료 브랜드 네슬레는 2001년 중국 시장에 아이스티 제품 ‘빙상차(氷爽茶)’를 내놓은 적이 있다. 중국인 입맛에 거슬리지 않는 이름과 맛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신통치 못한 매출을 기록하다 결국 2014년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린다. 현지 취향에 따른 것까진 좋았지만, 캉스푸나 퉁이, 와하하 등 중국 토종 브랜드 음료를 뛰어넘는 ‘한 방’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경쟁에서 밀려 버렸다. 


심지어 현지화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잘 나가는 기업도 있다. 코스트코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 지부를 본사 방침과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다. 현지화 시도라고는 대만 코스트코 매장에서 ‘북경 오리 피자’를 파는 정도 수준이다. 그럼에도 매출에 타격을 입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한국 코스트코 양재점은 전 세계 지점을 통틀어 매출 1위를 다투는 판이다.


미국 기업 애플처럼 업계 위상이 높고 충성 고객이 많은 브랜드일수록 이런 전략을 택하는 때가 많다. 실제로 애플은 기기 옵션은 커녕 애프터서비스마저 현지인에 대한 배려가 없지만, 전 세계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엔 별 영향이 없다. 


최근 국내 전자 가전업체들이 예전에 비해 현지화를 덜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지 조건에 맞춰줘야만 경쟁력이 생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브랜드만을 보고도 물건을 사는 고객 또한 상당해졌기 때문이다. 현지화 전략이 필요할 때가 있긴 하더라도, 어느 상황에나 꼭 택해야 할 '무적패'는 아닌 셈이다.


아무튼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사전에 현지화와 브랜드 원형 유지 사이 유불리를 철저히 연구해 가려내되, 현지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면 기존 제품을 압도할 수 있는 특징과 장점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CCBB 문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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