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1세대 스타강사 김대균씨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석사과정을 다니던 한 청년이 종로YBM에 입사해 전업 토익(TOEIC) 강사를 하겠다 밝혔을 때, 주변 사람 대부분이 그를 만류했다. 미친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까지 있었다 한다.
때는 1996년도 9월이었다. IMF 사태가 나라를 덮치기 전 시절이다. 과장이야 있겠지만, 명문대생은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동아리방 한편에 갖다 놓은 입사지원서에 이름 적어 내면 바로 합격한다는 말까지 돌던 시대였다. 학벌 이외 스펙은 입에 오르내리는 일조차 드물었으니, 토익으로 먹고살겠다는 말이 와닿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후 토익 시장은 급성장했고,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 청년 김대균(54)씨는 한국 토익계 전설 자리에 올랐다. 2000년대 초 그가 출연한 인터넷 강의는 이틀 만에 1억원 매출을 올렸다. 학원 소속 월급쟁이 강사였지만 연봉 10억이 넘었다. 전성기 때는 연 세금만 1억5000만원을 냈다. 20년 넘게 강사 생활을 하며 펴낸 토익 관련 교재는 총 300권이 넘는다. 과거 그를 말렸던 사람 중 지금 김씨보다 잘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다.
김대균씨(오른쪽)와 영어 강사 디바제시카.
◇한때 무시당하던 길일지라도
처음부터 강사를 지망했던 건 아니었다. 원래 꿈은 유학이었다.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했던 영어 과외와 강의 일이 체질에 잘 맞아, 계속해 보기로 결심했다 한다. “대학원이야 교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갔었죠.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확실히 잘 하는 걸 쭉 해야 편하고 행복하겠다 싶더군요.”
새로 택한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별장학금 받고 입학한 우수학생이 당시로선 척박하기 짝이 없던 토익 강사 길을 걷겠다 나서니 말이 많았죠. 지금이야 저보다도 학벌 좋은 강사가 워낙 많으니 이야깃거리조차 아닐 일이지만요. 연애하다 여자 집안에서 ‘강사 따위 직업은 용납 못한다’며 반대해 물러선 적도 있어요. 토익 보는 사람조차 몇 없던 시절이니, 장래가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었겠죠.”
그럼에도 1996년부터 지금까지 토익을 310여 회 응시하며 문제를 분석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 스타 강사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한국인 중 처음으로 토익 ‘원조’ 국가인 일본에 교재를 수출하는 기록도 세웠다. “토익 자체가 원래 1970년대 일본 경단련(경제인단체연합회) 의뢰로 만들어진 시험이에요. 한국엔 한참 뒤인 1982년에야 들어왔고요. 하지만 제가 낸 토익 교재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있고, 일본 토익 강사가 저를 만나겠다며 찾아오기까지 했으니, 청출어람(靑出於藍)인 셈이네요.”
한 일본 대형서점에서 현지 출판된 김대균씨의 책. 이를 들고 있는 점원과 함께 찍은 사진./김대균씨 제공
아프리카TV에서 일본어통역사 함채원씨와 함께 진행한 토익 방송./김대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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