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공사장, 밤엔 경비…컵라면 하나로 이틀 버틴 적도 있어요




제이블랙&제이핑크 조진수

하루 13시간 춤·5년의 무명생활 거쳐

목표는 “최고로 유명한 댄서”


무대 위 화려한 화장을 하고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을 신은 댄서가 춤을 춘다. 긴 레게 머리를 휘날리며 음악에 맞춰 관능적인 춤을 추는 이 댄서는 남자다. 주인공은 바로 '제이블랙&제이핑크' 조진수씨. 국내 스트릿 댄서 1인자로 제이블랙과 제이핑크라는 두 가지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춤에 미친 듯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출 땐 제이블랙으로, 남성이 낼 수 있는 여성의 이미지와 느낌을 살리는 걸리시 댄스(girlish dance)를 할 땐 제이핑크다.


조씨는 국내에 걸리시 댄스를 알린 장본인이며 걸리시 댄스 1인자기도하다. 지금은 무대뿐 아니라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누비고 있지만 제이블랙&제이핑크 라는 이름을 알리기까지 5년의 세월이 걸렸다.



제이블랙&제이핑크 조진수 / 디딛웍스 제공


◇늦은 나이에 시작한 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아버지를 따라 재즈 댄스를 배우러 다녔다. 가수들이 추는 춤을 녹화해서 따라 추기도 했다. 혼자 춤을 추던 중 사람들에게 춤을 보여줄 일이 생겼다. "고등학생 때 화장실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 처음 무대에 올라 친구들의 환호성에 희열을 느꼈죠."


그때까지만 해도 춤을 업으로 정한 건 아니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군대에서도 취미로 계속 춤을 췄다. 병장 진급 후 일과가 끝나면 춤 연습으로 시간을 보냈다. 제대할 때쯤 진로를 정했다. "나가서 뭐 하고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춤이고 이거 한 번 제대로 해보자 싶었죠. 24살이었습니다.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어요.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대신 최고가 될 생각으로 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제이블랙(좌), 제이핑크(우) / 제이블랙 인스타그램


◇컵라면으로 때우고 생활고 시달려도 


힙합에 빠진 그는 쓰리디 칼라(현 큐브 사운드)팀에 합류했다. 당시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보통 10대 중후반부터 춤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지체할 틈이 없었다. 쉬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고 춤만 췄다. 하루에 13시간씩 연습을 했고 학원에서 강사와 경비원을 겸하면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무명 댄서로 춤만 추다 보니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당시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받은 월급은 3만원이었다. “연습실에 살기 위한 조건으로 경비 일을 했고 팀 연습시간은 정해져 있었어요.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방출될 수도 있었죠. 그래서 춤 연습과 학원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생기면 공사 현장에 나가기도 했어요. 가장 힘들었던 몇 달은 이틀에 한 끼를 컵라면으로 버틴 적도 있었죠.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지만 그때는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춤이 좋아서 유명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했죠.”


5년이라는 긴 무명생활을 끝내고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2009년 국내 춤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댄스배틀 ‘포다넥스트레벨’에서 준우승을 한 것이다. 이후 대만 맥스파티 솔로배틀, 중국 K.O.D 크루배틀, 포다넥스트 레벨 인터내셔널 레벨 솔로 배틀 등 다양한 댄스 배틀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트릿 댄스 강자로 자리 잡아갔다.



제이핑크일 때의 모습 / J-BLACK & J-PINK Official

◇국내 걸리시 댄스 1인자 ‘제이핑크’

조씨는 국내 걸리시 댄스 1인자이면서 한국에 생소한 장르를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걸리시 댄스를 출 때는 조진수 혹은 제이블랙이 아닌 제이핑크로 변한다. 걸리시 댄스와의 인연은 26살 무렵 안무가 존테 모닝(Jonte Moaning)의 영상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댄서인 자신도 남자가 하이힐을 신고 여성스러운 춤을 춘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곧 걸리시 댄스에 빠져 따라 추기 시작했다.

걸리시 댄스를 출 때면 온전히 제이핑크에 몰입한다고 한다. “여자친구였던 마리에게 의상을 빌려 입고 메이크업도 배웠어요. 섬세한 춤선과 유연함을 위해 체중감량을 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여성의 사소한 특성이나 동작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보정속옷도 입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춤을 추니 100%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에는 이 춤을 좋아하는 남자 1명, 여자 2명을 모아 ‘핑키칙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춤 경연 프로그램 ‘댄싱9’에 출연해 걸리시 댄스를 선보였다. 높은 하이힐과 표범무늬 레깅스, 털 코트를 입고 등장해 심사위원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멋있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누구는 더럽다고 욕하기도 한다. 화장을 하고 의상을 화려하게 입다 보니 제이핑크일 때에 사소한 오해도 생긴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전에는 사람들이 조씨를 게이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한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오가면서 춤을 추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게이라고 오해받는 건 제가 완벽하게 제이핑크에 몰입했다는 증거입니다. 뿌듯하죠.”

햄버거 광고도 같이 찍었다(좌), 제이블랙과 마리의 리마인드 웨딩 사진(우) / 제이블랙 인스타그램


◇목표는 “최고로 유명한 댄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아내 마리다. 마리는 댄스팀 원더크루를 이끄는 안무가다. 댄서라는 같은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부부로서 제가 무엇을 해도 함께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반면 단점은 없어서 신기할 따름이죠.”


그는 댄서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방송인으로도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제이블랙이라는 사람으로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사랑받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그의 목표는 최고로 유명한 댄서가 되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었지만 그들의 음악이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불가능하겠지만 제가 죽고 나서도 ‘그 사람 정말 최고였지’ ‘춤하면 제이블랙이었지’라고 말하는 아티스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댄서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세계에서 아니더라도 한국에서만큼은 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글 CCBB 에디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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