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특유의 기업문화 변화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성장
시대의 흐름을 읽은 선택과 집중
대한민국 1등 기업하면 누구나 삼성그룹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삼성은 자산규모에서도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220조)과 3위 SK그룹(217조)을 합친 것과 비슷한 400조입니다. 과거 LG, 현대, 대우와 재계 1위를 다투던 삼성이 어느 순간 치고 나가면서 지금의 재계 구조가 형성되었죠.
과거 대한민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던 80년대를 호령한 100대 기업 중 현재 살아남은 기업은 30%에 불과합니다. 세계를 호령하려던 대우그룹도 IMF 외환위기를 만나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죠. 그런데 삼성은 어떻게 이 같은 위기를 넘어 2위와 초격차를 벌린 대기업이 될 수 있었던 걸까요?
◎ 삼성에 대한 흔한 착각
많은 사람이 삼성이 그저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삼성도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지금 삼성 제품은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지만, 90년대 해외에서 팔리지도 않아 매자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제품 중 십중팔구는 삼성 제품이었습니다. 이는 일본인 고문 후쿠다의 보고서와 함께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이어졌죠.
애초에 반도체도 만장일치로 진행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고 이병철 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투자를 결정하고 이건희 회장이 직접 미국에 찾아가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 등 핵심 개발자를 영입했지만, 경영진은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 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 아니냐'라는 반대를 지속했습니다. 품질중심으로 전환했지만, 이전의 기업문화가 만연해 '애니콜 화형식'까지 진행해야 했죠.
◎ 삼성 경영진의 기본 '위기의식'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의 경영하에서도 이미 국내 1위 기업으로 자리했었습니다. 이건희가 회장이 되었을 때도 삼성은 재계 1위의 기업이었죠.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전체에 '위기의식'을 심으며 체질 개선에 나섰습니다. 이건희의 위기의식은 '공포 의식과 달리 회사가 가진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빠르게 변화에 대응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삼성을 성장시킨 원동력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애플의 유일한 적수
노키아, 모토로라 등 수많은 휴대전화 브랜드가 있었지만, 지금의 휴대전화는 애플과 갤럭시가 양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비치지만 삼성전자가 휴대폰 시장에 처음 진출을 결정할 때는 90년대였습니다. 당시 휴대전화는 벽돌처럼 크고 불편해 지금처럼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이건희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라며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그렇게 1994년 애니콜의 브랜드의 첫 제품 SH -770이 탄생했죠. 이후 2009년 삼성의 피처폰 점유율은 2위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건희는 2010년 경영 복귀 후 피처폰이 아닌 '스마트폰' 사업 집중을 지시하기에 이릅니다. 빠르게 피처폰을 포기한 삼성은 이후 갤럭시 시리즈를 이어가며 애플과 1, 2위를 겨루는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한국반도체 부천 공장 전경
◎ 이건희의 실패와 삼성의 운명을 바꾼 사진 한 장
삼성을 진두지휘한 이건희가 과거 아버지 이병철에게 반도체 사업을 제안한 건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병철은 한국반도체 인수를 끝끝내 수락하지 않았죠. 아버지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이건희가 자신의 돈으로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해 첫 경영에 나섰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김광호 전 삼성전관 회장
적자를 보다 못한 이병철이 김광호 이사에게 사업 정상화를 지시하고, 김광호 이사는 한국반도체를 세계 시계 칩 시장 점유율 60%의 흑자 회사로 만들어냈습니다. 의욕 가득했던 첫 실패 이후 이건희는 '부'직함을 달고 묵묵히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능력을 인정받아 장남과 차남을 물리고 1987년 12월 이병철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 회장직에 취임했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이건희의 취임 이후 삼성은 10조 원대에 불과했던 매출을 2012년 기준 300조 원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취임 당시와 비교할 때 삼성의 시가총액은 140배로 증가했고, 수출은 73.7배 증가했습니다. 일본의 자존심 소니 정도는 2005년 이미 제쳤죠. 이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던 이건희 회장이었지만, 2014년 5월 급작스럽게 쓰러져 현재까지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을 논평한 한 언론인은 "반 기업 정서가 역사와 전통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한국에서 세계 모범 회사를 만든 건 놀라운 업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건희 관련 글에서 "이건희의 업적이 대체 뭐냐?", "내가 이건희였으면 더 잘했다."라는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희 회장이 해온 일이 있는 만큼, 그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끼쳤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위기 속 삼성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직원들의 노력과 나아갈 방향을 선택한 이건희의 경영 덕분임을 마냥 부정할 순 없겠습니다.
글 CCBB 피클코
시시비비랩

이건희만큼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는 사람은 극히 드물죠. 그런 점에서 부럽기도 해요.
뭔 미친개소리야 램버스사건때 통찰력으로 우직하게 D램 붙잡고 키운 건희형이 지금의 삼성 만든거지 ㅋㅋ
븅신 대깨문들 기업 세습한다고 개거품을 물던데 니네보다는 경영능력 존나 뛰어난듯.
다른걸 떠나 재용좌 ㅅㅂ 맨날 얼굴이 웃음참기 LV99 상태노? ㅋㅋㅋ
패시브인듯 ㅋㅋㅋ
ㅋㅋㅋㅋ
기업은 오너경영 가야된다. 그래야 미래를 보고 회사를 굴리지. 전문경영인 데려오면 지가 자리차지하고 있을때만 실적내려고하기 쉬움. 상속세도 없애고 좀. 그래야 100년 기업 나오는거지. 겉으론 한국은 100년기업 왜 없나 이 지랄하면서도 정작 상속세로 다 털어서 경영권 고스라니 국가에 반납하게 생김 ㅋㅋㅋㅋ
상속자가 능력이 있을때 얘기지 금호봐라 산산조각났잖아
금호는 병신아 절라도 기업이라서 그런거고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걸 또 절라도 기업이라고 조낸 봐주고 봐주고 쳐하고 잇는거고
한진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대한항공은 아직 2세평가하기엔 시기상조아니냐? 창시자 죽은지 얼마나됐다고
조중훈 : ???
대한항공 3세얀마마
갓거니
삼성없었으면 한국 지금 대만수준에서 멈춰있었겠지
쁘띠거니는 살아계신겨 워떠신겨
재드랑 아빠랑 존나 닮았네
호암 이병철 회장님의 호뽑뽑요 정신 반드시 이어가겠습니다.
재용이 너무 커엽잖어
ㄹㅇ 재d는 볼때마다 웃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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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
애니콜 화형식 이런게 있었어?
아내 뺴고 다 바꿔~ 하면서 당시 삼성 가전제품 다 갖다 놓고 임직원들 스스로한테 불태워 없애버리라 그랬잖아
신경영 선포
마인드 바꾼다고 구미공장에 임직원 다불러서 불량품 5만개 그 자리에서 다 깨부수고 불태움
여러장이잖아 씨발
내가 스탈린이였으면 핵전쟁일으키고 세계 정복함 ㅋㅋㅋ 병신논리 ㅋㅋㅋ
칩성투자좀하라고 시발
이건희 회장도 처음에 엄청 욕먹었다는데 그만의 리더쉽으로 삼성을 발전시킨걸로 알고있음 이재용은 어떨지 기대된다
글로벌기업 삼성은 이건희가 다 만들었지. 이재용은 글쎄.. 이건희랑은 다른 시대라 지분관련해서 문제도 많고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해서 잘될지는 모르겠네.
문재ㅏㅏ앙 뒤졌으면
센징이들 재벌들 똥꼬 존나게 빨아주노 이기 ㅋㅋㅋ 누가 강약약강 아니랄까봐
통구이들의 신이자 우상
홍어들의 신이자 우상 : 한국역사를 퇴보시킨 문재앙
기름 한방울 안나는 후진국 경제를 단기간에 여기까지 올려놓은 머기업 회장님들은 ㅇㅈ이지
내가 이건희였으면 더 잘했다 <- 난 이런 댓글 거의 20년동안 한번도 못봤는데 기자가 소설쓰냐?
다음이란 사이트 안가봣노
근데 이재용은 애비처럼 깡이 있을지가 의문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