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필적감정 전문가 서한서 예일문서원장
연간 총 200~300여건의 감정물 처리
전자패드에 적은 서명도 감정 대상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의뢰 사건 해결에 도움 주기도

“본인의 이름을 10번 써 보세요. 아무리 신경 써도 10번 다 똑같이 쓰지는 못할 겁니다. 글자의 간격, 크기 등이 다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사람마다 본인만의 독특한 특징이 조금이라도 있습니다. 저희는 그 미세한 특징을 찾아냅니다.”


필적도 지문처럼 개인마다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범죄수사나 민사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로 쓰인다. 필적감정물이 수백억원대 재판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글씨체로 진실을 가려내는 서한서(50) 필적감정 전문가를 만나봤다. 

서한서 예일문서감정원장

출처jobsN, JTBC '뉴스룸' 캡처

◇필체로 성격 파악하는 ‘필적학’과는 다른 분야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15년 경력의 필적감정 전문가입니다. 전국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문서감정인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문서의 위·변조 여부를 분석하는 일을 해요. 필적 외에 인영(도장), 지문 등도 다룹니다. 경북대 수사과학대학원 과학수사학과 졸업 후 현재 예일문서감정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가끔 충남대, 경북대 대학원에서 과학수사와 범죄학을 가르치기도 하고요.” 


-필적감정이 정확히 어떤 일인가. 


“필적감정은 법과학의 한 분야입니다. 두 가지 이상의 필적을 두고 그것들을 쓴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겁니다. 필체로 성향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필적학과는 다릅니다. 


필적감정을 할 때는 ‘감정물’과 ‘대조물’이 필요합니다. 감정물은 감정을 받으려는 문서입니다. 진위가 의심되는 필적이죠. 대조물은 감정자료와 비교할 필적입니다. 일기장·메모·편지· 계약서 등 평소 쓴 필적이나, 현장에서 직접 쓰게 한 뒤 얻은 필적을 말합니다. 


의뢰가 들어오면, 감정물과 대조물을 비교해 동일 여부를 식별해요. 전문용어로 이동(異同) 여부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필적감정

출처KBS1 '취재파일 K' 캡처, 예일문서감정원 제공

-필적감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다 지인이 필적감정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죠. 과학수사학 석사·박사 과정을 밟다 보니 필적감정 분야가 참 흥미롭더라고요. 사람들의 글씨체가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글씨체도 항상 똑같지는 않고요.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지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일관적인 특징이 조금이라도 드러나기 마련이에요. 이런 필적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재밌었어요. 빠져들어서 하다 보니 어느새 15년째네요.”


◇연간 총 200~300여건의 감정물을 처리 


-주로 어떤 사건을 다루나. 


"전문 감정인이 맡는 사건은 형사·민사사건으로 나뉩니다. 형사사건 수사 단계에서 발견되는 필적은 국립과학수사원(국과수)이 맡습니다. 저 같은 민간 감정인은 주로 법원 관련 업무를 담당해요. 법원의 전문 감정인으로 등록하면 매년 사건을 할당받을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 증거에 문서 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의뢰를 합니다. 


또 원고 또는 피고가 먼저 개인적으로 의뢰를 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민사사건은 상속 문제·재산분할 문제·차용증·보험청약서·유언장과 관련된 사건이 주를 이룹니다. ‘서명’ 관련한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연간 총 200~300여건의 감정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필적감정의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 


“필적감정은 ‘항상성’과 ‘희소성’을 기준으로 합니다. 항상성은 개인의 필적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희소성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이고요. 두 자료 사이에 희소성이 높고 항상성이 있는 특징을 알게 될 때, 두 자료의 필적은 같은 인물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일단 감정물과 대조물 자료를 최소 60배 확대합니다. 이후 글자의 위치·각도·길이·크기·비율·필압(筆壓)을 분석합니다. 획을 이어 썼는지, 꺾어 썼는지 등의 특징도 비교하고요. 유사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따로 모아 결정을 내립니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정리해서 감정서를 작성합니다. 이 과정을 마치면 증거물이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어디까지나 판사들이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거예요. 최종적인 결정은 판사에게 달려있어요.” 

필적감정도구. 왼쪽부터 입체현미경, 마이크로카메라, 확대투영기

출처예일문서감정원 제공

-필적감정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인가.


“100% 정확하다고는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럼에도 10명의 감정인이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감정물을 분석했을 때, 9명에서 9.5명이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물론 대조물의 상태가 안 좋으면 신뢰도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원본이 아닌 사본일 경우에도 신뢰도가 낮아지고요. 


감정인이라면 대조물의 부족 등으로 판단할 수 없을 때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섣부르게 억지를 부리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수백억원대 재판 방향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려고 합니다.” 


◇대충 끄적인 전자패드 서명도 감정대상 


-디지털 시대, 필적감정 분야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컴퓨터로 서류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 전통적인 필적감정 일이 조금씩 줄고 있긴 해요. 포토샵으로 조작해 위조해서 판단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필적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어요. 중요한 서류는 여전히 자필서명을 많이 하고, 지면에 하지 않더라도 전자패드에 서명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요새는 ‘문체감정’이라는 연구 분야가 뜨고 있기도 해요.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 올린 글, 문자메시지 등의 문체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평소 많이 쓰는 어휘·종결어미·말줄임표·마침표 유무와 같은 말버릇 등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거죠.” 


-전자패드 서명도 감정 대상인가. 


“네. 전자패드 서명은 일반적인 종이와는 달리 기기 종류에 따라 분석이 달라집니다. 패드 면적이 좁고 미끄러워서 까다롭긴 해요. 필압의 여부, 첫 필획이 시작해 끝날 때까지 몇 초가 걸리는지 등의 분석을 통해 전자서명을 감정할 수 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도움 주기도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맡았던 사건이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요. 사건 해결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줄 때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미제사건을 취재하는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등의 의뢰를 받은 후 실제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보람 있고요. 이 일이 힘들지만 계속하는 이유죠."

미제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서한서 원장

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맡은 사건 중에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면.


“문체감정 사건이 기억납니다. 2012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사라진 어린신부’ 편에서 다뤘던 보험사기 관련 사건이에요. 남편이 아내 대신 보험을 가입하고 문서를 작성했었죠. 아내가 평소 쓰는 문체를 거의 똑같이 따라 써서 감정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국 위조문서인걸 밝혀내 수사에 도움을 줬죠.”


-필적 감정인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국과수·대검찰청·국방부 조사본부와 같은 국가기관에서 문서 감정 관련 업무를 5년 이상 해야 해요. 또 국가기관에서 근무했던 사람 혹은 문서감정인에게 5년간 연수를 받으면 조건이 충족됩니다. 최소 1000~2000건의 감정물을 접하고 충분한 연습과 경험이 필요해요. 법의학과 화학에도 지식이 있어야 하고요.” 


-수익 구조는. 


“법원 의뢰의 경우 ‘감정인 선정과 감정료 선정기준’이 따로 있습니다. 필적감정은 한 건당 30만원입니다. 감정물과 대조물 한 종류를 분석할 때죠. 감정물을 1개 추가할 때마다 12만원 초과감정료가 발생합니다. 개인적으로 의뢰할 경우엔 기본 감정료 50만원입니다. 역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요. ” 

방송에 출연한 서한서 원장

출처SBS '궁금한 이야기Y', MBC '시사매거진2580' 캡처

-앞으로의 목표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계속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고 있어요. 요새는 전자패드 서명 장비 개발에 힘쓰고 있어요. 창업을 할까 생각 중이고요. 하지만 필적감정을 놓진 않을 겁니다. 이 일이 주는 보람과 가치는 엄청나거든요.”


글 CCBB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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