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용기 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그린 웹툰 주인공 가면을 쓰고 촬영에 응한 김보통 작가. / CCBB


암 환자들 얘기 다룬 ‘아만자’ 작가 김보통씨

직장 관두고 나와 트위터에 올린 낙서 계기로 웹툰 작가 돼 

“버티기 힘들면 참지 말고 도망치는 것도 방법…평생 만화가로 살고 싶지는 않아” 


‘작가님, 저 죽고 싶어요.’


한 고등학생이 웹툰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너무 힘든 나머지 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읽은 작가는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내용은 이랬다. ‘죽고 싶다는 당신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당신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려주겠다. 그것을 보려면 반드시 살아는 있어야 한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웹툰 작가는 이 학생에게서 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약속한 대로 작품을 준비 중인 웹툰 작가는 김보통(37)씨다. 


‘보통’이라는 필명을 쓸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누가봐도 '보통은 아닌' 작가다. 2013년 데뷔작으로 내놓은 ‘아만자’(암 환자를 소리 나는 대로 풀어쓴 단어)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독자들은 암을 신파의 소재가 아닌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로 다루며 담담히 풀어간 점에 열광했다. 인생의 길목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고민, 장애, 슬픔 등을 토닥여주는 작가로 살고 있는 김씨를 만나봤다. 



◇ 트위터에 그린 낙서로 웹툰 작가 길 들어선 사연  

서른둘. 김 씨가 웹툰 작가로 데뷔한 나이다. 그는 대기업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다. 꾸역꾸역 쌓인 스트레스 체증은 입사 4년 만에 폭발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6개월은 원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냈다. 디제잉도 해보고 제빵도 배워보다가 로스쿨도 준비해봤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트위터에 낙서 올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작가로부터 ‘만화 한번 그려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노동운동을 다룬 웹툰 송곳을 그린 최규석 작가였다. 생면부지 사람의 권유로 이 길에 들어섰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가 뭔가. 

“회사 생활이 나와 맞지 않았다.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고 업무 강도도 너무 셌다. 말기 암에 걸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회식에 참석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회사 와서 울상 짓지 말라는 얘기 같은 것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내가 과연 여기 있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회의감이 계속 들었다. 우울증에다 자살 충동이 심해지니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대리 달고서 2013년에 내 발로 걸어나왔다."  

-평소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나. 어떻게 웹툰 작가가 됐나.   

“어릴 적 꿈은 세계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리포터가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이미 암에 걸린 상태였고 집안에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 그만두고 놀고 있는데 최규석 작가가 트위터를 통해 연락을 주셨다. 정말 큰 행운이었다.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으니 부담갖지 말고 6개월 동안 만화를 그려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로스쿨도 떨어졌을 때였다. 일단 해보기로 했다.”

-만화를 그려본 경험은 있었나. 

“전혀 없었다. 만화를 시작할 때 사람들이 나에게 ‘근본 없는 그림 그린다’는 얘기를 했다. 욕도 많이 먹었다. 워낙 그림을 못 그리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그림이 아닌 글로 승부를 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림보다는 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서 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암 환자 얘기를 데뷔작으로 다룬 이유가 뭔가.

“아버지께서 8년간 투병하셨다. 아버지는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할 때마다 의식, 무의식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와 그런 얘기를 했다. ‘아빠가 꿈속에서 재미난 모험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또 다른 어떤 세상에서 분명히 살아계실 것 같은 생각 말이다. 내가 겪은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김 작가가 그린 웹툰 '아만자'·'디피(D.P)'표지. / 본인 제공



◇ “죽고 싶은 마음 사라지니 뭐든 할 수 있었다”

아만자는 시장점유율 0.1% 수준의 웹툰 플랫폼을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올해 부천만화대상 부천시민만화상 등을 받았고 일본, 대만, 중국, 미국까지 진출했다. 이후 군대에서 탈영병을 잡는 군탈체포조의 이야기를 담은 디피(D.P)라는 웹툰을 냈다. 이 웹툰은 영화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은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을 위한 글을 쓴다. 

-아만자가 독자들 반응을 이끌어 낸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암 환자를 소재로 한 창작물은 주인공에게 시련이나 비극을 주는 최종적인 무기로 암을 사용한다. 내 만화는 암 선고를 받는 주인공을 첫 장면에 넣었다. 암에 걸린 스물여섯 청년 앞에 닥친 돈, 보험, 연애 문제 등 다양한 고통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암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받아들이고 정리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 부분이 독자들에게 와닿았던 것 같다. 암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들로부터 메일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수천 명에게 암 선고를 했다는 한 의사는 웹툰을 보고 그동안 자신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기계적으로 대답을 해 왔는지 되돌아보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만화 주인공처럼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다는 암 환자가 보낸 메일도 기억난다.” 

-밝고 경쾌한 이야기보다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을법한 얘기에 집중한다.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들을 썼다. 아만자 이후에 쓴 디피는 군 생활 시절 내 얘기를 바탕으로 했다. 디피를 쓰기 전 ‘내 멋대로 고민상담’이라는 만화를 세 달 정도 연재했다. 익명으로 들어온 고민을 상담해주는 만화였다. ‘죽고 싶다’는 내용이 정말 많았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어서 독자들에게 내 심경을 솔직하게 풀었다. ‘아직 불행하지 않아’,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같은 책도 내 경험을 담았다.”

-우울증은 결국 극복했나. 

“회사 그만두고 집에 온 날 경비원 아저씨가 날 보더니 ‘왜 실실 웃고 있냐’고 물었다. 지난 4년 동안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서 말이다. 회사 다니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회사를 관두니까 그런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일단 죽지 않게 됐으니 이것으로 됐다 싶었다. 그러고나서 보니까 뭐를 해도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회사 다닐 때와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긴 한다.” 

-필명을 김보통이라고 한 이유가 궁금하다. 

“신입사원 시절 연수를 받을 때 자꾸만 ‘너희는 우수한 인재야’라고 주입을 했다. 세뇌 당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칼국숫집 아들인데 왜 자꾸 특별하다고 하지라는 반항심도 생겼다. 그때 ‘김보통(kimbotong)’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만들었다. 마음속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얼마나 버나. 

“경기도 일산에 얻은 열다섯평짜리 사무실에서 직원 세 명에게 월급 주면서 살 정도는 된다. 먹고 사는데 큰 걱정은 없다. 통장 잔고는 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


연단에 선 김 작가. / 본인 제공



◇ “멀리 있는 목표 좇지 말고, 지금을 대충 살아도 괜찮더라” 

김 씨는 미디어에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언론이나 미디어에 인터뷰 기사가 나갈 때면 '내 멋대로 고민상담'이라는 웹툰 주인공 ‘고독이’ 인형 탈로 맨 얼굴을 가리고 사진을 찍는다. “책을 내거나 인터뷰할 때 ‘대기업 박차고 나온 누구’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굳이 내가 싫다고 박차고 나온 이력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좀 더 유명해지면 알리고싶고요. 지금은 작품으로만 알려지고 싶어요.” 

-요즘 강연 나가면 어떤 질문을 많이 받나. 

“지금 고등학생 관련 만화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고등학교만 50곳 이상은 돌아다닌 것 같다. 학생들이 웹툰 작가에 관심이 많다. 놀라운 것은 그 꿈을 꾸기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이다. 나는 서른둘에 데뷔를 했는데 열아홉 살인 학생들이 너무 늦은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있다. 대비를 하지 못하면 안 될 것이라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내가 하는 얘기는 이렇다. 나처럼 회사 갑자기 그만두고 백수였다가도 만화가 돼서 잘난척하고 떠들며 살 수 있다고. 뭐가 됐든 일희일비하지 말고 주어진 곳에서 충실히 하면 뭔가 돼 있을 거라고 말이다.” 

-흥미 없는 돈벌이를 관두고 싶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표 쓰지 못하는 직장인이 더 많다.  

“내 책의 독자층은 주로 30대다. 강연을 마치면 제일 많이 나오는 질문은 ‘작가님은 어떻게 용기를 내셨나요’다. 나는 용기를 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다. 그냥 도망친 거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까 봐. 사람들에게 말한다. ‘퇴사가 용기의 문제가 된다면, 아직은 해볼 만한 것이다’라고. 나는 그대로 있다가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친 겁 많은 사람일 뿐이다. 내가 용기의 말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지금도 없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만화가가 된 것에 대한 결의나 신념 같은 것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일이 만화가였다. 이것도 힘들면 도망칠지 모른다. 요즘에 메신저 이모티콘에 흥미가 생겨 그 작업도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5억 원 정도 모아서 장학 재단을 만들고 싶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백분위 성적 50%대에 있는 학생들, 평균에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 모두 조금이라도 평균에 가까워지려면 전체적으로 뛰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충 살아도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대충 살라는 말이 그냥 막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너무 먼 목표를 갖고 살지 말라는 거다. 주어진 지금에 그냥 충실히 살면 되는 것 같다. 대기업 그만둘 때 다들 ‘너 망할 거야’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 난 망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 

글 CCBB 에디터 절미
시시비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