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가게도 무시했던 광고천재 "세상에 돌직구를 던져라"




지방대 출신 설움

미국 건너가 광고제 싹쓸이

"일단 시작하세요"



세계 최대 광고제 '원쇼 칼리지 페스티벌' 2007년 금상(최고상) 작품. "대기오염으로 한 해 6만 명이 사망합니다." /이제석광고연구소 제공


이 사진 보신 적 있나요? 미국 뉴욕 한 공장 사진에 권총 사진을 합성해, 대기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공익 광고인데요. '정말 기발하다'는 감탄을 자아내는 이 광고. 알고 보면 한국 청년이 만든 광고입니다. 


'광고 천재' 이제석(35). 광고가 나온 2007년 당시 '세계를 놀래킨 한국인'이라며 떠들썩했습니다. 세계 최대 광고제인 '원 쇼 칼리지 페스티벌'에서 1등상 까지 받았죠. 그의 나이 25세 때 일입니다.


이제석 씨는 지방대 출신입니다. 대구 계명대를 나왔죠. 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2006년 시각디자인 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런데도 취업에는 실패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제일기획·금강기획 등 유명광고회사 문을 두드려지만, 모조리 고배를 마셨죠. 그 흔한 공모전 수상작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지방대란 꼬리표 때문이었죠. 심지어 잠깐 간판 가게를 하던 시절엔 인근 간판 가게 사장님에게도 무시를 당하곤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간판 만들면 망한다고 했답니다. 



이제석씨 제공


이제석 씨는 ‘돌직구’를 택합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24세 때인 2006년 9월 미국 뉴욕으로 떠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에 편입한 겁니다. 그는 여기서 공모전 응모를 계속 합니다.


미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한국 대학은 다 지방대입니다. 출신 대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사라지자 드디어 진가가 드러납니다. 2007년 원쇼페스티벌을 시작으로 1년 간 29개의 세계적인 광고 공모전을 휩쓴겁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칸 광고제 금상도 포함돼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광고 기획사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졌습니다. 2년 간 미국 최대 광고 회사인 JWT 등 6개의 광고 회사에 몸 담았습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2009년 부터 ‘이제석 광고 연구소’를 창업해 상업 뿐 아니라 공익 광고를 다수 제작하고 있죠.


그가 취업준비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어 봤습니다.


이제석 씨가 아카이브로 사용하는 개인 웹사이트. http://www.jeski.world


①돌직구를 던져라


-적성을 어떻게 찾으셨나요?

저는 미술이 좋았어요. 미술을 하다 보니 광고로 발전한 겁니다. 일단 좋아하는 일을 여러가지 해보세요. 그중 경제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찾아 내는 게 적성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돌직구를 던지세요.


-‘돌직구를 던지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원하는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하라는 의미에요. 큰 조직을 경험하는 것도 값진 일이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서만 시간을 투자하는 건 아까운 일이예요. 무얼 하지? 어떻게 성공하지? 고민할 시간에 뭐라도 하세요. 욕이 나올 만큼 별로인 조직도 배울 게 있어요. 작은 회사에서라도 일을 시작해서 나만의 ‘포트폴리오’로 만드세요. 그 다음 원하는 회사에 승부를 거세요.


-취업 준비하다가 해외로 떠나셨어요. 

저는 서양 사회를 경험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우선 논리력이 생겼어요. 그들은 우리와 달리 토론을 많이 해요. 그들과 함께 일하니, 논리가 생기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불필요한 장식을 빼고 본질에 집중하는 능력이 생겼어요. 또 우리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늘 새로운 자극제가 되죠. 많은 청년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직접 공사에 참여하는 이제석. 오른쪽은 이제석 차안 / 이제석씨 제공


②‘허세’를 버려라


-취업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위 계층으로 가려는 열망이 우리를 힘들게 해요. 수저 계급론도 그래서 나온 것 같아요. 어떤 직업이건 최고가 된 전문가를 인정해주는 게 필요해요. 배달의 달인이 있다면 전문가로 인정하는 식이죠. 이런 사람은 확실히 예우해 줘야 합니다. 이런 시대가 오면 굳이 남이 인정하는 직업에 줄 설 필요 없어요.


-광고 디자이너는 선망받는 직업이잖아요? 

광고 만들 때 저도 현장에서 인부들과 같이 삽질을 해요. 광고 디자이너 하면 좋은 사무실에서 아이디어 회의하고 이런 것만 상상하시는데, 실제론 현장에서 몸으로 뛰어야 할 때가 많아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너 공부 안하면 저런 일 한다”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면 안됩니다. 제가 삽질을 부끄러워했다면면 지금 같은 작품은 못 나왔을 겁니다. 허세는 JOB에 아주 치명적이에요.


-이제석 씨는 허세 없으셨나요? 

사실 저도 첨엔 다르지 않았어요. 허세 때문에 3년 만에 망할 뻔했죠. ‘이제석 광고 연구소’를 차리고 나서 직원을 두 명씩 데리고 다녔어요. '높은' 사람이 됐으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죠. 초반 승승장구할 때 한강이 보이는 좋은 사무실로 이사도 했어요. 남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죠. 겉으로 보기에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심각한 재정 악화가 오더라구요. 허세가 낀 작품은 말 그대로 ‘거지’가 돼 갔구요. 그때 정신 차렸습니다. 지금은 반대에요. 저 보세요. 거지같이 입고 자전거 타고 다녀요. 지금이 훨씬 내실 있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고등학교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 공부에 흥미가 없는 대신 좋아하는 미술을 시작했다. / 이제석씨 제공


③자신을 믿어라


-언제 가장 힘드셨어요? 

10대 때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어요. “나 왜 살지?”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교에선 공부 못한다며 미움이란 미움은 다 받았고요. 결국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욕도 없더라고요. 그런 감정에 익숙해지니까 내 자존감이 낮다는 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까지 갔죠.


-자신감을 어떻게 기르셨나요?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조금이라도 잘 할 수 있는 일에 계속 도전했어요. 취직에 계속 실패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잘 할 수 있는 뭐라도 하면서 성취를 느끼세요. 그러면 자신감이 생겨요. 기업도 그런 인재를 원합니다.


-향후 계획은요? 

저는 죽을 때까지 광고를 만들 겁니다. 전문가에게 사회적 인지도가 생기면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들어옵니다. 그럴 때 본인 분야의 일을 발전시키는 것은 괜찮은데, 갑자기 정계로 가거나 다른 사업을 하시는 분이 나오더라고요. 전 그런 분들의 전문성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요. 저는 끝까지 광고만 할 겁니다. 그렇게 쌓여 가는 경험과 실력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어요. 저처럼 특정 분야의 최고가 되려는 청년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글 CCBB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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