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로 그림 그려 요즘은 월 1000만원 벌고 있습니다
모래로 예술 작품 만드는 ‘샌드아트’
사업 실패 후 무작정 학원 찾아가
지금은 샌드아트로 월 1000만원 번다
“1년에 500만원도 못 벌었던 적이 있습니다. 샌드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일감이 없었죠. 먹고 살 길을 찾으려고 무작정 호주로 떠나 40일 동안 거리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여전히 돈은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 천직이라고 믿었으니까요.”
모래로 그림 그리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 있다. 바닥에서 빛이 나오는 ‘라이트박스’를 도화지 삼아 그 위에 모래를 뿌려서 그림을 그린다. 라이브 공연을 하고 TV 프로그램이나 CF에 쓰는 영상도 만든다. 2012년 사업 실패 이후 시작한 샌드아트로 월 1000만원을 벌고 있다는 채승웅(38)씨에게 샌드아티스트의 삶에 대해 물었다.
샌드아티스트 채승웅. /본인 제공
-샌드아트를 접한 계기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2005년 ‘포커스마라톤’이라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월간파티시에’라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샌드아트 공연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객석에 있던 모든 사람이 샌드아티스트의 손짓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모래로 그림을 그린다는 일 자체도 흥미로웠다.
공연을 보고 나서 문방구로 달려갔다. 하얀색 널빤지와 미술용 모래를 사서 혼자 그림을 그려봤다. 종이 바깥으로 모래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틀이 없어서 생각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몇 번 그려보다가 어려워서 그만뒀다. 4년 동안 샌드아트를 잊고 지냈다.
2010년 12월 잡지사를 그만뒀다. 이듬해 3월 ‘더빵닷컴’이라는 제과제빵 소셜커머스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1년 5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사업을 접고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고민했다. 문득 샌드아트가 떠올랐다. 돈을 벌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일단 도전해보고 싶었다. 2012년 9월 32살의 나이에 무작정 샌드아트 학원에 찾아가 상담을 받고 수업을 들었다.”
호주 멜버른 거리 공연에서 그린 고흐의 명화. /본인 제공
-실력은 어떻게 쌓았나.
“한 달 동안 학원을 다녔다. 어렸을 때 꿈이 만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샌드아트도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수업이 없어도 하루종일 학원에서 모래로 그림을 그렸다. 연습량이 늘면서 조금씩 샌드아트에 대한 감을 잡았다.
한 달 정도 지나서 학원 측에서 수강료는 안 내도 괜찮으니까 계속 학원에 나오라고 했다. 강사로 일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다. 학원 수강 3개월 만에 한 장애인복지관 개관 기념행사에서 재능기부 공연을 했다. 2012년 12월부터 수강생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샌드아트에 쓰이는 재료는.
“모래·라이트박스·캠코더·스탠드를 쓴다. 라이브 공연을 하려면 빔 프로젝터도 필요하다.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넓은 스크린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작가마다 다르지만 보통 입자가 고운 사막모래를 쓴다. 밀가루나 커피가루 등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파충류를 키울 때 바닥재로 쓰이는 모래를 주로 사용한다. 가격은 4.5kg에 1만8000원 정도다. 한 번 공연에 700~800g 정도 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어서 비용 부담은 적다. 언젠가 경주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깜빡하고 모래를 안 가져간 적도 있다. 근처 강변에 있는 모래를 채로 걸러서 공연에 썼던 적도 있다.”
채승웅씨가 라이트박스 위에 모래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본인 제공
-어떤 사람이 샌드아트를 하나.
“보통 주부나 경력단절여성이 취미로 샌드아트를 시작한다. 교회에서 신도 상대로 재능기부를 하거나 전도 수단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샌드아트로 대중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사람은 500명 정도라고 본다. 의뢰인 입맛에 맞게 공연을 연출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중 10%(50명) 정도다.”
-외국의 샌드아트는 어떤가.
"샌드아트가 가장 발전한 나라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다. 헝가리 애니메이션 감독 페렌카코가 1970년대에 처음 모래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적으로 샌드아트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쯤 들어왔다. 중국은 ‘사화’(모래 그림)라는 예술 장르가 독자적으로 발전해 자국에서 인기가 많다. 호주는 물론 미국·서유럽도 불모지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편이다.”
본인 제공
-샌드아트로 돈은 얼마나 버나.
“2017년 1월 샌드아트체험 전문 1인 기업 ‘샌드아트코’를 차렸다. 모래와 라이트박스를 들고 다니며 학교나 도서관에서 강의·공연을 했다. 학생들이 직접 샌드아트를 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지금은 ‘부모와 함께하는 샌드아트’와 ‘샌드아트로 배우는 스토리텔링’ 두 가지 과정이 있다. ‘태교에 좋은 샌드아트’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지금은 제자 3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제자들은 나 대신 강의를 나가거나 보조강사로 일한다. 처음 1년은 매출이 미미했다. 작년 여름에는 한 달에 400만~500만원 정도 벌었다. 2018년 9월부터 일이 늘었다. 9월 한 달만 1200만원을 벌었다. 9~12월 평균 매출은 1000만원가량이다.
체험 프로그램은 매출이 꾸준히 나오지만 단가는 낮은 편이다. 한 번 출강할 때 수도권 기준 2시간에 60만원 정도 받는다. 반면 공연은 단가가 높다. ‘사대부의 일생’이라는 공연을 했을 때는 15분 공연에 330만원 정도 받았다. 단가가 높은 대신 일이 자주 들어오지는 않는다. 2018년 9월에는 체험과 공연 매출 비중이 60대40이었다. 10~12월은 축제·연말 시즌이어서 공연 비중이 60대40으로 더 많았다.”
샌드아트로 그린 조커. /본인 제공
-샌드아트를 하면서 뿌듯할 때는.
“내 작품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샌드아트는 언어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일이다. 장애인복지관 개관 기념행사에서 첫 공연을 했을 때는 샌드아트를 보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나도 감동을 받았다. 샌드아트가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힘들었던 적은.
“2014년 일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샌드아티스트로 활동했지만 1년에 500만원도 못 벌었다. 일감을 구하려고 2016년 샌드아트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호주로 갔다. 멜버른에서 40일 정도 거리공연을 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고 팁을 받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샌드아트를 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앞으로 계획은.
“샌드아트로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올해 ‘샌드아트 레시피’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당분간 샌드아트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글 CCBB 송영조
시시비비랩

개금손이신데 ;;; 진작 예술하시지
그래서 철구보다 돈 잘범??
ㅂㅁㄱ
철구 1승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