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한마디에 고연봉 직장 포기했습니다




“눈 뜨면 밥 먹고 계속 공부만 했던 거 같아요.”

연봉 7000만 원 포기하고 9급 공무원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건 돈보다 가족

  

2016년, 9급 지방직 공채에 21만 2983명이 응시했다. 1만1359명이 합격했고, 나머지 20만 1624명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최근 많은 직장인들이 저녁이 있는 생활,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이유로 공무원에 도전한다.  2016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충주시 앙성면사무소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 이정민 주무관(37)도 이 중 한 명이다.

  

그는 한때 연봉 7000만 원을 받는 성남의 한 토목전문건설회사 과장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그러나 2016년 1월 회사를 관두고 9급 시험을 준비해 6개월 만에 합격했다. 아내와 다섯 살 난 딸과의 '저녁 있는 삶'을 위해서였다. 

  

응시자 9462명 중 727명이 2016년 충청북도 신규 지방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충주시 토목직은 7명을 선발했는데 49명이 도전했다. 그는 왜 좋은 직장을 놔두고 월급이 낮은 9급 공무원을 선택했을까. 합격비결을 들어봤다.


이정민 주무관/충주시청 제공


◇가족과 함께하는 9급 공무원의 삶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면사무소에서 진행하는 지역 공사를 감독하고 있습니다. 재해·재난 관련 업무도 보고 일반 민원 처리도 합니다.” 

  

-출퇴근은 언제 하나요


“오전 9시에 출근합니다. 퇴근은 보통 오후 6시에 합니다. 야근하면 저녁 9시에 퇴근해요. 야근은 1주일에 세 번 하고, 한 달에 4번은 주말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루 12시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주말과 밤낮없이 일한 이전 직장보다 낫습니다 “

  

-경제적으로 생활하기에 넉넉한가요


“지금 각종 수당 다 합쳐서 월급은 260만 원 정도입니다. 기존에 받았던 것보다 줄었기 때문에 넉넉하진 않아요. 저축이 힘들어졌습니다. 외식이나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더군요. 첫째와 둘째 달 월급 받을 땐 가정주부인 아내가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대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습니다.“

  

-현재 삶에 만족하나요


“물론입니다.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공무원은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맡은 업무를 잘하면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이니까 뿌듯합니다.”


◇전국의 건설현장 그리고 해외 발령까지

  

-건설업체에서 일하셨다고요


“서울의 한 사립대를 나와 토목전문건설 회사에 입사해 4년을 일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공사 감독을 담당했습니다. ”

  

-근무 환경은 어땠나요


“오전 7시에 출근하면 최소 밤 8시까지 일했습니다. 밤 10~11시까지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주말에도 공사가 있으니까 사실상 한 달에 많이 쉬어야 2~3일이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집이 있는 충주로 돌아왔습니다. 2014년에는 볼리비아 해외 다리 건설 현장에 파견근무를 나갔습니다. 1년 2개월간 가족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해외 현지 근무수당을 포함해 연봉이 7000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이정민 주무관과 그의 딸 서현양/이정민 주무관 제공


그가 결정적으로 9급 공무원을 준비하게 된 것은 딸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2015년 11월, 한국에 휴가를 나와 딸과 놀아주는데 4살 된 딸이 불쑥 이렇게 말을 했다.

   

"아빠와 같이 자니까 너무 좋아요. 이제는 밤에 안 무서워요. 지금까지 밤에 너무 무서웠어요."


딸의 한마디에 그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후회되더군요. 돈만 많이 벌면 가족이 행복할 줄 알았거든요. 그게 아닌 겁니다. 바로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 공사를 끝내고 한국에 와서도 행복할까?' 결론은 아니었어요. 어차피 또 전국을 떠돌며 다닐 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는 휴가 도중 회사를 찾아가 사표를 냈다. 2016년 1월이었다. "전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한국의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가족도 챙기고 일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공무원이 유일한 답이었습니다."


충주 앙성면사무소 인근 지역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이정민 주무관/충주시청 제공


◇“아빠랑 같이 자니까 이제 밤에 안 무서워”

 

-가족들,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직장 동료들이 뜯어말렸습니다. 가끔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나가는 동료들이 있었는데, 실패하고 재입사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당당하게 공무원 시험 본다고 말을 못 했어요. 아내도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토목직 공무원에 도전하기로 했다. 다른 지역으로 갈 일이 없는 충주시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  딸과 아내를 부양하는 입장에서 무조건 2016년에  합격하자고 마음 먹었다.


-시험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9급 공무원 기본서를 펼쳐 들었는데 머리가 '띵' 헸습니다.  아무리 줄 치고 읽고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더군요. 그래서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만 요약해 그것만 외웠습니다. 핵심만 외우고, 까먹지 않은 수준이 됐을 때 살을 붙여 공부했습니다. 요약→암기→문제풀이 순서로 진행했습니다.”

  

-과목별 공부 방법은요?


“한국사는 짧은 인터넷 강의를 날마다 반복해서 들었어요. 국어는 전체 인터넷 강의를 듣고 문법 강의만 한 번 더 들었어요. 문법에서는 외워야겠다 싶은 부문만 요약해서 외웠습니다. 독해는 매일 했어요. 글을 빨리 읽는 연습을 하루에 수 시간씩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풀어야 할 문제 수를 정해 놓고 풀었습니다.


영어는 다 공부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가장 약한 어휘에 집중했어요. 기출단어를 수첩과 포스트잇에 적어 아침에 일어나 눈이 닿는 어느 곳이든 집안에 붙여놨어요. 영어 독해는 하루에 열 문제씩 풀었어요.  독해 기출문제집을 세 번 반복해서 풀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문법은 손도 못 댔어요."



이 주무관 필기 노트


-슬럼프는 없었나요


“ 4월 국가직  9급 시험 때 떨어졌습니다. 공부해보니까 쉽다는 생각에 자만했던 겁니다. 국가직 시험 결과를 보고 정신을 다시 차렸습니다.  밥 먹고, 30분 운동하는 시간 빼고 하루 13시간씩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공부에만 매진했다. 딸은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아내는 달랐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전처럼 돌아가야 하나?' 속으로는 애가 탔지만 공부하는 남편을 위해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2016년 6월, 지방직 9급 필기시험을 봤다. 그동안 퇴직금을 모두 소진했다. 막연히 시험 결과만 기다릴 수 없었다. 잠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형님 소개를 통해 계약직으로 공사 현장 업무를 봤다. 2016년 9월 30일, 건설현장에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합격이었다.



딸과 함게 시간을 보내는 이정민 주무관


◇6개월 만의 합격 후 달라진 생활

  

-전 직장과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습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주말엔 놀러도 갑니다. 기적 같은 변화입니다. ”

  

“아빠 이제 외국 안 나가?" 딸이 인형 놀이 할 때마다 물어본다. "제가 또 집에 없을까봐 자꾸 물어보는 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합격 비법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공무원 시험은 외울 때까지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입니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저를 책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고연봉 받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초라하다는 생각도 드나요?


“나이는 많고, 동기들은 어립니다. 사실 저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은 있어요. 그러나 제 선택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삽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늦깎이 공무원 준비생들에게 조언한다면


“늦은 만큼 절실하게 준비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이룬 후에는 다른 사람보다 늦었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내려간다는 느낌도 들 겁니다. 그때는 처음에 왜 공무원을 하려고 했는지, 그 마음을 되새기세요. 만족감이 더 커질 겁니다."


글 CCBB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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