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번 살충제” 꾸미지 않는 ‘솔직한농부’ 마케팅으로 단골 모아
다른 농가와 협업 ‘솔직한장터’도 운영





전라남도 나주에서 농사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농사를 지었다. 동이 트기 전부터 논밭에 나가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일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한평생 농부로 살면서 나무토막처럼 갈라진 아버지의 두 손을 보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농부야말로 가장 정직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미술 강사, 디자이너, 마케터로 일하다가 귀농을 결심했다.

농산물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평소 잘하던 브랜딩과 마케팅에 집중했다. 연출한 사진이나 과하게 보정한 사진을 쓰지 않았다. 또 직접 농사를 짓고, 브랜드를 내고, 판매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꾸준히 올리면서 고객과 소통했다. 꾸밈없는 솔직한 모습에 단골이 생겼고,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현재 연 매출 30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농산물 브랜드 ‘솔직한 농부’ 이은민(35)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농산물 브랜드 ‘솔직한 농부’ 이은민 대표. /솔직한농부 인스타그램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실력도 뛰어났다. 미술 특기자로 조선대학교에 입학해 시각디자인학과 서양화를 공부했다. 대학생 때는 학원에서 미술 강사로 일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껴 교직 이수도 했다. 이후 디자이너, 마케터로 일하면서 사회 경험을 쌓았다.

-창업 전 디자이너, 마케터로 일하셨다고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보람을 느꼈지만 디자인에 더 흥미를 느꼈어요. 대학 졸업 후 2010년 농산물을 유통하는 회사인 ‘포프리’에 입사했습니다. 디자이너로 2년여간 일하다 보니 마케팅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제품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판매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요소는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직접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온라인 마케팅을 공부했어요. 일러스트, 그래픽 등 디자인 관련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했고 블로그를 찾는 방문자 수도 계속 늘었습니다. 지금까지 작성한 글만 1000여개가 넘습니다.

이후 ‘시골과 도시를 잇는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농업 전문 마케팅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농촌과 도시의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청년들이 모인 곳이었어요. 농수산업과 관련한 인물, 브랜드, 디자인, 비즈니스 소식 등을 전했고, 농산물 먹거리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농산물 브랜드 ‘솔직한 농부’ 이은민 대표와 아버지 이창호씨.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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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골과 도시를 잇는 브랜딩 과정에 큰 매력을 느꼈지만 반복적인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 한쪽에 농부라는 직업에 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여러 일을 했지만 마음은 항상 농촌에 있었습니다.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면서 결과물을 얻는 노동의 가치를 느끼고 싶었죠. 존경하는 아버지처럼 농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7살 나이에 귀농을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귀농 선언에 아버지는 어떤 반응이셨나요.

“부모님은 걱정하셨어요. 농사는 나중에 해도 괜찮으니 좀 더 일하다가 내려오라고 하셨죠. 그래도 제 뜻이 확고했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어요. 올해로 환갑이신 아버지는 한평생 농부로 사셨어요. 아버지의 삶을 존경했습니다. 농부는 그 어떤 일보다 정직한 직업이에요. 땀을 흘린 만큼 돌아옵니다. 노동과 수고로움의 대가가 확실히 있는 직업이죠. 그만큼 보람 있는 일입니다. 농부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이 컸어요. 다들 말렸지만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귀농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 농산물에 분명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업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께서 1년간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는데, 형편없는 가격에 팔리는 걸 알았어요. 마땅한 판로가 없어 힘들게 기른 농산물을 헐값에 파는 경우도 많았죠. 농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농부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농부 스스로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에게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브랜딩과 마케팅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했고, 2014년 ‘솔직한 농부’를 창업했습니다.

사실 농가가 품질, 가격만 가지고 경쟁력을 높이는 게 쉽지 않아요. 차별점을 고민하다가 평소 ‘넌 참 솔직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게 떠올랐어요. 멋지고 화려하진 않아도 솔직한 농산물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마케팅은 상품의 좋은 점을 내세우면서 고객을 설득하는 게 아닌 상품에 판매자의 진심을 담아내는 거로 생각했어요.”

모내기하는 이은민 대표. /솔직한농부 인스타그램


농산물 브랜드 ‘솔직한 농부’ 이은민 대표와 아버지 이창호씨. /jobsN


수확한 농산물을 들고 있는 이은민 대표. /솔직한농부 인스타그램



이은민 대표는 먼저 농산물 브랜딩에 집중했다. 디자인과 마케팅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을 줬다. 꾸준히 운영하던 블로그에 농사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직접 농사를 짓고, 브랜드를 내고, 패키지를 만들고, 상품을 판매하는 모든 과정을 공개했다.

“브랜드에 솔직한 농부의 신념을 담고 싶었습니다. 상품을 예쁘게 연출하거나 꾸미지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고객에게 보여주고자 했어요. 그 흔한 유기농 인증마크도 없습니다. 일부 품목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써 농사를 짓습니다. 다만 벼가 죽어 나가는 시기에 한 번 정도 저농약 약재로 살충을 위한 방제를 합니다. 고품질의 쌀 재배를 위해 왕겨(벼의 겉겨), 목초액 등과 규산질·복합 비료 등을 적절히 사용합니다. 고객에게 농사의 모든 과정을 숨기지 않고 공개했어요.쌀이 담기는 패키지 디자인도 직접 해 비용을 아꼈습니다. 처음엔 마대에 담아 판매했어요. 쌀 순백의 느낌을 살려 30분 만에 패키지 디자인을 완성했습니다.”


소셜미디어로 고객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솔직한농부 홈페이지

직접 디자인한 쌀 패키지. /솔직한농부 홈페이지

농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자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고 단골이 생겨났다. 솔직한 마케팅에 신뢰를 얻는 고객이 늘었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만8000명에 달한다.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에는 총 1만5000여명의 팔로워가 있다. 오직 솔직함과 품질, 고객과의 소통만으로 승부했다. 홍보비를 따로 쓰지 않고도 연 매출 30억원(2020년 기준)을 기록했다. 2019년 매출은 약 16억원으로 1년 만에 약 2배 늘었다.

여러 농가와 협업해 전국 곳곳의 농산물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솔직한농부'. /솔직한농부 인스타그램 캡처


솔직한 농부’는 ‘솔직한 장터’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여러 농가와 협업해 전국 곳곳의 농산물을 소개하고 판매한다. 제품 홍보와 마케팅에 익숙한 이은민 대표가 청년 농부들과 교류하면서 판매를 도와준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갓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소개한다. 연출한 사진이 아니다. 과한 보정 작업도 하지 않는다. 손에 들고 막 찍은 듯한 사진이지만 탐스럽고 신선한 방울토마토의 모습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다. 가격은 유통 구조를 확 줄여 시중보다 저렴하다. 품질도 좋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제품 사진을 보고 고객이 주문하면 방울토마토 판매자가 산지직송으로 상품을 고객에게 보내는 식이다.

“블로그를 오랜 시간 운영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어떠한 정보를 원하는 지 잘 알 수 있어요. 꼭 필요한 정보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게 중요하죠. 처음 2년간은 직접 수확한 쌀만 팔았어요. 주변을 보니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가 많더라고요. 농산물을 입점할 때 대기업에 갑질을 당하는 농가도 많았죠. 예를 들어 농산물을 판매하는 대형 온라인 사이트에 농산물을 입점할 때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요. 조금의 흠집이나 상처가 있으면 되돌려보내는 식이죠. 제가 잘하는 부분을 활용해 농가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있는 좋은 농가를 소개받았어요. 감자, 산딸기, 고구마, 전복, 꼬막 등 다양한 상품을 고객에게 연결해주고 판매를 도와줍니다. 일부러 사진을 연출해서 찍지 않아요. 꾸며내는 건 결국 고객을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농가에서 직접 찍은 사진이나 고객이 찍은 후기 사진 등을 올립니다.

무엇보다 고객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농산물이 언제나 완벽한 순 없지만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판매하는 상품 외에 다른 상품을 찾는 고객에게는 좋은 농가를 직접 수소문해 찾아 소개해드리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수가 2400개가 넘어요. 꾸준히 고객과 소통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은민 대표. /jobsN



이은민 대표. /jobsN



이은민 대표. /jobsN




-농부라는 직업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강사, 디자이너, 마케터 등 여러 생활을 했어요. 농부로 사는 지금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직업이에요. 새벽부터 논에 나가 농사를 짓죠. 요즘처럼 더운 날엔 오전 4~5시부터 일을 합니다. 벼농사 모내기 때, 수확할 때는 말도 못 하게 바쁘죠. 현재 아버지와 함께 쌀, 콩, 잡곡류를 짓고 있어요. 자가로 소유하고 있는 농지는 1만평이 넘습니다. 아버지는 5만평 이상을 소유하고 계세요.

제품 홍보·판매도 직접 하다 보니 눈코 뜰 새가 없어요. 제품을 일일이 포장하고 택배를 보내고 소셜미디어를 운영하고 마케팅·홍보도 해야 하죠. 상품 문의뿐 아니라 ‘벌레가 생겼다’ ‘품질이 별로다’ 등의 컴플레인, 광고 제의 등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어요.

사실 온라인으로 농산물을 팔면 크게 남는 게 없어요. 건강식품이나 화장품 등 다른 제품처럼 높은 마진을 남길 수도 없죠. 사업성을 생각하면 비효율적이죠. 그래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수확한 상품을 판매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힘들 때도 땀 흘려 농사지은 수확물을 보면 큰 보람을 느껴요.

농사로 큰돈을 만져보겠다고 귀농하는 사람도 있어요. 농사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어요.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해야 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못 해요. 스스로 농사일에 대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이은민 대표. /jobsN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앞으로도 사각지대에 있는 전국 곳곳의 농부들을 도와 좋은 농산물을 소개하고 싶어요. 또 점차 농촌에도 많은 기회가 생겨서 농사일을 하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농부라는 직업은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직업이에요. 농부로 계속 일하면서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 많은 고객에게 전하고 싶어요.”

글 시시비비 귤
시시비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