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가 꾸린 부동산
공간 속 이야기·시간에 가치 매겨


준공 후 최소 20년. ‘오래된 집’만 취급하는 곳이 있다. 최근 중개한 곳은 무려 100년이 훌쩍 넘은 건물이다. 돈과 평수 등 숫자로 평가되는 부동산 시장에서 이들은 공간에 대한 정서와 기억, 낭만을 이야기한다. 초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름도 ‘초현실부동산’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학우들이 뜻을 모아 부동산중개업체를 만들었다. 이진오(51) 건축사무소 사이건축 대표와 공간 기획자 박성진(44) 사이트앤페이지 대표가 벌인 일이다.

집은 사는(living) 것이 아니라 사는(buy) 것이 된 요즘 부동산 시장에서 임대수익과 개발호재는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이들은 건물이 가진 이야기와 시간에 가치를 매긴다.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 이야기에 공감하는 공인중개사, 행정가, 도시계획가, 디자이너, 에디터가 모여 팀을 이루고, 협업에 나섰다. 서울 연남동 사무실에서 이진오, 박성진 공동대표를 만나 오래된 건물을 중개하는 이유를 물었다.



초현실부동산 박성진(왼쪽), 이진오 공동대표. /오픈하우스 서울 이강석 제공



초현실부동산은 건축과 공간의 ‘재발견’을 지향한다. 최소 20년 지난 건물이 발굴 대상이다. 지역 생활 문화를 대변하는 건축물이나 기억할 만한 인물과 사건, 시대를 보여주는 공간을 선별해 새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오랜 기간 리서치를 한 후 이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용자에게 중개한다.

웹사이트는 건물의 위치, 면적, 옵션, 방 갯수, 주차 가능 대수 등 정량적 정보뿐 아니라 건물이 간직한 이야기도 함께 제시한다. 건물이 위치한 곳은 어떤 동네이고, 누가 어떻게 지었고, 건물 안 분위기는 어떻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래 후에도 활동은 지속된다. 공간에 어울리는 건축·문화적 기획과 콘텐츠를 제안하고, 컨설팅한다. 건물을 활용한 구체적인 사업 방향이 있다면 브랜딩을 돕기도 한다.

(박성진 대표) “부동산을 거래할 때 공간이 단지 재산적 가치로만 평가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공간에 담긴 역사, 사회문화적 가치를 관심있게 봅니다. 공간을 향유하는 기쁨은 그런 가치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오래된 건물을 무조건 남겨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건물을 보존했을 때 사회문화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초현실부동산’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저희가 하려는 일이 이 시장에서 굉장히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일이기 때문이죠. 말그대로 현실에서 전혀 작동할 것 같지 않은 초현실적 상황이죠. 부동산은 영어로 ‘Real Estate’인데 그 앞에 ‘sur’을 붙이면 초현실이라는 말이 됩니다. 비현실적인듯한 일을 언어에 담아 초현실부동산(surreal estate)이라고 했어요.”
(이진오 대표) “우리가 집을 고를 때는 복합적인 욕구가 작용해요. 장소에 들어섰을 때 위치, 면적, 가격 등을 떠나 소유하거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공간이 가진 분위기나 기억, 이웃 등도 영향을 주는 거죠. 초현실부동산은 이런 복합적인 부분을 발굴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공간을 중개하는 곳이에요.”

-초현실부동산이 추구하는 공간의 ‘사회문화사적 가치’는 무엇인가요?

(박 대표) “건축을 공부했기 때문에 건물이 갖고 있는 건축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봅니다. 다음엔 지역 생활문화 측면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공간이 어떤 정서와 시간을 담고 있는지 봅니다. 이를 사회문화사적 가치라고 해요. 예를 들어 동네마다 오래된 소아과 등 병원이 하나씩 있잖아요. 동네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라면서 짧게는 15년, 길게는 20년 이상 그 공간을 경험하죠. 언젠가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은퇴할 시기가 찾아오고 병원을 폐업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요. 저희는 동네 주민들의 기억이 묻어 있는 공간을 가치 있게 봐요. 자본의 논리로 헐고 조금 더 높은 건물을 짓기보다 공간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용도로 탈바꿈하는 방법을 고민해요.

저희가 중개한 곳은 아니지만 이런 사례가 서울 상도동에 있는 신혜의원이에요.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병원을 퇴임 후 손녀가 스타트업을 컨설팅하는 공간으로 다시 활용하고 있어요. 공간의 옛 기억들을 이곳 저곳에 남겨놓았죠. 이름도 그래도 신혜의원으로 쓰고 있고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한 옛 신혜의원(현 시드그라운드) 건물. /시드그라운드 블로그



-요즘은 신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래되고 낡은 건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요?

(박 대표) “저희가 근대건축을 전공했어요. 한국 1960·70년대 건축물에 관심이 많아요. 학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오래된 공간은 감성적인 측면이 있어요. 새로 들어가 살 집이 어떻게 전해 내려왔고, 살던 사람은 누구였고, 이곳에서 어떤 좋은 일이 있었다는 스토리가 있으면 그 문화적 시간을 이어받는 기분이 들잖아요. 특별한 일이 있었거나 유명인사의 이야기가 얽혀있다면 그 장소가 역사가 되고 문화유산이 되는거죠. 레트로나 빈티지가 꾸준히 유행하는 것도 사람들이 옛것에 대한 기억을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주차도 어렵고 다니기도 불편한 연남동 오래된 다세대 주택 골목 사이 사이를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도 그런 맥락인 것 같아요.

(이 대표) “특정 브랜드 그릇을 살 때도 같은 맥락이에요.단순히 그릇만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함께 사는 거죠. 예를 들어 할머니가 오래 전부터 사용한 이 빠진 접시가 있어요. 그 접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의미가 있죠. 그냥 버리는 것보다 가치 있어요. 이가 빠지면 다른 걸로 떼워 대를 물려 전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공간이나 건축에서도 그런 가치를 찾고 싶어요. 새롭게 이야기를 더해 나갈 분께 공간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빈티지 아파트 대성맨숀. /초현실부동산 홈페이지



빈티지 아파트 대성맨숀. /초현실부동산 홈페이지



-준공 후 최소 20년이 지난 건물이 발굴 대상인 이유가 궁금해요.

(박 대표) “20년으로 설정한 건 신축이나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을 중개하지 않겠다는 저희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함이에요.”

(이 대표) “기술적으로 보면 건물도 생애주기가 있어요. 지어진지 20~25년이 지난 건물은 꺾이는 순간이 찾아와요. 건물을 부숴야 할지, 유지해야 할지 갈림길에 선 상황이죠. 저희는 노후화로 가치가 떨어진 건물의 생애주기를 다시 한번 올려주고 싶어요.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것을 오래 쓰면 좋잖아요. 그러려면 뼈대가 튼튼하고 허투로 짓지 않은 집이어야 합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공간이 발굴 대상이에요.”


초현실부동산 업무 프로세스. /초현실부동산 홈페이지



-초현실부동산 활동 분야가 다양해요. 일반 부동산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박 대표) “의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건물 이력을 추적합니다. 공간이나 장소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나 역사를 따라가보는거죠. 예를 들어 페이지명동(전 한국YWCA회관) 건물이라면 그 건물이 생긴 이유, 건물이 필요했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이 공간에서 얼마나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이나 인물이 거쳐갔는지 리서치해요. 건축학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기도 하죠. 건축주나 소유주를 만나 인터뷰도 합니다. 공간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구술채록이나 기억은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부분이에요. 일반 부동산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들이죠. 그런 부분들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정리해 웹사이트에 게시해요. 매수자가 나타나면 건물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고 계약을 진행하는거죠. 만약 매수자가 건물에 대한 자료를 필요로 하면 저희가 모은 자료와 기록을 공유합니다.”


페이지명동(전 한국YWCA회관) 건물. /초현실부동산 제공



(이 대표) “초현실부동산은 중개업이 베이스지만 중개 후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까지도 함께 고민해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컨설팅을 진행하죠. 건물에 대한 쓰임새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매수라면 뭘로 쓰면 좋을지, 문화·경제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지 컨설팅을 합니다. 물리적 환경 개선이 필요하면 건축설계까지 진행하죠.  해당 공간이 특정한 사업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하면 브랜딩을 도와드리기도 합니다. 건물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일련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저희의 활동입니다. 이 모든 프로젝트를 완료하기까지 6~10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 가치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매수자들이 주 고객일 것 같아요. 실제로 거래가 잘 되나요?

(박 대표) “아직 초기 단계라 거래 실적은 미미합니다. 의뢰가 들어온 매물 네 곳 중 세 곳이 거래된 상황이에요. 오래된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요. 앞서 얘기했던 낭만이나 감성 이런 막연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가치가 있죠. 큰 돈을 들여 빌딩을 세워서 원래 건물이 갖고 있던 특징이 사라지고, 공실이 생기는 것보다 본래 건물이 가진 분위기를 잘 살리고, 고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훨씬 높죠.

연남동만 해도 모서리 땅에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카페나 레스토랑, 베이커리 가게가 기존 주택이나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어요. 철저히 경제논리로 기존 구조를 활용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익구조가 궁금합니다.

(박 대표) “중개는 말 그대로 중간 과정인 것 같아요. 저희에게는 공간 설계나 컨설팅, 콘텐츠 제작이 더 큰 영역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건물 매매가격이 10억원이라면 중개보수는 모두 합쳐 1800만원이에요. 그런데 건물 전시나 리모델링, 설계 등을 함께 진행한다면 수익모델이 더 커질 수 있겠죠.”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 점포 주택. /초현실부동산 제공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 점포 주택. /초현실부동산 제공



-계약이 성사된 곳 중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나요?

(박 대표)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 화교 점포 주택이 최근 성사된 건이에요. 100년이 넘은 건축물인데, 목조 건축으로서 건축적 가치도 있죠. 소유자 인터뷰를 통해 해당 건물이 화교인 인삼 교역상의 창고 겸 주택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해방 후 한국전쟁 화포 속에서도 멸실되지 않고 이어져 오다 성당 교육관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죠. 매수자분은 건물에 관한 여러 자료와 기록을 수집하고 있어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저희도 필요한 부분은 함께 리서치하며 돕고 있습니다.”

-초현실부동산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박 대표) “운영 초기부터 저희가 예상치 못했던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많이 만나고 있어요. 도시 계획의 영역이라고 해야할까요. 단순히 건물이나 집 한 채를 사고 파는 문제가 아닌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죠. 실명을 밝힐 수 없지만, 자신의 발자취와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장소를 남기고 싶어하는 분도 있어요. 수십년 동안 일궈온 장소가 그냥 폐허가 되거나 없어지는 상황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취지를 계승해 장소가 가진 가치가 조금 더 빛 발할 수 있도록 저희도 돕고 있습니다.”

(이 대표) “건축 분야에서는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공간을 자녀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화두에요. 공간이 가진 기억을 보존한 상태에서 현재·미래적 가치를 만드는 일이 유망하다고 판단하죠. 오랜 기억을 간직한 공간을 다음 시대에도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려고 합니다.”


초현실부동산 이진오(왼쪽), 박성진 공동대표. /오픈하우스 서울 이강석 제공



-앞으로 계획과 목표가 있나요?

(이 대표) “올해 말까지 초현실부동산을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해 법인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또 자기가 소유한 공간을 직접 소개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박 대표) “저희 구성원이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초현실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웃음) 몇 년 뒤 가격이 얼마나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바람직한 부동산 형태는 무엇인지, 건축가, 기획자, 행정가, 도시계획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입장을 들어보는 거죠. 건축과 공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어요.”

글 시시비비 이은
시시비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