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흥부전’의 주인공 흥부는 어려운 형편에 수 많은 자식을 먹이느라 고생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탓에 형의 집에 가서 밥을 구걸하기도 했다. 하지만 흥부와 그의 부인이 손 놓고 밥만 빌러 다녔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부부는 ‘조선판 알바의 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많은 알바를 하며 생계 꾸리기에 열심인 사람들었다.



옛날 사람들의 일상./ tvN ‘유퀴즈’ 방송화면 캡처


흥부는 가래질하기(가래로 흙을 파거나 옮기는 일), 논 갈기, 면화 갈기, 이엉(초가집 지붕이나 담을 이기 위해 짚 등으로 엮은 물건) 엮기, 보리타작, 비오는 날 멍석 걷기, 시초(불을 지필 때 쓰는 풀) 베기, 물건 옮기기, 고을 수령 심부름 하기, 말 편자 박기, 분뇨 치우기, 빗자루 만들기, 새벽에 마당 쓸기 등의 일을 했다.


그의 부인 역시 방앗간에서 키질하기, 술을 만들어 파는 매주가에서 술 거르기, 초상집에서 상복 짓기, 제기(제사에 사용하는 각종 그릇) 닦기, 신사집(굿을 하는 집으로 추정)에서 떡 만들기, 추운 겨울날 소변 치우기, 봄나물 캐기, 보리씨 파종하기 등으로 품을 팔았다.

조선시대에는 흥부 내외처럼 품을 팔며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한 번의 거래를 도와주면 초가집 7채를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고수입 직업부터 뼈가 삯도록 일해도 입에 풀칠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일들도 있었다. 조선시대 생활상을 연구하는 강문종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에게 조선시대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선시대 고소득 직업이었던 사쾌./ tvN ‘유퀴즈’ 방송화면 캡처



-조선시대에 가장 연봉이 높았던 직업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돈을 많이 벌었던 직업은 ‘사쾌(舍儈)’입니다. ‘사(舍)’는 ‘집’이라는 뜻의 한자이고 ’쾌(儈)’는 ’거간, 중개인, 상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거간(居間)은 사고 파는 사람들 사이에서 흥정을 붙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쾌는 집을 사고 파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순우리말로 집주름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의 용어로 정리하면 부동산중개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개 수수료는 얼마나 받았을까요?

“수수료는 10% 내외였던 걸로 보입니다. 서울 북창동의 7000냥짜리 고택을 소개해준 사쾌는 700냥 정도의 수수료를 받았는데, 당시 그럴듯한 초가집 한 채가 100냥 내외였으니 어마어마한 돈이었죠. 이 집을 산 사람은 지금으로치면 외교관에 해당하는 역관이었습니다. 역관은 특히 국제무역을 독점 형태로 담당해 조선 후기 최고의 경제적 부유층에 해당했죠.”

-지금은 강남의 집 값이 가장 비싼데 당시 집 값이 가장 비싼 땅은 어디였나요?

“조선시대 한양의 남촌(강남)과 북촌(강북)의 경계는 한강이 아니라 청계천이었습니다. 고위 관리들과 부유층이 거주하는 곳은 북촌이었고요. 지금의 북촌 한옥마을 일대이기도 합니다. 이쪽이 지금의 강남이라도 보시면 됩니다. 당시 한강 남쪽의 강남은 한양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한양(漢陽)’이라는 용어 자체가 한강의 북쪽이라는 의미입니다. 거의 개발되지 않았던 시골에 지나지 않습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압구정(狎鷗亭)’이라는 그림을 보면 당시 강남의 압구정동 일대는 경치가 좋은 산속이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의 일상./ tvN ‘유퀴즈’ 방송화면 캡처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입니다. 따라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신분에 따라 조금씩 달랐던 것 같습니다. 양반의 경우 역시 과거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되는 것을 가장 선호했고, 중인들의 경우에는 자영업(상업), 역관, 의료 분야 등 전문직을 많이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민인 경우 역시 농사와 어업에 많이 종사했고, 천민은 대부분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일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대립군의 수장 역할을 맡은 배우 이정재./ 영화 ‘대립군’ 스틸컷



-분뇨를 처리하는 똥장군이나 돈을 받고 매를 대신 맞아주는 사람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직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가 다른 분들과 함께 쓴 책 ‘조선잡사’에서 다룬 직업에 한 해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공문서를 전달하는 ‘보장사’, 배를 띄울 수 없는 얕은 물가에서 사람이나 물건을 옮겨주는 ‘월천꾼’, 연고 없는 시신들을 매장하고 처리하는 직업인 ‘매골승’, 인조꽃을 만드는 ‘화장’, 연희(파티) 기획 전문가인 ‘조방꾼’, 군대를 대신 가주는 ‘대립군’ 등이 있었습니다."

-투잡을 한 사람도 있었나요?

“가장 적당한 사례가 18세기 최고의 해금 연주자 유우춘(柳遇春)의 사례인 듯합니다. 그는 하급 무관이었습니다. 그에겐 노모를 봉양해야 하는 경제적 절박함이 있었고, 하급 무관의 박봉으로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섯 손가락이 닳을 정도로 노력해 해금을 접한 지 3년 만에 뛰어난 실력을 갖췄습니다. 독학으로 최고의 해금 연주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낮에는 군인으로 근무하고 저녁에는 귀공자들 혹은 명사들의 모임에서 해금 연주를 했습니다. 유우춘은 해금의 대중적 연주보다는 주로 순수 예술성을 중요시하였고 모친이 돌아가신 후에는 더 이상 해금 연주로 돈을 벌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카페나 치킨집 창업을 많이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유행처럼 번진 가게들이 있었을까요?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말씀드리면 당시 유행했던 자영업 가운데 하나는 세책점(貰冊店)입니다. 18세기 후반에 유행한 도서대여업입니다. 소설책이 주된 상품이었습니다. 수많은 한양의 여성들이 소설을 읽느라고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렸다는 비판을 많이 받을 정도로 유행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드라마와 영화에 빠져 여성들이 해야할 일에 소홀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채재공, 이덕무 등이 이러한 사회적 형상들을 걱정하고 비판하는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조선시대 의녀와 기생./ MBC 드라마 ‘대장금’, KBS 드라마 ‘황진이’



-의녀, 기생, 주막 운영 등 이외에도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직업들이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는 좋은 옷들의 경우 모두 해체해 세탁했기 때문에 관련 시장이 매우 크게 형성돼 있었습니다. 바느질 전문 자영업에 해당하는 ‘침가(針家, 지금의 세탁소 및 의류 수선집)’가 있었고, 이 일만 전담하는 여자 종을 ‘침비(針婢)’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단순한 직업이 아닌 전문직에 해당합니다. 혼례에서 신부의 도우미이자 간단한 주례까지 맡은 ‘수모’라는 직업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특화된 직업이었고 이 역시 전문직이었죠. 지금의 용어로 말하면 수모는 웨딩플래너이자 메이크업아티스트의 역할을 모두 담당했습니다. 각종 혼례 용품 대여업까지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외 비단 염색을 전문으로 하는 ‘염모’, 변방의 군관 및 공무원들의 가사를 돕는 ‘방직기’, 화장품 방문 판매업자인 ‘매분구’, 채소전 주인, 잠녀(해녀) 등도 여성들의 직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영화 ‘인어공주’에서 해녀 역할을 맡은 배우 전도연./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해녀는 당시에도 좋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었나요?

“해녀는 제주만의 특화된 직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해녀(海女)’ 또는 ‘잠녀(潛女)’라고 불렀습니다. 전복이나 뿔소라 등을 채취하는 행위를 ‘포작(鮑作)’이라고 하는데 이는 힘들다는 목동의 노동 강도보다 10배가 더 힘든 일이라고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조선 전기까지 이 분야는 주로 남성들의 영역이었고, 아주 일부의 잠녀들이 포작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힘들어 도망가기도 하고 죽기도 하여 진상품을 확보하기도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이에 미역을 채취하는 잠녀들에게 전복 등을 강제로 할당해 물량을 확보했습니다. 1695년 전복잡이 잠녀는 9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미역을 캐는 잠녀는 800명이었습니다. 따라서 18세기 중반을 전후 해서 잠녀가 지금의 해녀의 모습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李健, 1614~1662)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 따르면 ‘이들은 전복을 잡아 관가에서 부여한 역에 응하고 그 나머지를 팔아서 의식을 마련하였다. 그러므로 잠녀 생활의 간고(艱苦)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사치스러운 관리들이 욕심을 내어 교묘하게 갖은 명목을 만들어 징수하니 1년 내내 조업을 해도 그 역에 응하기가 어려웠다’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고액 연봉으로 추정되지만 관리들의 착취로 힘들게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직군으로 나누면 160~ 200여개 정도라고 하는데 정확히 몇 가지 직업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조선시대 직업의 종류는 대략적으로도 추산하기는 어렵습니다. 직업에 대한 정보가 가장 집약적으로 등장하는 의괘류가 있긴하지만 이 역시 대부분 번역이 돼 있지 않아 접근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의괘는 각종 행사들의 결과 보고서에 해당하는 것으로 행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이름과 직무를 대부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직업을 연구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책으로 이옥의 ‘이옥전집’, 조수삼의 ‘추재기이’ 등을 꼽았는데 두 책을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요.

“이옥 전집은 예리하면서도 새롭고 섬세한 문체로 당시의 생활상을 표현한 시와 산문 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 조선은 모든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습니다. 농업과 수공업 그리고 상품화폐 경제가 급격히 성장합니다. 따라서 시장이 발달하고 순수 소비계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됐으며, 사대부들이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광범위하게 몰락하게 되죠. 이러한 시대를 반영한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서학(천주학)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옥은 이러한 시대상을 글에 담아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문인이 바로 이옥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재기이는 조수삼이 지은 조선후기 기이한 인물들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수삼이 선정한 인물들은 대부분 중인 이하의 계층이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들 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대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생’, ‘닭 우는 소리 흉내를 잘 내는 노인’, ‘전문 성대모사꾼 박맵새’, ‘고전소설 낭독꾼인 전기수’, ‘대중적으로 해금을 연주하는 연구자’, ‘황진이 춤과 만석중놀이 개성지방에서 유행했던 인형극 전문가 탁반두’ 등 정말 재미 있는 인물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강문종 제주대 교수./ tvN ‘유퀴즈’ 방송화면 캡처



-교수님은 고전소설 전공자인데 조선시대 직업을 비롯한 생활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있다면요.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모르고서는 고전소설을 대상으로 논문은 물론 감상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부터 모르니 벽에 부딪히게 되더군요. 생활사와 생활문화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컸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일상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분야가 바로 노동이고, 노동을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직업이 나오죠. 직업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부터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조선잡(Job)史’라는 글을 언론사 지면을 통해 연재하기도 했고, 지난해 이를 책으로도 묶어 펴내기도 했습니다.”


시체를 검시하는 오작인./ tvN 프로그램 ‘사피엔스 스튜디오’



-그간 연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싶은가요?

“조선시대로 간다면 전 오작인(仵作人)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검시관에 해당합니다. 의료적 지식과 살인사건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죠. 이 일을 선택하고 싶은 이유는 ‘이 세상에 억울한 죽음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법의학서 제목이 바로 ‘무원록(無冤錄)’입니다. 당초 원나라에서 제작된 법의학서입니다. 검시를 통해 죽음의 원인을 명확히 하는 것은 그 죽음에 대한 원통함 혹은 원망함을 없게 하는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목표가 궁금합니다.

“고전소설을 포함한 고전산문을 대상으로 조선시대 생활문화를 계속 연구하고 있고, 당분간 이러한 연구를 지속할 것 같습니다. 특히 전통시대 여성, 성과 사랑 등의 분야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권의 저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주체적 자아가 강했던 여성 40여명 정도를 모은 책과 전통시대 동성애 관련 저서입니다.”

글 시시비비 포도당
시시비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