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03년 싱가포르항공에 입사했다. 원래부터 승무원을 꿈꾼 것도,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본 신문에 실린 승무원 채용 공고를 본 것이 시작이었다. 마음먹은 지 한 달 만에 승무원이 된 그는 싱가포르를 비롯해 미국, 유럽, 호주 등을 오갔다. 멋진 유니폼을 입고 전세계 하늘길을 누비던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수산물을 유통하는 사업가가 됐다.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바다로 무대를 옮긴 노정아(44) 물만난 해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승무원 채용에 전공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노 대표는 수산생명의학을 전공했어요. 너무 다른 분야인 것 같은데 승무원 채용에 지원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승무원이 꿈은 아니었어요. 신문에 난 채용 공고를 우연히 봤는데 싱가포르 항공이 서류 접수를 하면 바로 승무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더라고요. 큰 부담 없이 경험 삼아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근데 막상 지원하니 잘하고 싶더라고요. 영어 면접에 나올 만한 질문과 답변을 적은 노트를 들고 달달 외웠어요. 승무원하면 날씬한 이미지가 떠올라서 조깅을 매일 하며 체중조절에도 신경 썼고요. 지금이야 쉽게 말하지만 그때의 한 달은 인생에서 다시 하라면 못할 시간이에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며 정말 열심히 준비했죠.”
-열심히 준비했다고는 하나 단기간이었고 경쟁 또한 치열했어요. 합격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다른 지원자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점은 없었어요.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승무원 준비를 오래 해서 면접 요령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딱 하나 잘 한건 남들보다 좀 많이, 잘 웃었어요. 말할 때마다 생글생글 웃으니 면접관들도 같이 미소를 지으면서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저를 뽑아주신다면 제가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볶음밥을 여기 계신 면접관님들께 대접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의외로 면접관님들께서 꼭 먹어보고 싶다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표정과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합격을 살짝 기대해 봤습니다.” (웃음)
-많은 곳을 다녔을 것 같습니다. 비행을 떠나 현지에서 체류할 땐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요.
“싱가포르-인천 왕복 노선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밴쿠버를 매달 가고 가끔 호주나 다른 지역 비행에 현지 크루를 대신해 가기도 했어요. 다들 그렇겠지만 주로 현지에선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러 다녔어요. 현지의 유명한 곳들은 거의 다 가봤죠. 고기보다는 채소나 해산물을 더 좋아해 먹는 건 자연스럽게 해산물 위주였고요. 싱가포르에도 해산물 요리가 많아 특별한 날은 숙소 근처 해변가 시푸드 레스토랑을 찾기도 했죠.”
-일이 손에 완전히 익었을 때쯤인 5년차에 퇴사를 했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도 한데 그땐 5년이 아주 길고 오랜 시간으로 느껴졌어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일을 하는 걸 좋아해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서른 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린 나이죠. 근데 그땐 서른을 넘기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해서 서둘러 퇴사를 결정했어요.”
-퇴사 후 항공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대학교 취업지원관으로도 활동했어요. 많은 학생들을 만났을 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모 대기업 회장님 비서로 1년 정도 일하다 승무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영어 인터뷰, 비행 시뮬레이션 등을 가르쳤어요. 제자들이 국내 항공사뿐 아니라 에미레이트 항공, 마카오 항공, 가루다 항공 등 많은 항공사에 입사했는데 보통 입사 후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연락이 많이 와요. 생각했던 일과 현실이 많이 달라 퇴사를 고민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죠. 한 번은 외항사에 입사한 친구가 밤 11시 넘은 시간에 전화가 와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길래 뜯어 말리러 그 시간에 그 친구가 사는 동네까지 달려간 적도 있어요. 잘 달랬더니 한참 지나 부사무장으로 진급하고 결혼한단 소식을 알려주더라고요. 제자들이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으면 정말 뿌듯해요.”
-2020년 손질 수산물과 식품 등을 판매하는 ‘물만난 해녀’를 창업하면서 수산물 유통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전에 쌓은 커리어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요. 뒤늦게라도 전공을 살려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대학시절 내내 수산물과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졸업 후에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해왔어요. 창업을 해보고 싶어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등 해외 박람회를 찾아다니기도 했었는데 마땅히 이거 다 할 만한 아이템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수산물을 판매하는 한 SNS를 보고 그제야 제가 수산물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길로 제주에서 양식장을 운영하는 선배한테 대학 졸업 후 20년 만에 연락해 사업에 대한 조언을 얻고 태안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우럭 양식장을 찾아가 배 위에서 우럭 손질을 같이 하며 제품을 판매한 게 시작이었고요. 그전에는 이것저것 따져가며 시장 조사를 하다 근거도 없이 전공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산물을 선택한 거예요. 원래 사람은 과정은 논리적이지만 결정은 감정적으로 한다잖아요. 제가 딱 그런 케이스죠.” (웃음)
-수산생명의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재밌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크게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대학도 두 군데 합격했는데 한 곳은 중국어 학과, 한 곳은 수산생명의학과였어요. 중국어학과는 발음이 재미있어서 지원했고, 수산생명의학과는 친구가 거기 들어가면 OO참치에 취업이 된다고 해서였어요. (웃음) 대학 선배가 OO참치 사장이라는 게 근거였죠. 이렇게 전공을 선택했을 정도로 진로에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들어가선 실험 가운 입고 메스 들고 다니면서 생선 해부하고 기생충, 어패류 질병 검사 같은 것들을 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특수학과다 보니 관련 자격증을 따고 졸업하면 정말 취업이 잘 됐어요. 전 승무원을 선택하면서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학교 선후배, 동기들과 같이 수산 관련 일을 하고 있어 도움을 많이 주고받아요.”
-주변에 수산 종사자들이 많다고 해도 경험 없는 대표가 수산물 유통업체를 창업하겠다고 했을 때는 많이 말렸을 것 같습니다.
“네, 말 그대로 뜯어말렸죠. 특히 수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수산물은 유통구조도 복잡하고 신선도가 중요해 신경 쓸 일이 많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템을 찾아보라고 많이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전 반대로 생각했어요. 뭔가 문제가 많다는 건 그만큼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거잖아요. 반대 속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지난해 창업 후 지금까지 사업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들 놀라워하세요.”
-판매할 제품들은 어떻게 선정했나요. 아무 물건이나 고를 순 없었을텐데요.
“‘답은 현장에 있다’. 좋은 제품을 찾으려면 무조건 현장에 가서 생산자를 만나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확인해야겠더라고요. 인터넷, 지인 전부를 동원해 좋은 상품을 만드는 생산자를 찾으러 다녔어요. 반건조 우럭 제품을 유통하기 위해 안면도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우럭포 만드는 작업을 하루 종일 하기도 하고, 완도 노화도라는 섬에 들어가 전복 생산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고 계약서를 써오기도 했어요.
전국 어촌, 수산시장은 제가 제일 많이 다녀봤을 것 같아요. 또 하나 판매 제품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거래처 사장님의 업에 대한 철학이에요.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분들은 제품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있어요. 제품에 대해 말할 때 눈빛이 달라져요. 공통적으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이런 분들은 먹는 걸로 장난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우럭이 짜다는 후기가 많아 거래처에 말씀드렸더니 바로 만들었던 우럭들을 전부 폐기하시더라고요. 이런 분들과만 거래를 하는 게 제 유통 철학이에요. 하나하나 공들여 선정한 품목들이 벌써 60여 가지나 돼요.”
-여러 제품 중 손질 양념 장어 제품이 베스트라고 합니다. 이 제품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손질 장어를 유통하기 위해 전남 영광 출장을 갔었어요. 몇 군데를 돌았는데 손질 장어를 판매하는 곳은 어김없이 직접 판매를 하고 계셔서 가격이 맞춰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다 마지막으로 소개 받고 찾아간 곳이 전북 고창이었어요.
토종 국내산 민물장어 자포니카 종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사장님을 찾으니 다짜고짜 양념 장어 제품을 내미시더라고요. 간편하게 먹기 좋게 잘 손질돼 구워진 장어였고, 포장도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복분자 술과 함께 먹어보니 정말 맛있더라고요. 승무원 시절에 세계의 맛있는 음식들을 고루 먹어봐서 입맛이 꽤 까다로운 편인데 이 양념 장어(bit.ly/3i9s7vJ)는 양념이 입에 짝짝 달라붙더라고요. 장어도 싱싱했고요. 그래서 생산을 시작했어요.”
물만난 초벌 장어./ 물만난해녀
-양념 장어가 잘 팔리면서 양념장을 선택할 수 있는 초벌 장어도 기획했다고 합니다.
“양념 장어가 많이 팔리다보니 피드백도 많이 들어왔어요. 양념된 장어도 좋지만 양념이 안 된 담백한 장어의 맛을 보고 싶다는 요구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양념 안 된 초벌구이 장어를 만들었어요. 소스는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매운맛, 순한맛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요. 온라인몰(bit.ly/3m0y2UL)에서도 인기입니다.”
-간편식으로 나오는 생선구이들은 보통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비린내가 나더라고요. 이 제품도 그런지 궁금합니다. 비린내를 잡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이 혹시 따로 있을까요.
“생선이다 보니 비린내가 아예 없다고는 말씀 못드려요. 하지만 직화구이 공법으로 충분히 익혀 내놓은 제품이라 다른 제품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덜 나요. 맛이나 영양적으로도 우수하고요.양념 장어, 손질 장어 제품은 전자레인지보다는 후라이팬에 살짝 데우거나 에어프라이어에 조리하는 걸 추천해요. 일단 열을 가하면 겉면이 더 노릇해져 맛있어지거든요. 궁합이 잘 맞는 생강을 얇게 썰어 함께 먹거나 양파, 부추를 얹은 뒤 소스를 살짝 찍어드시면 더 맛있게 드실 수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 목표는 무엇인가요.
“고객들이 더 신선하고 맛좋은 해산물들을 드실 수 있도록 전국을 뛰어다닐 예정이에요. 앞으로 더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회사로 커 나가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글 시시비비 포도당
시시비비랩
부경대 출신인가보네
사라시나 루카 바이럴
한비야 아님? 저거 닮았는데
중문과 안 가길 잘했네 ㅎㅎ 중문과 갔으면 중국항공사에 들어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