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유행처럼 번지는 ESG

면접장 단골 질문 됐다

정작 면접관도 지원자도 ‘뜬구름’

취업 준비 6개월 차인 한주영(25)씨는 요즘 난데없는 ESG 공부 중이다. ESG는 환경(Environmne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를 경영 평가에 반영하는 개념이다. 기존 CSR(사회 공헌)에서 더 나아가 기업 평가에 이를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보다 의무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한씨는 ESG 스터디를 꾸려 매주 스터디원들과 돌아가면서 각 기업의 ESG 사례를 분석하고 공유하고 있다. 올 들어 국내 기업에서 CEO들이 나서서 ESG를 강조하고, 관련 부서가 생기는 등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취업을 준비하는 지원자들이 입사 전형에 대비하면서 ESG까지 챙기고 있는 것이다. 


각 기업 CEO들도 ESG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하는 모습. /정용진 인스타그램

◇ESG가 뭐길래…재계 ESG 열풍

“요즘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도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게 아니라 작은 실천을 모으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올해 4월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쓰레기를 줍는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플로깅(조깅하면서 쓰레기 줍는 환경보호 운동) 다음 주자로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등을 지목했다. 말미에는 ‘ESG는 작은 실천부터 한걸음씩’이라고 한 번 더 강조하기도 했다. 재계에선 “요즘 기업인 조찬 모임마다 ESG가 등장한다”는 말도 나온다. 

한화그룹은 상장 계열사 7곳 전체에 ESG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고, SK와 LG그룹 주요 계열사도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를 두고 있다. 

올 초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투자 기업에 대해 탄소배출량 감축 계획서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블랙록은 우리 돈 약 9800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데, ESG 지표를 근거로 투자처를 결정하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이렇듯 CEO가 전면에 나서 ESG를 강조하고, 기업에 전담 조직이 생기고, ESG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면서 기업 채용 흐름에도 영향을 주게 됐다. ‘우리 회사가 G(사회구조) 부문에서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은 각 기업 면접장 단골이 됐다. 


시대가 바뀌면서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그 영향은 면접장에까지 미치고 있다. /SK텔레콤 유튜브 캡처

◇AI 공부하던 취준생들, ESG에 머리 싸맨다

면접 트렌드는 4차 산업혁명에서 ESG로 옮겨가는 모양새이다. 지난해만 해도 신기술이나 AI(인공지능)와 관련한 질문에 대비하던 면접자들은 지망 기업 ESG 사례 분석을 준비해가고 있다. 

‘ESG 자격증’까지 등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국제경영원은 ‘ESG 전문가 자격증’ 민간자격등록을 승인 받아 온라인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응시료만 11만원. 주로 취업 준비생과 대학생이 딴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국내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자격증을 위한 자격증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딱히 가산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며 “차라리 신문이나 관련 리포트를 찾아 읽고 이를 지원 기업과 연결해, 잘 짜인 답변을 준비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직을 준비하는 경력자들에게도 ESG 사례 분석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 GS칼텍스, 농협금융지주, 삼일회계법인 등은 ESG 분야 직원 채용에도 나선 바 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관련 전담 조직을 신설할 예정이다. 그만큼 인력 수요가 더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면접관은 ESG를 알까

한편에서는 ‘그래서 도대체 ESG가 무엇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개념도 명확하지 않고 기업마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기존 CSR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경련의 ‘ESG 준비 실태 및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ESG가 필요한 이유로 ‘기업 이미지 제고(43.2%, 복수응답)’를 가장 많이 꼽아 과거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한 홍보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친환경부터, 상생 경영, 노사 관계, 지역사회 공헌, 남녀 임금 격차 등 거의 모든 기업 이슈가 ESG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볼 수 있다. ESG를 강조하는 회사에서 여성 임원을 단 한 명도 선임하지 않거나, 단순 봉사활동에 ESG 이름만 붙여 기업홍보를 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시중은행은 기존 사회공헌부를 ESG 부서로 개편한 뒤 ‘쓰레기 분리수거’, ‘모니터 잘 끄기’, ‘개인컵 쓰기’ 를 직원들에게 장려하며 ‘ESG 캠페인’이라고 이름붙였다. 이를 전해 들은 한 취준생이 일갈했다. “면접장에서 ESG 일환으로 ‘쓰레기 줄이자’고 하면 빵점짜리 답변이었을 것이다. 면접관도, 답변하는 면접자도 정작 ESG가 뭔지도 모르고 뜬구름만 잡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글 시시비비 와일드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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