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전화번호 유출 난리라는데

국내 영화는 촬영용 번호 사용 가능

제작진 차량·계좌번호 갖다 쓰기도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노출돼 실제 사용자가 피해를 입고 있다. 사진은 드라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실제로 사용자가 있는 전화번호들이 그대로 노출돼 피해가 극심한 상황이다. 극 중에서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건넨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면 400억원이 넘는 상금이 걸린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 때문에 명함에 노출된 번호로 호기심에, 장난 삼아 전화해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1화와 2화에 여덟 자리 전화번호가 등장하고, 마지막회에는 1~2화와 다른 번호가 또 등장한다. 피해자 중 일부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하루 수백 통씩 걸려오는 전화 탓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번호를 그대로 노출한 제작사에 대한 비난도 잇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나 드라마에 노출되는 각종 번호들은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  

◇왜 영화마다 나온 전화번호 똑같지?

아마도 국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번호는 ‘4885’일 것이다. 배우 하정우가 연기하는 살인자를 잡는 결정적 단서로 출장 안마업소 번호 ‘4885’가 등장한다. 극 중 형사가 범인에게 던지는 “야 4885 너지?”라는 대사 역시 유행했다. 이 번호는 나홍진 감독의 예전 집 전화번호 뒷자리를 그대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 ‘추격자’에 나오는 유명한 번호 ‘4885’는 감독의 예전 집 전화번호 뒷자리를 가져다 썼다. /영화 ‘추격자’ 스틸컷

사실 국내 영화계에는 촬영에 쓰이는 전용 전화번호가 따로 있다. ‘여고괴담4’ 등을 연출한 최익환 감독의 제안해, 2011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촬영용 회선 6개를 개통해 영화 제작자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지역번호 02로 시작하는 서울 유선 전화번호 2개, 경기와 부산 각각 1개 회선을 쓰고 있다. 휴대전화 번호는 2개 회선이 영화에서 쓰인다. 영화 제작자가 영진위에 번호 사용을 신청해 쓰는 식으로 번호를 받을 수 있다.

이 번호로 전화를 해보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스크린 노출용 전화번호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는 회선도 있다. 매년 영화 20편 내외가 이들 번호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같은 전화번호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걷기왕(2016)’에서 주인공의 선배가 쓰는 전화번호는 ‘아수라(2016)’에서 주인공의 아내가 쓰는 번호와 똑같다.

◇스태프 개인 번호 가져다 쓰기도 

다만 영진위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국내 영화에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화발전기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만약 ‘오징어 게임’ 제작진이 사전에 이러한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촬영용 번호를 지원받아 쓰긴 어렵다는 뜻이다.

영화와 달리 국내 드라마는 공용으로 쓰는 촬영용 전화번호는 없다. 이 경우 제작진이 촬영용 번호를 개통한 후에 훗날 해지하거나, 스태프의 개인 번호를 동의 하에 쓰기도 한다. 물론 영화 역시 이러한 방법을 써도 된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CG로 화면에 노출된 번호를 지워 편집하거나, 번호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경향이 덜 한데, 관객 몰입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후처리를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터널’에서 배우 하정우가 끄는 K5 차량 번호는 감독이 몰았던 자동차 번호이다. /영화 ‘터널’ 스틸컷

◇’끝까지 간다’, ‘터널’ 차 번호 똑같네

자동차 추격씬이나 재난 영화에서 자동차는 중요한 소품이다. 차 번호 역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도 등록되지 않은 차량 번호를 따로 번호판으로 제작하거나, 스태프의 차량 번호를 쓰기도 한다. 

일례로 ‘끝까지 간다(2014)’와 ‘터널(2016)’에서 나오는 자동차 번호판은 ‘05마 8734’로 같다. ‘터널’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하정우는 극 중에서 아예 ‘기아자동차 대리점 과장’으로 나온다. K5 차량을 타다 터널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차량 번호가 계속 노출된다. 이는 ‘끝까지 간다’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 이선균이 몰았던 자동차 번호와 같다. 두 영화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이 몰았던 자동차 번호라고 한다. 

이처럼 촬영용 공용 번호가 있지 않더라도 여러 대안이 있기 때문에 ‘오징어게임’의 번호 노출 실수가 납득 되지 않는다는 영화 관계자들도 있다. 스태프 개인 번호를 쓸지라도 최소한의 사용자 동의를 받거나, 임의로 번호를 쓸 때도 한 번쯤 실제로 있는 번호인지 확인해보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에서는 계좌번호 역시 화면에 그대로 나와버렸다. 제작진 개인 번호를 동의 받아 썼다고는 하지만, 돈을 보내보는 사람들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해당 계좌를 소유한 제작진이 뒤늦게 계좌를 정리하기로 했다지만 역시 연출 과정에서 세심하게 대비하지는 못 했던 듯하다. 

글 시시비비 와일드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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