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딛고 일어난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국내 다트 일인자 조광희선수
전신 마비 딛고 일어나 시작한 다트
1%의 희망 전하는 사람 되고 싶어
15.5인치 원형 다트 보드 앞으로 한 남자가 절뚝거리면서 걸어온다. 손에 든 것은 다트 3개. 3m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첫 번째 다트를 들고 다트 보드를 겨눈다. 종이비행기 날리듯 팔을 굽혔다 펴자 다트가 과녁 정중앙에 꽂힌다.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다트까지 모두 과녁 가운데에 명중한다.
원하는 곳에 다트를 꽂는 명사수의 주인공은 바로 조광희(40)선수. 그는 2017년, 2018년 2년 연속 국내 다트 챔피언에 오른 국내 다트 1인자다. 이것 말고도 그에게 꼭 따라오는 수식어가 있다. '인간 승리'다. 지체 장애 2급인 그는 2005년 전신 마비 판정을 받았고 3년 반의 노력 끝에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경기도 부천 ‘쵸커스’에서 조광희 선수를 만나 역경을 극복하고 다트 챔피언에 오른 이야기를 들었다.
조광희 선수 / jobsN
◇멀쩡하던 그에게 찾아온 전신마비
조광희 선수는 군 제대 후 직장에 다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2005년 어느 봄날, 일하는데 몸이 욱신거리고 뻐근했다. 당시 그는 가벼운 감기몸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 안 움직이더군요. 그때부터 몸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컵도 못 들 정도로 힘이 없었지만 출근은 했죠. 밖에 나가니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봤습니다.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몸을 절기 시작했어요. 결국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길랭-바레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 판정을 받았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신경 손상으로 신체 일부나 전신 마비가 발생하는 것으로 10만명 중의 1명 정도만 발병하는 희귀 질병이다. 판정받은 지 3일 만에 전신 마비가 찾아왔다. 침대에 누운 그가 할 수 있는 건 숨쉬기와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계속 병원에 누워만 있었다. 병원 신세를 지는 와중에 세 번의 죽을 고비도 넘겼다. "화산 분출 전에 조짐이 나타나듯이 숨이 멎기 전에 신호가 옵니다. 몸이 더 아프고 시야도 좁아집니다. 마음속으로 10, 9, 8…숫자를 세죠. 5초쯤 세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모든 구멍에서 분비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껴요. 그리고 컴퓨터 화면 꺼지듯 기억을 잃습니다.”
다트 대회에 임하는 조광희 선수 / 본인제공
◇3년 만에 다시 일어나다
침대에 누워 누군가는 치료제를 개발해줄 거라고 믿었다. 또 일주일만 지나면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갈수록 지쳤다. 희소병에는 치료제가 없다는 현실을 직시했고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 앞에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다. 바로 병원비였다.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 가계에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결국 집으로 향했다. 병원 재활 치료는 생각도 안 했다. 약값을 다 합쳐 한 달에 300만~400만원이나 하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치료제는 내가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혼자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밑바닥부터 출발했다. 하루는 혀에만 신경을 집중해 움직이고 다음 날엔 목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뒤집기, 기어 다니기 등 재활운동에만 집중했다.
"1년 정도 후 드디어 혼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어머니께서 많이 우셨죠. 그리고 친척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광희 일어섰다고 동네방네 자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죠. 다시 걷기까지 10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사각 지팡이를 사서 한 걸음씩 뗐어요. 가방을 메고 페트병에 물을 채워서 무게를 늘렸습니다. 전신 마비로 쓰러진 지 4년 조금 안 돼서 다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헬스장이었다. 먹고 살려면 더 강해져야 했다. 힘이 없어 손과 기구를 끈으로 연결해 운동했고 11층 헬스장을 하루에 6번 걸어서 왕복했다. 하루에 8시간씩 운동했다. 비장애인이라면 이 힘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회의가 들었다. 2010년 대출을 받아 작은 맥줏집을 차렸다. 악력이 약해 맥주잔을 놓치고 서빙이 느렸지만 언제까지 어머니한테 얹혀살 수는 없었다.
해외 대회에서 우승한 모습 / 본인제공
◇인테리어 소품이었던 다트 기계가 바꾼 운명
가게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다트 기계를 들였다. 손님이 없어 심심할 때 재활운동 겸해서 던졌다. 처음에는 1시간 30분만 던져도 힘이 들어 다트를 놓치기 일쑤였다. 계속 던지다보니 적응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었다. 명중률도 높아졌다. 다른 재활운동이 힘들면 그 스트레스를 다트로 풀었다. 취미로 던지던 다트에 정식으로 입문한 것은 2012년이라고 한다.
“개인용 다트를 직접 샀을 때부터 다트 경력이 쌓인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동호회도 안 하고 대회도 안 나가고 가게에서만 던지는 은둔형이었어요. 그러다 지금의 파트너 서병수 선수를 만났습니다. 당시 지역랭킹 1위 서병수 선수가 제 소문을 듣고 직접 가게로 찾아왔어요. 다트가 뭐라고 여기까지 찾아오는지 의아했습니다. 가게에서 다트 시합을 했고 당시에는 제가 졌어요. 그런데 서병수 선수가 제 실력을 인정하더군요. 그때부터 인연이 돼 모든 대회를 함께 했습니다.”
2015년 말 서병수 선수와 함께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1등이었다. 자신감이 붙어 다음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개인전이나 더블전(2명이 한 팀인 경기)에서 그를 이길 사람이 없었다. 다트 세계로 이끌었던 서병수 선수도 이기고 랭킹 1위에 올랐다. 어느 날 지인이 해외대회도 나가보라고 추천했다. 해외 선수들은 얼마나 잘할지 궁금했다. 2016년 대만 대회에 출전했다. 첫 출전에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같은 해에 다시 도전했고 2016년 대만 오픈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중국 오픈 대회 등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다 보니 팬도 생겼다. 국내 대회에서는 경기장과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외에 나가면 공항에서부터 팬들이 마중 나온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많이 알아보고 사진도 찍어 걸어둔다. 그를 알아보고 음식을 공짜로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기장에서는 몸이 불편한 것을 알고 조광희 선수만을 위한 의자나 도시락을 준비한다.
전신마비 딛고 일어난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다트 챔피언 조광희 / jobsN
◇1% 희망 전하고, 다트 대중화에 힘쓸 것
팬뿐 아니라 다트를 배우고 싶은 사람도 조광희 선수를 찾는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 자세를 봐주기도 하지만 후배를 뽑을 때는 엄격하다고 한다. “면접을 먼저 봐요. 면접에서 직업과 인성 두 가지만 봅니다. 다트만으로는 국내에서 큰돈을 벌면서 성공할 수 없어요. 다트를 취미로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직업이 있는지를 보죠. 인성은 다트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그의 기준을 통과해서 다트를 배우고 있는 후배는 두 명이다. 실력보다는 인성을 먼저 본다는 조광희 선수는 실제로 경기 중에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이미 과거에 한 번 죽었다 살아났는데 고작 다트로 화낼 이유가 없다고 한다. 대회에서도 즐기다 보면 좋은 성적이 따라온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다트를 잘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화를 내는 때도 있다. 국내 다트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들이 부당한 행동을 할 때는 목소리를 높인다. “다트 저변을 확대하는 데 열중해야 하는 곳에서 오히려 방해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납니다. 저와 서병수 선수가 계속 우승을 차지하자 해당 대회를 없애기도 했어요. 해당 회사 소속선수들이 이기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죠. 한번은 어머니가 폐암으로 투병을 하셨어요. 그때는 상금을 위해서 다트를 던졌습니다. 우승했지만 또 제가 1등을 했다는 이유로 상금을 제외한 트로피만 주더군요. 저뿐 아니라 해당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선수들의 무대와 동기를 없앤 셈이에요. 이럴 땐 주저하지 않고 쓴소리를 합니다.”
가게 운영과 다트 대회 참가 말고도 KT&G 상상유니브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다트 강의도 한다. 다트 규칙·용어·던지는 방법 등을 알려주지만 조선수 강의의 핵심은 그의 인생 이야기다. ‘노력해서 안되는 건 없으니 포기하지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 본인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가족이 아픈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경험한 1%의 희망을 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도 1%의 희망을 보고 일어났으니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또 다트 선수로서는 다트 대중화에 힘쓸 겁니다. 유럽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트를 접합니다. 관심이 많다 보니 대회 권위도 높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노력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누구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글 CCBB 하늘
시시비비랩

1빠
1빠
와... 어떻게 수염이 저렇게 나지? 개간지;;ㄷㄷㄷ
멋있네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