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 김홍국 회장, 아토피 딸 위해 건강한 라면 개발
5년 만에 출시한 프리미엄 라면으로 출사표

라면을 유독 좋아하던 어린 막내딸은 라면만 먹으면 온몸에 아토피가 올라와 온몸을 벅벅 긁었다. 막내딸이 아토피 걱정 없이 좋아하는 라면을 맘껏 먹길 바란 아빠가 손수 라면 개발에 나섰다. 하림그룹 김홍국(64) 회장. 하림이 최근 출시한 ‘더미식 장인라면’의 배경엔 애지중지한 그의 딸이 있었다. 김 회장의 최애 음식도 라면. 제대로 된 라면을 만들기 위해 신경 쓰다 보니 출시까지 5년이나 걸렸다. 

그래봤자 라면이지, 뭐가 다를까. 더미식 장인라면(bit.ly/3GLn1jR)은 ‘프리미엄 라면’을 표방한다. 재료부터 공정까지 기존 라면과 차별화했단다. 그래서인지 라면 가격도 남다르다. 한 봉지에 2200원. 일반 라면보다 30%가량 비싸다. 뭐가 달라도 다른 게 확실할까? ‘세상에 없던’ 라면을 선보인 김 회장을 만나봤다.


아토피가 있는 딸을 위해 건강한 라면을 만들었다는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지난 10월 더미식 장인라면 출시를 기념해 열린 미디어 행사에서 직접 끓인 라면을 선보이고 있다. /하림그룹 제공

-닭고기 전문 기업 하림이 라면을 만든 사연이 궁금하네요.
 
“막내딸이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을 했어요. 라면이나 가공식품, 중식만 먹으면 온몸에 아토피가 올라와 온몸을 긁는 바람에 저와 아내가 밤잠 설치고 부채질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유독 라면을 좋아했고 라면 다운 라면이 아니면 입에 대질 않았습니다. 아내가 아토피 때문에 스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 끓이거나 좀 건강해 보이는 라면 제품을 사 먹이면 한입 먹자마자 ‘이거 라면 아니잖아’라며  먹질 않았어요.  

그래서 10년 전부터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로 라면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고, R&D 팀에서도 연구를 시작했어요. 이렇게 만든 스프로 바꿔 라면을 끓였더니 딸이 눈치채지 않고 먹기 시작했어요. 아토피로 몸을 긁는 일도 없었어요. 딸이 커서 유학길에 오를 때 이 라면 스프만 따로 싸서 보내기도 했어요. 

사실 저도 라면을 정말 좋아해서 자주 먹었어요.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면 비행기 내리기 전에 꼭 라면을 한 그릇 먹고, 집에서도 종종 끓여 먹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라면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 덜 먹게 되더군요. 좋아하는 라면을 부담없이 속 편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뿐 아니라 전 국민이 사랑하는 라면을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보기로 하고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미엄 라면’이라고 강조하는데, 기존 라면과 어떻게 다른가요?

“더미식 장인라면(bit.ly/3GLn1jR)은 기존 라면과는 다릅니다. 라면에는 분말가루 스프를 사용하는 것부터 건강을 표방한 제품까지 구색을 갖추고 있지만 진짜 재료를 담은 라면이 없는 것이 늘 아쉬웠어요. 배고파서 한끼 때우는 라면이 아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 같은 라면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미식으로 즐길 수 있는 라면 말이죠. 저희는 기존 라면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라면에서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줘서 라면 시장 전체를 키우고 싶습니다.

더미식 장인라면의 차이점을 꼽자면 먼저 국물을 들 수 있습니다. 국물은 고기 핏물을 빼고, 사골·돈골·닭고기·소고기 등을 따로 저온에서 고아 육수를 냅니다. 그렇게 낸 육수를 황금 비율로 배합합니다. 양념 안 된 순수한 육수에 파·청양고추·양파·고춧가루·버섯 등 야채를 함께 넣고 끓여 국물을 완성합니다. 이 국물을 농축해 살균 포장합니다. 가루로 된 스프가 아니라 농축된 국물 그 자체가 라면에 들어 있어요. 

또 다른 차이는 면입니다. 면을 반죽할 때 물 대신 고기, 야채 등으로 만든 육수를 사용합니다. 건면의 경우에는 튀기지 않고 건조했어요. 강한 열풍으로 위아래 균일하게 건조하는 제트 건조방식을 도입해, 면에 수많은 공기층을 만들어 국물이 잘 스며들고 쫄깃한 식감을 구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큼지막한 건더기도 별미지요. 라면을 먹을 때 면과 국물만 있는 것보다 건더기가 보이고 씹히는 맛이 있어야 더 맛있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건더기를 최대한 큼지막하고 풍성하게 넣을 것을 고집했습니다.”

더미식 장인라면은 사골, 소고기, 닭고기, 버섯을 20시간 우려낸 국물을 사용한다/하림그룹 제공

“‘From The Scratch(처음부터)’.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자, 라면 맛을 제대로 내려다 보니 개발기간이 오래 걸렸어요. 가장 오래 걸린 건 라면의 감칠맛을 찾는 거였어요. 라면 스프 특유의 감칠맛이 라면의 핵심 요소이니까요. 몇년을 연구한 끝에 환상의 조합을 찾아냈어요. 우리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인데, 이 재료를 넣는 순간 감칠맛이 완성되더라고요. 그게 무엇인지는 기밀입니다. 

면발에도 신경을 썼어요. 저는 불은 라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면과 국물이 따로 노는 것도 참을 수 없어요. 그래서 라면 한 그릇을 다 먹는 동안에도 면이 최대한 불지 않게 유지되고 국물과 면이 조화를 이루도록 고민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 모든 것을 구현하고자 국내외 많은 라면 식당들, 그리고 라면과 관련된 제품 제조사들의 최신 설비들을 검토하고 고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인 설비로는 제가 구상하는 다양한 맛을 구현할 수 없었어요.” 

-한 봉지에 2200원인 비싼 가격에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면’이란 이름으로 같이 불리지만 저는 우리 라면이 기존 라면과 카테고리가 다르다고 봅니다. 타깃 시장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라면은 기존과는 다른 노력을 들였고, 가격 차이보다 훨씬 더 높은 원가를 들여 만듭니다. 이런 맛을 충분히 가치 있게 생각해주는 소비자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SNS나 온라인몰에 만족스러운 후기를 남겨주는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장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더미식 장인라면 후기. /인스타그램(@_____nnaho) 캡처

-라면 광고도 화제입니다. ‘오징어게임’으로 월드 스타가 된 이정재 배우가 모델이에요.


“처음에 라면 광고를 하자고 했을 때 실무진들과 모델의 요건을 3가지로 정했어요. 고급지면서도 위트 있는, 그리고 라면을 평소에도 즐기고 화면에서 잘 먹을 수 있는 모델이었습니다. 이 요건에 딱 맞는 사람이 이정재였습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오징어게임’에 대해 잘 몰랐는데, 계약 후 오징어게임이 큰 성공을 거둬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더미식 라면이 좋은 기운을 얻은 것 같습니다.”


-라면을 시작으로 ‘더미식’이란 브랜드로 가정간편식을 출시할 예정이라고요.

“가정간편식의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소비자들도 ‘간편’에서 ‘미식’으로 점점 니즈가 커지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식품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간편식도 미식으로 즐길 수 있는 고급화된 브랜드를 선보이려고 합니다. 이제는 가정간편식에도 새로운 카테고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더미식 장인라면은 배우 이정재가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이다. / 하림그룹 제공

-종합식품회사를 넘어 홈쇼핑, 해운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데, 하림의 궁극적인 사업 방향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식품 사업은 제가 해온 사업의 기초이자 본질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이 아닙니다. 홈쇼핑, 해운사업 역시 같은 맥락의 사업입니다. 모든 사업은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먹는 식품은 태양 에너지가 원천입니다.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곡물로 만들고 그 곡물을 사료로 만들어 가축들을 먹입니다. 가축들을 키워 고기로 만들고 고기로 식품을 만듭니다. 식품이 식탁에 올라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유통과 판매가 필요하죠. 농장과 공장,  시장을 거칩니다. 농장, 공장, 시장이라는 삼장(三場)을 통합적으로 경영하는 방식을 이미 젊은 시절 닭고기 사업을 하면서 창안하고 적용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24%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곡물 절대부족 국가로 특히 사료 곡물은 거의 전량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다루는 국내 기업이 없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곡물사업을 구상해왔기 때문에 팬오션이라는 벌크 전문선사가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M&A 시장에 나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인수에 나섰습니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거나 사업을 다각화했다는 분석들이 많았지만, 제가 구상했던 종합식품사업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은 것 뿐이었어요. NS홈쇼핑도 국내 홈쇼핑 가운데 유일한 식품전문채널이에요.

닭고기도 식품이고 국, 탕, 찌개, 즉석밥, 라면, 만두 등도 다 식품입니다. 회사의 사업방향이나 목표는 여전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11살에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해 축산업계 1위 기업을 키워낸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꼽힙니다. 적성에 맞았는지, 혹시 다른 꿈을 꾼 적은 없었나요?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께서 주신 병아리 10마리가 오늘의 하림그룹이 되었습니다. 철부지 어린 아이가 병아리 10마리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 외할머니가 병아리를 사업의 밑천으로 삼으라고 주신 것도 아니었고, 저 역시 그 병아리로 오늘날의 하림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저 평범한 초등학생일 뿐이었고, 병아리를 잘 키웠을 뿐입니다. 다만 이 병아리를 잘 키워야겠다는 의지와 목표는 있었어요. 어머니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다 병아리를 먹이기도 했고 당시 흔했던 개구리나 미꾸라지를 잡아 삶아 먹이기도 했어요. 

병아리는 잘 자랐습니다. 실하게 자란 어미닭을 보고 닭장수들이 닭을 사가겠다고 하여 팔았습니다. 한 마리 값이 대략 250원이었는데, 이 닭을 팔아 3000원 정도를 받았어요. 이 돈이 제가 처음 만든 사업자금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샀어요. 병아리 한 마리가 7원이었어요. 10마리 병아리가 400마리 넘게 늘어났어요. 닭을 키우는 게 작은 사업이 된 셈이었죠.

그 뒤 돼지도 키우고 염소도 키웠습니다. 순전히 가축을 기르는 재미로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사업자등록을 내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료를 대량으로 사야 할 만큼 가축들이 많아졌고 사료를 구매하기 위해 사업자등록이 필요했었어요. 

지금까지도 사업가의 길을 걷는 것을 보면 그 일이 제 적성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모두 교육가셨고 다른 형제들도 모두 대학 총장, 초·중등 교사, 공기업 직원 등으로 일했습니다. 4남2녀 중 저만 유일하게 가축을 키우고 사업을 했습니다. 부모님께선 반대도 하셨어요. 하지만 제 뜻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적성을 찾아 사업을 했으니 어떤 일보다 즐거웠고 저에겐 다른 목표나 길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림그룹 사옥. /하림그룹 제공

-그동안 위기도 많았던 걸로 압니다.

“지금까지 3번의 큰 시련과 위기를 겪었습니다. 시련을 겪고 나면 스스로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위기를 벗어나 뒤돌아보면 저도 회사도 한 단계 성장해 있는 걸 봤습니다.

젊은 시절 잠시 방황하던 사이 사업이 망가지고 빚쟁이들을 피하면서 돼지를 기르던 돈사에 모기장을 쳐놓고 잠을 잤던 때가 있어요. 모든 것이 싫었고 좌절이 깊었습니다. 실의와 좌절 속에서도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어느 날, 동네 가게에서 우연히 소시지를 발견했습니다. 돼지 가격이 폭락하여 양돈업을 하던 제가 졸지에 빚쟁이 신세가 되었는데, 왜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는 값은 그대로일까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가공식품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련 속에서 얻은 값진 교훈이었습니다. 1차 농축산물에 부가가치를 만들어 2차 가공식품으로 만들고, 이를 시장에 내다 파는 삼장(三場) 통합경영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닭이나 돼지에 먹이는 사료도 직접 조달하면 사룟값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닭고기 산업에 통합경영을 적용시키기로 하고 하림을 설립해 선진화된 도계공장, 육가공 공장을 만들어 가며 통합경영을 실천했습니다. 시련이 잦아들고 안정을 찾은 어느 날 돌아보니 작은 양계장을 운영하던 제가 닭고기 산업을 이끄는 전문경영인이 되어 있었고 하림도 크게 성장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1997년말 IMF 외환위기 때 찾아왔어요.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모면하기 어려웠습니다. IMF의 구조조정 칼날 앞에 대마불사라던 대기업과 은행들도 줄줄이 쓰러지는 상황에서 하림과 같은 중소기업은 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어요. 백방으로 노력해 IBRD(국제개발은행) 산하의 국제금융공사(IFC)와 연결끈을 찾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가진 비전과 경영철학, 하림의 비즈니스 모델, 식품산업의 미래 등에 대해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끈질기게 대화하고 설득했습니다. 1998년 10월 마침내 IFC가 하림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나자 주위에서는 저를 단순한 사업가에서 국제적인 금융기관에서 인정받는 경영인으로 평가하고, 회사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위기는 대형 화재였어요. 회사의 물적 토대가 굳건해지고 다른 경쟁업체를 한참 따돌리고 앞서가던 2003년 5월, 연면적 1만평이 넘는 본사 공장이 송두리째 불타버린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피해액만 1000억원이 넘는 어이없는 참사였습니다. 공장이 불탔으니 제품을 생산할 수 없었지만, 거래처와 소비자 신뢰를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공장을 새로 짓고 한쪽에서는 다른 공장을 빌려 닭을 생산하고 거래처 공급을 유지했습니다. 불탄 자리에 새로운 공장을 지었는데, 화재가 발생한 지 1년 만에 공장이 재가동될 수 있었어요. 주위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신속한 복구였습니다. 시련속에서 단련 받고 실패 속에서 얻은 경험이 화재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됐습니다.


-회장님은 수십억원의 나폴레옹의 이각모를 비롯해 초상화, 훈장 등을 수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모자가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을 우연히 라디오 뉴스로 접하고 ‘이건  내가 사야 할 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 섬 출신의 시골 소년이 황제가 된 건 1%는커녕 0.001%도 안 되는 가능성을 현실화시킨 거예요. 

나폴레옹은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저는 그의 도전 정신과 열정, 긍정적인 에너지의 상징인 이각모를 꼭 가져오고 싶었어요. 나폴레옹의 모자를 확보하기 위해 파리 경매가 열리는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 직원을 보냈습니다. 낙찰을 받고 보니 세계적인 사건이 되어 있더군요. 국내외 큰 관심이 쏠렸고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언론 매체가 기사로 다뤘죠.”

김 회장이 낙찰받은 나폴레옹의 이각모는 나폴레옹이 200여년 전 이탈리아 마렝고 평원에서 오스트리아 멜라스 장군이 이끈 7만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둘 때 쓴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당시 낙찰가는 26억원이었다.  

“저는 그의 모자가 아니라,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한 그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그 가치를 구매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불가능은 없다’ 라는 정신을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세대인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이각모와 함께 전시할 초상화, 훈장 등을 함께 구매해 판교에 작은 갤러리를 만들어 전시하고 일반인들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4년 김홍국 회장이 24억에 낙찰받은 나폴레옹의 이각모. /하림그룹 제공

 -앞으로의 꿈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들이 각 분야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에 오르는 것입니다. 규모의 최고가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상태, 최첨단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에요. 이것이 곧 ‘단순함을 추구하라’는 하림그룹의 경영철학이 실현된 상태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이 극대화되고 그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된 모습을 말합니다. 자연 소재와 신선함으로 최고의 맛을 가진 식품을 만드는 것도 ‘단순함이 추구된’ 경지이고 그것이 곧 기업가로서의  꿈과 목표입니다.”

글 시시비비 키코에루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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