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절대 못 잃는 오뚜기 라면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오뚜기가 출시하는 제품 대부분이 노란색 포장이라는 내용이다. 평소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실제로 오뚜기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라면뿐 아니라 오뚜기 제품 대부분에 노란색이 들어간다. 심지어 회사 업무 차량도 노란색이라고 한다. 오뚜기가 이토록 노란색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오뚜기의 첫 제품 ‘카레’에 있다. 노란색을 띠는 카레는 오뚜기 역사에서 중요성과 상징성을 인정받으며 오뚜기를 대표하는 색깔로 자리 잡았다. 한편 노란색은 ‘안전’을 상징하는 색으로도 쓰인다. 노란색이 제품 디자인 90%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오뚜기가 식품기업으로서 어떤 가치와 방향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오뚜기 창립자 고 함태호 명예회장은 40살의 나이에 오뚜기를 창립했다. 오래도록 배고픔과 영양 부족에 시달리다 한국전쟁까지 겪으며 더욱 굶주렸던 시대 상황이 식품 사업을 시작한 동기가 됐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미담으로 ‘갓’이라는 칭호를 얻고, 국내 식품 기업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이미지가 좋은 기업으로 성장했다. 소비자의 충성도도 50년 이상 높게 이어지고 있다. ‘갓뚜기’로 불리는 오뚜기의 창업 스토리를 알아봤다.
◇군문(軍門) 나와 경영인으로
1930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5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함 회장은 월남 1세대다. 그의 아버지 함형준은 ‘계동산업’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원산 앞바다에서 나는 생선 건어물을 전국에 공급하는 사업을 했다. 하지만 광복 후 남북 이념 대립이 극심해지고 사실상 38선이 분단되면서 아버지는 월남해 부산에 정착했다. 그 뒤를 이어 소년 함태호와 남동생들이 서울로 내려왔다.
경기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함 회장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난 대신 군에 자원입대를 택한다. 학도병으로 입대해 참전하기로 한 것이다. 입대하면 열 중 대여섯은 목숨을 잃던 상황이라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 났는데 이렇게 놀 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육군종합학교에서 전투 교육을 받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최전선 국군 제1시단으로 배치돼 전투장교와 작전장교 임무를 맡고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
전선에서 사선을 넘나들었던 함 회장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육군 정보부 지도과에서 근무하다 1957년 소령으로 군을 전역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국민경제가 굶주린 상황이었다. 함 회장은 식품산업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조흥화학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고 함 회장의 아버지가 동업자와 함께 만든 조흥화학은 사카린, 뉴슈가로 알려진 인공감미료를 만드는 회사였다. 식품회사 사원인 만큼 그의 가장 큰 관심사 역시 ‘식품’이었다.
지금의 오뚜기 상표도 함 회장이 조흥화학에서 근무하던 시절 탄생했다. 당시 조흥화학의 경쟁업체는 ‘럭키’였는데 이들과 경쟁하려면 전략제품에 대한 심벌마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조흥화학이 ‘오뚜기’ 상표로 새롭게 알려지던 어느 날 함 회장은 상품 기획차 방문한 일본에서 카레를 처음 맛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카레는 밥에다 부어 먹기만 하면 되는 데다 매운맛을 즐기는 국민 기호에 부합하는 제품이었다.
함 회장은 귀국 후 곧바로 카레 개발에 매달렸다. 그렇게 1968년 조흥화학 오뚜기표 카레가 세상에 처음 나왔다. 인도의 커리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새로운 식품으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조흥화학은 주력 제품인 사카린 영업에만 집중해 카레는 주요 품목으로 다루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카레는 잘 팔리지 않았다.
함 회장은 식품회사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선 단순 첨가물 외에 ‘식품다운 식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카레 판매 부진 문제는 내가 책임지겠다. 그러나 내가 만든 상표인 오뚜기와 카레는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1969년 함 회장은 마흔의 나이에 서울 중구 북창동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하고 ‘풍림상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오뚜기의 모태가 되는 기업이다.
◇50년 식품 외길의 첫걸음, 카레
창업 후 처음 출시한 제품 역시 카레였다. 함 회장은 당시 가구당 평균 가족 수 5.2명을 고려해 한 봉지당 5인분짜리 분말카레를 만들어 판매했다. 영업사원으로 전국을 발로 뛰어다닌 결과 창업 첫해부터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더울 때 간편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는 점과 더 이상 카레를 낯선 식품으로 보지 않는 인식의 변화가 작용했다.
창업 2년 만인 1971년에는 토마토케첩, 이듬해에는 마요네즈를 국내에 소개했다. 이후 1973년 사명을 ‘오뚜기 식품’으로 변경했다. 로고에 입맛을 다시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겨있듯이 오뚝이(오뚜기)는 옛날부터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장난감이기 때문에 늘 함께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1980년대에는 국내에 진출한 세계 최대 케첩 회사 미국의 하인즈사와 10년 넘게 시장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그동안 겪어온 불량품 및 밀수품과의 전쟁과는 다른 세계적 기업과의 전쟁이었다. 기술 발전이 곧 승리하는 길이라 판단한 함 회장은 일본과 기술제휴를 맺고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어 ‘고소하다’ 등의 광고 문구를 내세우며 경쟁에 맞섰다. 결국 외국 기업은 고배를 마시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국산 제품을 애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함 회장은 이를 두고 평전에서 “순수한 우리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싸웠기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오뚜기는 수프, 식초, 라면 등을 연이어 출시하며 식품기업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설립 10년 만에 매출 100억원, 1988년 1000억원을 달성하며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토대를 다졌다. 이어 2017년에는 매출 2조원을 기록했다. 오뚜기는 50년 이상 꾸준히 식품 사업에만 몰두하면서 주방에서 오뚜기 제품이 빠질 수 없는 생활기업이자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함 회장의 경영철학
오뚜기가 이렇게 성장한 데에는 ‘현장 중심’ 등을 외쳐온 함 회장의 진두지휘하는 성격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식품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뚜기가 가야 할 세 가지 방향을 정했다. ‘국민 대다수를 위한 선택’, ‘우리 식품 시장 개척과 안전한 식품 공급’, ‘선발 기업으로서 확고한 이미지 구축’이다. 오뚜기 창업 당시에는 국내 식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았다. 이런 사회상의 변화를 빠르게 읽은 함 회장은 ‘식품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만들으라”며 우수한 품질의 식품 생산을 강조했다.
또 가장 식품회사다운 문화이자 오뚜기 역사에서 특색 있는 전통 중 하나가 ‘시식회’다. 시식회 전통이 시작된 곳은 함 회장의 집이다. 연구개발자부터 생산관리 책임자, 마케팅 직원, 대표이사까지 모두 둘러앉아 음식을 맛봤다고 한다. 그 결과는 곧 제품 개발과 생산에 반영되는 식이다.
마케팅 방식도 남달랐다. 영업사원이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진열을 돕고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루트 세일(Route Sale)을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 이어 국내 최초로 시식판매 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영업 활동을 펼쳤다.
◇어떻게 ‘갓뚜기’ 됐나
함 회장의 평생은 ‘나눔’이었다. 그는 기업 초기부터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쳤다. 그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육군 8사단 ‘오뚜기 부대’와 자매 결연을 맺고 10년 동안 매달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선물을 전달하는가 하면 1996년에는 오뚜기함태호재단을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전개했다. 작년까지 약 1000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012년에는 장애인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에 주식 315억원을 기부하고 장애인들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유튜브 댓글에 달린 오뚜기 미담. / 유튜브 ‘햄연지’ 채널 캡처
다음으로 함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심장병 어린이 후원 사업이다. 1992년 만든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현재까지 4000여명 이상의 심장병 어린이 환자들의 생명을 구했다. 그는 또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말라’는 경영철학을 내세우며 오뚜기 대부분의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현재 오뚜기 정규직 비율은 98.63% 수준으로 알려졌다.
글 시시비비 이은
시시비비랩
팩트)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 상 15세 미만 징집은 전쟁범죄로 사형에 처하나 6.25당시 미성년자 강제 징집이 성행했다
15세미만 아니고 하이틴이면 데리고가서 싸워도 된다는소리네 ㅋㅋㅋ
고 함 회장의 아버지가 동업자와 함께 만든 조흥화학은'
농심 꼬무룩
^뚜첩^
오뚜기 미역 원산지 속인데 아니노 중국산인데 국산이라고
그거 중간업체에서 빼돌리기 한거라고 결론남
원래 백세카레 약간 매운맛 먹다가 지금은 카레여왕 코코넛 든 거랑 백세 매운맛 번갈아가며 먹는데 백세카레 매운맛은 그 특유의 매콤함이 참 좋음. 오뚜기 카레는 매운맛이 좋더라. 약간 매운맛은 좀 심심해.
갓두기는 까방권 준다
좆뚜기 때문에 공시충들 시험문제 하나씩 틀렸잖어
우덜은 목포해상방위대가 있당께요
보수가 싫어하는 기업 쌉뚜기!
착한 회사라 불리는 오뚜기는 왜 직원 처우나 기업 문화는 씹창으로 해놨나요
좆뚜기 바이럴
함병지인가 그 여자 좀 안나오게 해라
ㄹㅇㅋㅋㅋㅋㅋ
역시 이재명
이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