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은 우리나라 미용실의 메카로 불린다. 전국에 있는 미용실 중 상위 1%로 꼽히는 만큼 한 달에 수천만원 매출을 올리는 유명 헤어드레서가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본인만의 경쟁력이 있어야 살고, 없으면 금세 사라진다. 돈도, 배경도 낙하산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실력 만으로 고객에게 인정받고 올라서야 한다.
그렇게 냉정한 청담동 미용실 한복판에서 25년간 헤어드레서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배우 인교진, 소이현, 신하균, 김영광, 김영대, 한지혜 등 내로라하는 국내 톱스타들이 줄줄이 그를 찾는다. 청담동 헤어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면서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헤어숍 ‘아쥬레’를 운영하는 김영주(46) 대표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25년째 헤어드레서로 일하고 있는 김영주입니다.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헤어숍 ‘아쥬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미용을 시작하셨나요.
“어릴 땐 운동을 했어요. 12살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수영부로 활동했습니다. 운동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커졌죠. 졸업 후 일단 군대에 갔습니다. 제대 후 다시 운동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우연히 친구가 일하고 있는 미용실에 놀러 갔어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이가자헤어비스 청담 본점이었습니다.
구석에 있는 소파에 앉아 친구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 디자이너 선생님이 ‘누구냐. 면접 보러 왔냐’고 하시더라고요. 옷차림을 보고 헷갈리신 것 같았어요. 평소 꾸미는 걸 좋아해 깔끔하고 트렌디한 스타일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겉모습을 보고 미용하는 친구인 줄 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 보러왔다’고 답했더니 미용 일과 잘 어울리겠다고 면접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렇게 얼떨결에 면접을 봤고 합격해 인턴으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운명 같아요. 그때가 21살 때였습니다.”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청담동 미용실에서 디자이너급 미용사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미용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몸으로 부딪쳐야 했습니다. 밤낮없이 일만 했죠.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했고, 일이 끝나면 미용실에 남아 가발을 놓고 새벽까지 연습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남자가 미용한다고 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더 악착같이 했습니다. 하면 할수록 욕심이 났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는 오로지 미용 일만 했어요. 고된 일이었지만 참 매력 있는 일이었어요. 우연히 시작했지만 적성에 딱 맞는 일을 찾은 느낌이었죠. 비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업체마다 명칭이나 과정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보통 청담동에서는 스태프를 4~5년은 해야 디자이너로 인정받아요. 스태프도 단계가 있어요. 현재 운영하는 샵 기준으로는 클리어→화이트→블루→인턴→인턴 스타일리스트→디자이너 총 6단계를 거칩니다. 클리어는 일반적으로 헬퍼라고 불리는 단계에요. 샴푸와 고객 응대, 각종 보조 등을 합니다. 화이트는 기본적인 드라이와 파마, 염색약 바르기 등의 업무를 합니다. 클리어부터 화이트 과정까지 보통 1년 정도 걸려요. 블루는 화이트보다 더 전문적인 고급 기술을 배웁니다. 염색과 파마도 좀 더 발전한 기술을 쓸 수 있죠. 인턴 스타일리스트부터는 커트를 할 수 있어요.
처음엔 인턴이다 보니 고객 응대부터 시작했어요. 또 고객의 머리를 감겨주고, 파마약과 염색 약을 바르고,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바닥을 쓸었죠. 그래서 손은 항상 엉망이었어요. 종일 화학약품을 만지다 보니 멀쩡한 적이 없었어요. 파마 중화(파마 웨이브를 고정해주는 화학약품)를 할 때 중화제가 손에 계속 닿다 보니 일명 중화독에 걸려 피부가 벗겨지고 갈라졌어요. 그 상태에서 계속 고객의 머리를 샴푸로 감겨 주다 보니 샴푸 독으로도 고생했어요. 심할 땐 피가 나고 갈라져 손을 구부릴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일했죠. 겨울이 되면 상태가 더 심해져서 진통제를 먹고 일하기도 했어요.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그냥 손에 글리세린을 듬뿍 바르고 장갑을 끼고 자는 걸로 치료를 대신했어요.
인턴 시절 당시 기본급은 18만원이었어요. 식비와 차비를 아껴가면서 일만 했어요. 박봉에다가 심한 군기 문화 때문에 힘들었지만 오로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디자이너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습했어요. 보통 숍마다 1년에 2번씩 자체 시험을 봅니다. 소위 프로끼리 보는 시험이라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파마 말기, 드라이, 커트, 스타일링 등 다양한 과목을 봐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카운슬링, 인성까지 평가합니다. 현재 숍을 기준으로 보면 10~15명의 선배 디자이너가 직접 채점합니다. 100점 만점에 80점을 넘어야 시험을 통과해요. 직급이 높아질수록 시험은 더 어려워지고 기준도 더 높아져요.
밤낮없이 미용에 매달린 끝에 3년 만에 인턴에서 디자이너로 올라섰습니다. 보통 스태프를 4~5년 해야 디자이너로 인정받는데, 전 빠른 편이었죠. 1998년 처음 디자이너로 일할 때 기본급은 30만원이었습니다. 인센티브를 따로 받았어요. 회사에 벌어들인 매출의 15~20%가 인센티브였어요.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이라면 200만원의 인센티브를 얻는 식이었습니다.”
일반 고객을 주로 맡던 그가 연예인을 전문으로 스타일링 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였다.
“원래 연예인은 방송국 분장팀에게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어요. 시대가 바뀌면서 연예인이 직접 미용실에 와서 원하는 디자이너를 지목해 스타일링을 받기 시작했어요. 미용실에서 자체적으로 룩북(look book·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자)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점점 더 많은 연예인이 청담동 미용실로 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스타일을 연구했어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라서 잡지를 많이 찾아봤어요. 이탈리아 보그, 독일 보그 등 해외 유명 잡지를 닥치는 대로 보면서 해외 트렌드를 공부했습니다. 잡지에서 본 스타일링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기도 했어요. 트렌디하면서 뻔하지 않은 디자인이라서 많은 고객이 좋아했어요.”
감각적이고 앞서가는 헤어 스타일링으로 연예인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김 원장은 청담동에서 이름난 유명 샵을 찾아다녔다. 더 많은 스타일링을 배우고 다양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1999년에는 새리미용실 본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2년에는 조성아뷰티폼에서 헤어 실장을 맡았다. 2005년에는 제니하우스 본점에서 헤어 대표원장 자리에 올랐다. 그곳에서 8년여간 일하다가 2013년 독립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아쥬레를 열었다.
이곳은 일반 고객뿐 아니라 연예인이 줄을 서서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배우 인교진·소이현 부부, 신하균, 김영광, 김영대, 한지혜, 한다감 등이 주 고객이다. 웨딩을 준비하는 신혼 부부들에게도 입소문이 나면서 한 달에 60~100여명의 신부들이 찾는다.
“연예인의 경우 배역에 맞는 스타일링을 해주기 위해 계속 고민합니다.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대본을 가장 먼저 받아보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콘셉트를 정해야 해서 캐릭터 성격, 대사, 시대적 배경 등을 보면서 스타일을 연구합니다. 아무래도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은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다 보니 스타일에 민감해요. 감각적인 스타일을 선보일 경우 곧바로 대중 사이에서 유행이 되기도 하죠.
배우 인교진씨의 경우 여러 작품에서 재벌, 배드민턴 코치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어요. 극 중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동시에 트렌디한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연구합니다. 시상식이나 행사 때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의상을 입는지 먼저 확인하고, 그것에 맞게 헤어 스타일링을 연출합니다.”
-일할 때 어려운 점이 있나요.
“여러 명의 연예인을 동시에 담당하다 보니 스케줄을 맞추는 게 어려울 때가 있어요. 세트장에 직접 가서 스타일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 촬영인 경우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많아요. 배우들끼리 드라마나 잡지 촬영 날이 겹치는 날엔 새벽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하죠.
또 종일 서서 일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거북목과 허리 통증에 시달려요. 직업병이죠. 결국 2016년에는 목 디스크, 2017년에는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아 치료받아야 했어요. 목 디스크로 고생할 때는 왼쪽 팔을 위로 들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몸은 너무 아픈데 잡혀 있는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었죠. 일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은 적도 있어요.”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는지요.
“지금도 계속해서 공부해요. 유행을 선도하는 업계의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해요. 일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요. 트렌드가 빨리 변하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해외도 자주 나갑니다. 매년 영국이나 일본 등에서 열리는 헤어 세미나에 참석해요. 또 해외 잡지를 꾸준히 읽어요. 20여년간 모아놓은 잡지가 방 한쪽에 쌓여 있어요. 오래된 잡지를 다시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많아요. 또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발달하면서 사진 공유 소셜 미디어인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고객이 지명해서 찾아주시기 때문에 책임감이 중요한 직업이에요. 주말도 따로 없는 직업이죠. 지금까지 일하면서 마음 놓고 제대로 푹 쉰 날이 없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보람이 커요.”
김영주 원장은 20여년 넘게 찾아주는 오랜 고객을 볼 때 가장 보람이 크다고 했다. /jobsN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요.
“아무래도 단골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20년 넘게 한결같이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중고등학생 때 엄마를 따라서 처음 온 고객인데, 어느새 훌쩍 커서 결혼하고 아기도 낳아서 같이 데리고 오세요. 직접 웨딩 상담도 하고 돌잔치도 갔죠. 고객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매출이 궁금합니다.
“헤어숍 전체의 연 매출은 20억~30억원입니다. 한달에 1000여명의 고객이 찾으세요. 개인 매출은 1억원 정도입니다. 연예인뿐 아니라 웨딩이나 촬영 등 특별한 행사를 위해 찾는 고객도 많아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후배 양성에 집중하고 싶어요. 현재 50여명에 가까운 직원을 관리하고 있어요. 리더로서 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주고, 후배들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또 다음 달부터는 상호명을 ‘밈(MIMM·Memory In My Mind)’로 바꾸고 매장을 이전할 계획이에요.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일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미용을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요즘 미용 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한 분위기입니다. 수요는 정해져 있는데 공급이 너무 많아요. 내부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해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어 하는 후배가 많아요.그래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당장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디서든 쓰임 받는 헤어드레서로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본인만의 경쟁력을 키워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기를 갖춰야 합니다. 감성과 아이디어만 풍부하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미용 실력은 많이 해볼수록 늘어요. 노력해야 해요. 일을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어느새 본인이 원하는 자리까지 올라가 있을 거예요.”
글 시시비비 귤
시시비비랩
3줄 요약좀
진짜 성공한거지 어릴때 운동+미용직업 경력 25년? 빼박이긴한데 매출 1억에 30억인센이면 아무리 세가 비싸다고해도 돈 쓸어담을듯 연예인+행사용도 있다고하니 결혼식 사진작가들처럼 크게 크게 벌면서 일상 손님들도 있으니 8년원장 8년독립 합 16년이면 못해도 50억이상자산가일듯
요재 많이 힘드냐 디씨에 광고까지 하게
여기에 1억이라 깔정도면 그냥 5억정도 벌어갈꺼다 근데 옛날보다 매출 덜나오는거겠지 ㅋ
어쩔티비
미용사-헤어디자이너-헤어드레서 점점 말이 거창해지네
막상 가보면 저사람들이 직접 머리 만져주는건 커트 정도. 염색이나 펌 같이 시간 오래 걸리는건 상담만 하고서 나머지는 조수들한테 맡겨놓고 다른 손님들 보러감. 그렇게 손님 3~4명 정도 동시에 진행해서 돈 챙기는 식
젊은시절 다갈아넣었는데 저렇게 벌어야지
다른 연예인들은 다 이름 넣어주면서 막짤 박현빈은 왜 이름 안넣어줌?
손이 얼마나 크면 머리를 한손에 담냐
ㅋㅋㅋ 깍새지 깍새 뭔 헤어드레서야 말만 번드르 해가지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