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스타트업4


여러분들은 살면서 발명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명에 대해 막연히 상상만 하지 실행에 옮길 생각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발명가들은 자신이 상상한 것을 실행에 옮겨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요. 대표적으로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교류 전기를 만들어낸 니콜라 테슬라, 발명품을 실용화시킨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등이 있죠. 그중 발명왕이라 불리는 에디슨은 살아생전 2300여 개의 제품을 생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보다 많은 2600여 개의 발명을 하고 국제 대회에서 131개의 메달을 받으며 세계 최다 국제발명상 수상으로 기네스에 오른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요. 에디슨과 맞먹다니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떡잎부터 발명왕



출처 : 오모다카 블로그


한국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신석균은 1929년 황해도 평산의 한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집에서 500M쯤 떨어진 유치원에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요.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면 시야가 우산에 가려져서 자전거 타기가 불편했죠. 그래서 당시 6살이던 신석균은 기발한 생각을 해냅니다. 바로 '창문 달린 우산'을 만드는 것이었죠. 신석균은 앞을 보기 위해 우산 일부를 도려내어 구멍을 만들고 투명한 셀로판지를 붙여서 '창문 달린 우산'을 만듭니다. 이것이 그의 발명 인생에 신호탄이 됐는데요. 유치원에 도착한 신석균의 우산을 본 선생님은 '너 참 궁리가 대단하구나'라며 칭찬했습니다. 그 후에도 장독에 구멍을 뚫어서 떨어지는 물로 물레 방아를 만들거나, 수박에 오이를 붙여보겠다고 수박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명가의 꿈을 키웠는데요.


하지만 그 꿈을 키워나가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정 형편이 안 좋아 15년간 일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고 제대로 된 항생제를 구하지 못해 형제 3명을 잃어야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명 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또한 전기 기술, 교육, 농업, 외국어 등 다양한 방면의 백과사전을 읽으며 지식을 습득했는데요.



출처 : 위키백과


낙양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석균은 우장춘 박사의 부산 동래 원예시험장을 보고 동국대학교 농대 임학과에 진학합니다. 거기서 유기화학 및 동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공부했죠.


코리아 에디슨의 발명품



출처 : 부안 독립 신문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신석균도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는데요. 부산으로 피난 간 그는 우연히 미 8군에서 동시통역사를 양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 개설되는 러시아어과 1회 입학생이 됩니다. 신석균은 통역사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발명 일기를 써 내려가며 발명품을 만들곤 했는데요. 



출처 : MBC


1951년 외국의 단위들을 한국식으로 쉽게 바꿔주는 '도량형 환산기'를 만들어 돈을 벌었죠. 1953년에는 당시 사각 팩에 담겨서 먹기 불편했던 우유를 보고 만든 게이블 탑 구조는 지금의 우유팩 모양의 조상이라고 하는데요. 다만, 이미 1915년 외국에서 '존 반 워머'라는 사람이 '게이블 탑 가톤'의 구조를 확립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신석균 박사가 세계 최초로 우유팩을 만든 사람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게이블 탑' 모양을 생각해서 우유팩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 것은 대단하네요.



출처 : Google Patents


신석균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1960년에는 보건속산기, 65년에는 접철식 다각형 컵 등 끊임없이 여러 가지 제품을 발명했습니다. 그중에서도 85년 무한고속회전테이프는 뉴욕 국제발명품 전시회 대상을, 88년에는 위조지폐 감식기를 개발해 스위스 제네바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는데요. 특히 위조지폐 감시기는 79년에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11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것이라 신석균 회장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발명품이라고 하죠.   


발명의 비결



출처 : PATYELLOW


1992년에는 신석균의 특허권으로 국가가 벌어들인 외화가 6000만 달러에 이르러,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 산업훈장도 받았는데요. 그 외에도 해외에서는 세계 천재 대회, 제네바 국제 발명품 전시회 등 여러 가지 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세계 최다 국제발명상 수상'으로 기네스북 등제가 됐는데요. 발명으로 상을 너무나 많이 받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는 어느덧 90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1일 1발명 운동을 실천하는 발명 천재인데요. 어떻게 이렇게 많이 발명을 할 수 있는 걸까요? 평범한 사람은 1년 1발명 하는 것도 힘든데 말이죠.



출처 : 월간조선 뉴스룸


신석균은 하루 한건 발명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으로 호기심을 꼽습니다. '이 산 너머에는 또 뭐가 있을까, 그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며 사물들과 매일 쓰는 단어 및 문장에도 호기심을 갖는다고 하죠. 또한 1일 1발명을 실천하면서 그 아이디어들을 전부 공책에 옮겨 담았기 때문에 다양한 발명품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는 한 해에 1권씩 발명 일기를 작성해서 총 26권의 발명 수첩을 가지고 있죠. 거기에는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한국어 총 5개국어의 글씨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빼곡하게 적혀있는데요. 아이디어 도난을 우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암기력을 퇴보시키지 않고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출처 : 김경록 기자


그는 앞으로도 계속 발명하여 안경이나 바퀴처럼 100년 이상 사용될 수 있는 발명품 10개를 남기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선진국을 추월할 수 있도록 한국에 발명대학을 설립해 순수 발명가를 양성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오늘도 그는 상장과 수첩으로 가득한 골방에서 발명을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건강을 지키셔서 오랫동안 좋은 발명품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CCBB 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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