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이해인 수녀가 2011년 발간한 시집 ‘작은 기도’에 수록된 ‘작은 노래2’의 한 구절입니다. 10년 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지난 11월18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이라면 이 시구( 詩句)를 모두 한 번씩 써봤습니다. 이 구절이 올해 수능의 필적확인란 문구였기 때문입니다.

필적확인란 문구는 시험지에 자필로 쓰는 특정 글을 말합니다. 시험이 끝난 뒤 문제가 생겼을 때 본인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뿐 아니라 수능 모의평가, 토익 등 어학시험, 사관학교 시험 등에서 필적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tvN D ENT 유튜브 캡처

수능에서 필적확인 문구를 도입한 건 2005년입니다. 2004년 치른 2005학년도 수능에서 수험생 300여명이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시험장에 반입해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르다 적발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전자기기 압수 등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수단을 도입했는데요, 필적확인란 문구도 이때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필적확인란 문구는 수능 출제위원이 직접 정한다고 합니다. 출제위원들은 큰 시험을 앞두고 긴장한 수험생을 위해 힘을 줄 수 있는 문구를 고른다고 하는데요, 매년 수능이 끝나면 시험에서 어떤 필적확인 문구가 나왔는지 화제를 모으기도 합니다. 그간 어떤 문구가 나왔을까요.

◇정지용 시인 작품 최다 인용

2006학년도 수능에서 처음 등장한 필적확인란 문구는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었습니다. 정지용 작가가 쓴 시 ‘향수’의 한 구절인데요, 2007년에도 같은 작품의 다른 구절인 ‘넓은 벌 동쪽 끝으로’가 필적확인란 문구로 쓰였습니다. 2006학년도 수능의 필적확인란 문구는 2017학년도 시험에서 다시 한 번 등장했습니다. 올해 수능까지 쓰인 17개 문구 중 3개가 같은 작품에서 나온 것이죠.

2008학년도와 2009학년도에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2008학년도에는 ‘소년’의 한 구절인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가 나왔고, 2009학년도에는 ‘별 헤는 밤’ 중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가 쓰였습니다.

2010학년도부터 2012학년도까지는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정채봉, ‘첫 마음’),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황동규, ‘즐거운 편지’) 순으로 나왔습니다.

tvN D ENT 유튜브 캡처

◇2013학년도부터 답안지→시험지로 표기 위치 달라져

필적확인란 문구는 원래 OMR 답안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3학년도 수능부터 표기 위치가 시험지 표지로 바뀌었습니다. 다음은 2013학년도 수능부터 올해 시험까지 나온 필적확인란 문구입니다.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정한모의 ‘가을에’) (2013)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박정만의 ‘작은 연가’) (2014)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문태주의 ‘돌의 배’) (2015)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주요한의 ‘청년이여 노래하라’) (2016)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 (정지용의 ‘향수’) (2017)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김영랑의 ‘바다로 가자’) (2018)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김남조의 ‘편지’) (2019)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박두진의 ‘별밭에 누워’) (2020)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나태주의 ‘들길을 걸으며’) (2021)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이해인의 ‘작은 노래’) (2022)

14F 유튜브 캡처

◇“수능 10년 지났어도 아직 기억나”

일생일대의 시험인지라 떨리는 마음으로 적는 수능 필적확인란 문구는 시험을 치른 이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시험을 본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필적확인란 문구가 기억난다는 누리꾼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험생의 심금을 울린 필적확인 문구’ 리스트가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많이 회자되는 유명한 문구로는 2020학년도 수능에 나온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와 2014학년도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등이 있습니다. 

글 시시비비 영조대와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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