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하기 좋은날’ 한현숙·박기문 사장

세탁 꿀팁 유튜브 ‘실버 버튼’ 구독자만 11만명

등록 고객만 7000명. 대기업 사장·사모님부터 임원들까지, 한 번 찾은 손님이라면 누구나 단골로 만드는 특별한 달인이 있다. ‘세탁 장인’ 한현숙·박기문 부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30년째 세탁소를 운영한다. 박씨 부부는 ‘세탁업계의 스승’으로도 불린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제자들을 두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세탁은 과학”이라고 말하는 박씨 부부는 17년 동안 세탁 기술을 연마했다. 일본까지 건너가 화학, 물세탁, 오염제거와 관련한 세탁 기술을 섭렵했다. 유튜브를 통해서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세탁 꿀팁을 공개하며 구독자 11만명을 확보하고, ‘실버 버튼’을 받았다. ‘누렇게 변한 흰 옷 하얗게 만들기’, ‘빨래 쉰내 제거법’과 같은 영상은 조회수가 200만회를 넘는다. 

지금은 60평대의 넓은 공간에 직원 3명을 둔 그럴듯한 규모의 세탁소이지만,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양복점을 운영했던 박 사장은 다림질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있다고 생각해 세탁업에 도전했다. 8평짜리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는데, 그 공간은 네 가족이 먹고 자는 삶의 터전이자, 치열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당시엔 세탁소를 한다고 무시받기 일쑤인 데다, 오염을 잘못 빼 오히려 탈색이 되는 세탁사고로 혼쭐이 나기도 했다. 박씨 부부가 오랜 기간 세탁 기술을 공부해 ‘세탁 장인’이 된 사연을 들었다. 


‘세탁하기 좋은날’ 한현숙·박기문 부부. /jobsN

-세탁업을 ‘도시의 농사’라고 정의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농사처럼 내가 노력한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게 세탁업 같아요. 땀을 흘려 잘 키운 식물을 내보내는 것과 딱 맞죠. 농사는 씨만 뿌린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잡초도 뽑고 꾸준히 관리해야 하잖아요. 세탁도 마찬가지에요. 세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보풀 제거도 하고, 먼지도 털고, 다림질도 해야 하죠.”

-17년 동안 어떤 세탁 공부를 하셨나요? 

“아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오후 11시 정도 되는데 그 시간까지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저희 모습이 부끄러웠어요.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에게 부모로서 모범을 보이고 싶었죠. 게다가 세탁소는 지위가 낮은 직업으로 취급받기 일쑤잖아요. 그래서 전문성을 살리려고 공부를 시작했죠.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싶었거든요.

1990년 처음 세탁소를 열 때만 해도 세탁 기술에 관한 책은 모두 일본어 번역본이었는데, 처음엔 그걸 읽고 공부했어요. 기후와 먹는 음식이 비슷해서 그런지 일본 세탁법이 우리나라와 잘 맞는 게 있어요. 땀이나 얼룩 제거 방식이 비슷할 수밖에 없죠. 처음엔 번역본을 찾아 읽다가 나중엔 주말마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을 배웠어요. 그곳에서 낮에는 물세탁, 화학, 오염 제거, 섬유 복원 수업을 듣고, 저녁엔 세탁 연습을 했죠. 일본어는 못했지만 선생님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면서 배웠어요. 다행히 과산화수소, 드라이클리닝 등 몇몇 단어는 발음이 같아 말이 통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렇게 주말엔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고 월요일 아침이면 한국에 돌아와 세탁소를 운영했어요. 번 돈을 모조리 배우는 데 투자하니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죠. 하지만 우린 세탁물이 고객의 재산이라 생각해요. 그 재산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게 제 일이죠. 세탁 기술을 배운 것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옷을 더 잘 관리하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고객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서였어요.”

박기문 사장이 세탁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본인 제공

-설비를 갖추는 데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요?

“3억원 정도 들었어요. 설비에 투자를 많이 했죠. 세탁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좋은 장비가 있으면 효과가 달라지거든요. 일본에서 기술을 배울 때 사용하던 기계를 그대로 들여왔는데, 세탁건조기부터 드라이클리닝 기계, 증류기, 오존살균기, 섬세한 섬유 작업을 할 수 있는 비트건 등이 있어요.”

-고객은 얼마나 되나요? 기억에 남는 고객은요?

“등록 고객은 7000명 정도 돼요. 하루에 다루는 세탁물은 100점 정도 됩니다. 세탁소에 일하는 직원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5명인데, 꼼꼼하게 작업하기 때문에 그 정도만 작업합니다. 

오래 전 일인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사모님이 기사와 함께 우리 세탁소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문 앞에서 보따리를 들고 티격태격 하시는 거에요. 가게가 허름해서 기사분이 여기가 아닌 것 같다고 하셨죠. 우선 옷을 맡기고 가셨는데, 나중에 세탁이 잘 된 걸 보고 좋아하셨죠. 지금 수년째 우리 세탁소 단골이에요.”

세탁 작업 중인 한현숙,박기문 부부. /jobsN

세탁 작업 중인 한현숙,박기문 부부. /jobsN

세탁 작업 중인 한현숙,박기문 부부. /jobsN

-영업 비밀인 세탁법을 공개하는 이유가 있나요?

“고객들이 세탁소에 와서 이 옷은 빨아야 하는지, 드라이클리닝 해야 하는지를 많이 물어봐요. 가장 기본적인 건데 많이 헷갈려 하시죠. 집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전문가에게 맡길 것을 알려주려고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세탁소를 운영하는 분들 중엔 기초를 잘 모르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가끔 세탁법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는데, 직접 찾아 오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세탁법을 알려주려고 영상을 만들었어요. 세탁 기술이 평준화 되고 모두가 잘 돼야 세탁업도 인정받는 직군이 될 거라 생각해요.”

-겨울엔 패딩이나 코트를 많이 입는데, 세탁 팁이나 노하우가 있나요? 

“패딩 종류는 두 가지에요. 물세탁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울이나 가죽 등 천연소재가 들어간 패딩이나 고가 브랜드 패딩은 집에서 세탁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추천해요. 하지만 그 외 손세탁이나 세탁기 그림이 그려진 패딩은 집에서 세탁해도 돼요. 가장 때가 잘 묻는 곳이 목과 소매 끝, 주머니 부분인데, 중성세제와 물을 1:1 비율로 섞어 해당 부분에 마사지하듯 발라주고, 이후 30~40도 사이 온도로 세탁기를 돌리면 됩니다. 이때 지퍼 같은 부속품은 단추싸개 등으로 보호해 주는 게 좋아요. 탈수는 두세 번 정도 해야 돼요. 패딩을 꺼내면 솜이 뭉쳐져 모양이 망가진 줄 아는데, 솜은 손으로 분리하면 펴지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솜을 펴야 더 빨리 말라요. 하루 정도 밖에서 말리다가 나중에 건조기로 한 번 더 말려주면 뽀송하게 말라요. 마르지 않은 상태로 너무 오래 두면 세균이 번식해서 꿉꿉한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코트는 입을 때마다 세탁이 어려우니 집에서 가끔 관리해 주는 게 좋아요. 가정용 의류관리기가 없다면 분무기에 물 100㎖, 섬유유연제 1 티스푼, 알코올 1 숟가락을 넣고 잘 흔들어서 코트에 전체적으로 뿌리면 돼요. 이후 섬유를 한 방향으로 빗질까지 하고 나면 효과가 더 오래가죠. 살균뿐 아니라 향도 나고 질감도 좋아져요. 이렇게만 하면 일년에 한 번만 코트를 세탁해도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어요.”

-30년 넘게 세탁소를 하면서 가장 보람이 컸던 때는 언제인가요? 

“추억을 되살려줘서 고맙다는 연락을 많이 받아요. 어머니 또는 아내와 추억이 담긴 옷인데 그 옷을 잘 복원해줘서 고맙다고요. 얼룩 제거를 한 옷이나 특별히 문제가 생겨 복원 작업을 한 옷은 고객에게 하나 하나 피드백 해드리거든요.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아끼는 옷이 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입던 옷이나 부모님이 입던 옷, 추억이 담긴 옷. 그런 옷을 보면 더 잘 관리해 드리고 싶어요. 잘 복원하면 뿌듯하죠.”


‘세탁하기 좋은날’ 한현숙·박기문 부부. /jobsN

/jobsN

/jobsN

-경쟁∙정년이 없고, 여유시간은 많은 게 세탁업의 장점이라고요.

“경쟁자가 없다는 것은 주변에 세탁소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세탁 기술을 잘 갖춘 곳이 드물다는 얘기에요. 물세탁이나 드라이클리닝하고 다림질만 잘 하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옷감에 손상은 없는지, 섬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세탁소 대부분이 기술이나 장비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요. 또 고객을 맞는 카운터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고 영수증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죠. 고객 접대 방법부터 준비가 안 된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몇 개월만 제대로 배워도 국내 10% 안에 드는 기술력을 갖출 수 있죠. 

세탁업은 자기 기술로 운영하기에 정년이 없어요. 나이가 들면 작업 속도가 느려질 순 있지만 숙련도는 더 높아지겠죠. 또 우리 경우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근무해요. 주말에는 쉬죠. 작업량에 따라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흔히 세탁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하는데, 저흰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세탁업은 옷을 빨아서 돌려주는 게 주 업무지만 관리부터 얼룩제거, 부분염색, 가공 등으로도 확장할 수 있거든요. 예컨대 가죽 신발을 관리하다 보면 가죽 공부가 자연스럽게 돼요. 가죽은 흠집이 많이 생기는데 흠집 복원이나 색상 변경도 할 수 있는 거죠. 세탁소를 하면서 수선·복원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세탁업은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단점은 뭔가요? 

“기술 습득이 어렵고, 혼자하기 어려운 일인 데다, 고객 응대 횟수가 많다는 점이죠. 세탁은 학원이나 학교가 따로 없잖아요. 결국 다른 업장에 가서 일을 배우는 분들이 많은데, 잡일만 하다가 정작 배워야 할 기술은 못 배우는 경우가 많죠.

또 세탁업은 혼자하기가 어려워요. 고객 응대부터 세탁, 수선, 복원 작업 등 다양한 일을 해야 하는데 이걸 혼자 해내기가 쉽지 않죠. 만약 둘이서 한다면 혼자 10개를 하던 것도 30개까지 할 수 있어요. 저희는 철저히 분업화 된 시스템이에요. 저는 복원 작업을 주로 하고, 아내는 얼룩 제거를 맡죠. 

손님 응대는 감정 소모가 많은 일 중 하나에요. 하루에도 여러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으면 세탁업을 하기 쉽지 않아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은.

“교육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세탁 기술을 배우려는 20~70대 제자들이 저희 세탁소에 찾아오거든요. 요즘 세탁업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어요. 가장 젊은 제자가 29살이고, 30대 제자가 많은 편이에요. 세탁업이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정받는 것 같은데, 전문 직업군으로 잘 키워나가고 싶어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손쉽게 세탁하는 방법을 알리는 콘텐츠도 꾸준히 만들 계획이에요.”

글 시시비비 이은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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