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믈리에 대회’ 1·2위 최준선·김주용

소믈리에가 말하는 직업의 세계

우리나라에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소개된 지 30년쯤 흘렀다. 프랑스어 ‘소믈리에(sommelier)’가 한 단어로 와인감별사를 뜻하지만, 요즘엔 각종 음식과 결합해 ‘밥믈리에’, ‘맥(맥주)믈리에’, ‘라(라면)믈리에’처럼 쓰이면서, ‘~믈리에’가 준(準) 전문가를 뜻하는 일종의 접미사가 됐다. 그래서인지 소믈리에라고 하면 와인을 맛보고 평가하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소믈리에는 적게는 300명에서 많게는 1000명까지 추정된다.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직업이나, 여전히 오해도 많고 환상도 크다. 소믈리에가 있는 식당에 가면 비싼 와인만 추천할 것 같아 선뜻 물어보기가 겁난다. 소믈리에가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이다. 전혜진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소믈리에는 기본적으로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는 사람이지만, 와인뿐 아니라 다양한 음료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2021년 11월 16일, 서울 강남구 와인바 컨티뉴엄에서 소믈리에 최준선(35·신라호텔 라연)·김주용(41·레스토랑 알렌&와인바 컨티뉴엄)씨를 만나 고고할 것 같은 직업의 뒷얘기를 들어봤다.


‘제19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최준선(오른쪽)·김주용 소믈리에. /윤여광 객원기자

둘은 각각 국내 소믈리에 2세대와 2.5세대쯤 된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생소한 때부터 함께 와인을 공부해온 업계 선후배 사이다. 공교롭게도 2020년 열린 ‘제19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최씨는 1위, 김씨는 2위를 차지했다.

국내 소믈리에 대회는 여러 개다. 와인 유통사 소펙사코리아가 주최하는 이 대회는 1996년부터 국내에서 열리는 전통있는 대회다. 국내 1위인 최씨는 프랑스 농식품부가 주최하는 ‘제6회 아시아 베스트 소믈리에’ 대회에 2020년 출전해 우승했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어떻게 알고 시작했나요?

최준선(이하 최) “원래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했어요. 성인이 돼서 우연히 아버지가 선물 받은 와인을 맛봤다가 와인에 빠져버렸죠. 제대 후 와인바에서 잠시 일을 하기도 하고 취미 삼아 와인 공부도 해봤습니다. 그러다 2007년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한 유영진 소믈리에가 무대를 펼치는 모습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결국 3년 후 프랑스로 와인 유학을 떠났죠(그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있는 와인스쿨에 입학해 소믈리에 과정 2년, 양조 과정 1년을 마쳤다).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일단 불어를 배워야 했고요, 떼루아(와인 생산에 영향을 주는 토양이나 기후 조건)를 공부하기 위해 밭에서도 일했는데 포도나무 독에 손이 붓기 일쑤였습니다.”

김주용(이하 김) “저는 국내파예요. 처음에는 바텐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와인 시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소믈리에로 전환했죠. 최준선 소믈리에처럼 와인에 빠져서 시작했다기보다, 시장 흐름에 따라 이 일을 시작한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와인을 잘 마시지 않았어요. 위스키를 더 좋아하기도 했고요. 와인 판매점에서도 일했는데, 손님에게 비싼 와인을 추천하려면 제가 직접 마셔봐야 하겠더라고요. 그렇게 와인을 맛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마리아쥬(와인과 음식의 궁합)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직접 비싼 와인을 마셔보려면 자비 부담도 만만치 않겠네요.

김 “독일 와인 산지인 모젤 자르에서 1971년산 빈티지 와인을 마셔봤어요. 병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데, 와이너리에서 80ml 정도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혼자 공부하고 돈을 써야 하는 부분도 많지만, 소믈리에 대회에서 포상으로 와이너리 투어를 보내주기도 해요. 그러면서 각국 소믈리에와 네트워크도 생기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지요. 생각보다 극한직업이라 할 수도 있지만 식문화에 관심이 많고 여행을 좋아한다면 강력 추천합니다.”



일하면서도 꾸준히 해외의 와인 산지를 찾아 발로 뛰며 공부해야 소믈리에로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김주용·최준선씨 제공

-왜 극한 직업인가요?

김  “얼핏 보면 와인을 마시는 직업 같지만, 보이지 않는 일이 많아요. 서비스 마인드는 기본이고요, 일하면서 술만 마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못하면 하기 어렵습니다. 레스토랑에서는 부가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소믈리에를 고용해요. 그만큼 매출을 늘려야 하는 부담도 큽니다. 단순히 와인 지식이 깊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비즈니스 감각이 필요해요. 재고를 관리하고 와인 리스트를 정리하는 것도 기본 업무 중 하나입니다. 소믈리에 생각이 있다면 와인 공부보다는 현장을 먼저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지식과 감각 모두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하는 도전적 직업이에요. 호텔에서 일을 하면서도 뒤에서는 대회 준비를 하며 공부합니다. 대회가 다가오면 이론을 수능 치르듯 달달 외우기도 해요. 몸 관리도 중요해서, 대회 지역에 갈 때는 코로나 이전에도 항상 마스크를 쓰고 목 부위를 둘둘 감고 다녔어요. 그 지역의 음식을 잘못 먹어도 위험할 수 있으니 가리는 음식도 많고요. 제 경우엔 대회 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 물도 가려 마시는 소믈리에도 있어요. 우리나라 소믈리에들은 자기 관리를 각자 알아서 하지만, 해외의 경우 소믈리에게도 스포츠 선수처럼 매니저가 붙어 이런 것들을 관리해 주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 블라인드 테스트를 척척 맞히는 모습이 멋있던데요.

김 “향 맡고 입 안에서 몇 번 굴려본 뒤 단번에 특정 와인을 알아맞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웃음). 전 세계 와인 종류는 사실상 무한대입니다. 같은 산지라도 생산년도가 다 다르고요. 대회에서도 가장 어려운 관문이 블라인드 테스트인데요, 최대한 근접하게 품종과 생산 지역 등을 맞히는 거예요. 여러 선택지 중 정답을 골라내는 방식도 쓰이고요. 그렇다고 블라인드 테스트가 대회의 전부는 아닙니다. 손님에 맞는 와인을 추천하고 접객하는 방법, 음식과의 페어링, 칵테일 제조 등도 모두 평가 항목에 들어갑니다. 와인 전문가를 넘어 종합 주류 전문가로 소믈리에 역할이 넓어지는 추세예요.”


김주용·최준선 소믈리에가 디캔팅하고 있다. 디캔팅은 병에 든 와인을 다른 용기에 담는 기술인데, 이 과정에서 와인의 향이 더 풍부해진다. /김주용씨·한양사이버대 제공

-요즘에는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는 와인 애호가도 많은데, 소믈리에를 직업으로 인정하는 기준은 뭘까요?

김 “스스로 소믈리에라고 생각하면 소믈리에입니다. 자기가 어디서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저는 소믈리에가 전문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없으면 명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두 분 다 대외 활동을 많이 하는 건가요? (최씨는 프랑스 유학 후 국내에서 소믈리에로 일하며 한양사이버대 호텔관광외식경영학과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김씨는 현재 한양사이버대에서 ‘세계의 와인’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최 “현업에 있으면서 커피 같은 다른 음료도 공부하고 싶었어요.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에 있다 보니 공부할 기회를 계속 찾게 됩니다. 소믈리에로 일하다 보면 사업도 병행할 기회가 많아요. 호텔관광외식경영을 전공하면서 배운 상권 분석도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김 “그동안 소믈리에라는 직업의 파이를 키워오면서 일했어요. 현장에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항상 소믈리에 공급이 달리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게 됐네요.”

한양사이버대 ‘세계의 와인’ 수업 중 일부. 원격 수업으로 실습이 어려워지자, 김주용(맨 오른쪽) 소믈리에가 직접 레스토랑을 찾아 와인을 페어링하는 모습을 녹화해 학생들에 보여줬다. /한양사이버대 제공

-직업인으로서의 고충은 없나요?

김 “직업병도 있지요. 와인의 산도가 높아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고, 맛만 보고 뱉어낸다고 해도 치아가 변색돼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사회적 위상이 와인 종주국만큼 높지 않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매번 해외 와인 산지를 찾아 공부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행복합니다.”

최 “주류 업계에서 일할 뿐인데 술만 마시는 직업으로 오해받을 때가 있어요. 주변에서 간 건강 관리하라고 간장약을 챙겨주기도 하고요. 보이는 모습이 다는 아닌데 말이죠.”

-식당에서 소믈리에를 만나면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최 “너무 위축되지 마세요. 자기 예산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요. 아직 우리나라에선 그런 문화를 낯설어 하죠. 그래서 저는 대략 식사값과 동일한 금액의 와인을 추천해드리는 편입니다.”

김 “와인 애호가들에겐 비싼 와인을 추천하기도 해요. 매출 증대도 소믈리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물론 비싼 와인을 추천할 땐 그만큼 소믈리에로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날 그 손님에게 완벽하게 맞는 와인을 좋은 잔에 최고의 서비스로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하죠.”

-집에서 연말 분위기 낼 수 있는, 적당한 가격대 와인을 추천한다면요? (며칠 뒤 김씨가 문자 메시지로 자신이 추천했던 와인에 설명을 덧붙였다.)

김 “제가 ‘반피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약 9만9000원)’를 추천했었는데,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몬탈치노라는 마을에서 부르넬로 포도로 만들어지는 와인입니다. ‘산지오베제 그로소’라고도 불러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는 이탈리아 최고급 와인인데, 그 중 추천드린 반피는 이 지역 와인을 국제 무대에 알린 상징성이 있습니다. 특히 2015년 빈티지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어리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겨울에 아주 잘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제가 처음 방문한 와이너리가 그쪽에 있어서 이 와인을 좋아합니다. 와이너리 근처 ‘일 보르고’ 성(城) 안에 괜찮은 식당과 호텔이 많아요. 글라스 박물관도 가보기 좋습니다.”

글 시시비비 와일드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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