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엔 몰래 끓여먹는 라면이지. 양파, 감자, 새송이 버섯, 조랭이 떡 때려 넣고 파 많이.”  짧은 글과 함께 ‘제주 딱새우라면(딱멘)’을 먹음직하게 끓여 낸 사진 한 장이 2021년 10월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평범해 보이는 글과 사진이었지만, 순식간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8일 기준 ‘좋아요’ 수는 6300개가 넘었고, 댓글은 260개가 붙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밤 12시에 먹었다고 올린 라면. /최태원 SK그룹 회장 인스타그램

해당 게시물을 올린 이는 연예인도 인플루언서도 아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었다. 최 회장의 소비 생활은 그가 2021년 6월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 고작 8개월 정도 지났지만, 팔로워 수는 7만명에 달한다. 그가 실생활에서 쓰는 제품을 올리면 누리꾼들은 제품을 써본 후기를 물어보고, 다른 제품을 추천해 달라는 댓글을 남긴다. 물론 대기업 총수가 쓰는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따라 사는 ‘추종 소비’를 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SNS를 통해 총수에게 직접 제품 관련 질문을 하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젠 CEO가 인플루언서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2021년 7월에는 최 회장이 국내 기업이 만든 대나무 칫솔인 ‘닥터노아’ 제품과 구강용품 회사인 ‘에코덴트’의 치실을 쓰고 있다면서 해당 제품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이에 한 누리꾼은 “치약은 어떤 거 쓰시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다. 이에 최 회장은 “아무거나 맵고 화한 맛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또 “치실 혹시 어디 것인가요? 금실 아니죠?”라는 물음에는 “아닙니다. 흰 실입니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최태원 회장이 입고 있는 ‘언더아머’ 티셔츠와 ‘닥터노아’의 대나무 칫솔, ‘에코덴트’의 치실은 곧장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이밖에도 최 회장은 발효 단백질로 만든 ‘브레이브 로봇’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대체 유제품 중에서 1등으로 꼽았고, 미국 스포츠웨어 브랜드인 ‘언더아머’의 티셔츠를 입고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올렸다. 또 치킨 브랜드 중에서는 ‘교촌치킨’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그가 쓰는 다른 제품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한 누리꾼은 “전기 면도기 쓰시나요, 일반 면도기 쓰시나요”라는 댓글을 남겼고, 이에 최 회장은 “주로 전기 면도기 씁니다”라고 답했다. 또 “와인 추천 부탁드려요”라는 질문에는 “무더운 날에 덕혼이나 케익브레드 같은 나파 쇼비뇽블랑이 좋다”고 답했다.

◇CEO뿐 아니라 인플루언서로…마케팅 효과 톡톡

이처럼 최근 대기업 총수들이 SNS를 활용해 PI(President Identity·경영자 이미지)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PI 마케팅은 최고경영자를 활용해 브랜드를 홍보하는 마케팅 방법이다. 경영자를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한다. CEO가 곧 기업의 얼굴이 되는 셈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대표적인 사례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2012년 인스타그램에 가입한 정 부회장은 팔로워 수가 78만명에 달한다. 이 정도면 슈퍼 인플루언서(Super Influencer·소셜미디어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SNS 활동을 시작한 그는 사진을 올릴 때부터 제품 브랜드, 정보 등을 함께 적을 때가 많다. 2021년 11월 피자 박스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피자는 잭슨 피자”라는 글을 적었다. 또 최근에는 “나이키 OOO 레트로 하이 구입” “롯데 가서 3만1000원짜리 고든 램지 버거 먹고 옴” 등의 글을 적었다. 골프를 치고 있는 영상을 올리면서 모자, 셔츠, 바지, 신발, 선글라스, 골프채 제조사를 함께 적기도 했다.

그가 걸친 아이템은 바로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2021년 정 부회장이 착용하고 나온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스베이더 앞치마가 대표적이다. 그가 이마트 유튜브에서 시작한 ‘YJ로그’라는 브이로그에서 해당 앞치마를 하고 나오자 누리꾼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 앞치마는 미국 프리미엄 주방용품 브랜드인 윌리엄스 소노마의 스타워즈 시리즈 다스베이더 앞치마였다. 가격은 약 40달러(약 4만4000원)다. 오븐 장갑, 타월 등도 세트로 판다. 세트로 구매할 경우 가격은 약 80달러(약 8만8000원)다. 스타워즈 마니아로 알려진 정용진 부회장의 취향을 반영한 아이템이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 ‘정용진 앞치마’를 검색하면 다스베이더 앞치마에 대한 정보가 쏟아진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앞치마.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유튜브 채널 이마트 캡처
청바지 브랜드 이름을 묻는 네티즌에게 직접 답하는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이밖에도 그가 강원도 한 농장에서 와인잔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자 “청바지 브랜드 좀 알 수 있을까요? 너무 예뻐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에 정용진 부회장은 “페이지 진(paige jeans)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공식 사이트 주소까지 적었다. 페이스 진은 2004년 피팅 모델인 페이지 아담스 겔러가 만든 청바지 브랜드로 2009년 국내에 처음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20만~30만원대다. 이후 ‘정용진 청바지’, ‘재벌이 입는 청바지’로 불리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사실 정 부회장은 타사 제품만을 인스타그램에 소개하지 않는다. SNS로 일상을 공유하고, 누리꾼들과 소통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마트와 스타벅스 공식 계정에도 등장하면서 사업 홍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정 부회장이 신세계 이마트의 PB 브랜드인 노브랜드와 피코크의 밀키트 메뉴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가 올린 신세계조선호텔의 ‘삼선짬뽕’은 2021년 8월 출시 한 달 만에 2만개 넘게 팔렸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함께 만든 ‘바닷장어 무조림’은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지 일주일 만에 1만9000팩이 팔려나갔다. 스타벅스 공식 채널에 출연해서는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나이트로 콜드브루’를 꼽았다. 그러자 2주 만에 해당 메뉴 판매량이 2.5배 이상 늘었다. 그가 총수 중 PI 마케팅을 가장 영리하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총수들이 제품을 SNS에 직접적으로 공개하는 것에 대해 특정 의도가 있다고 보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친환경 제품을 쓰는 모습을 대놓고 올리면서 ‘그린워싱’(Green Washing·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일 수 있고, 향후 총수가 투자하거나 출시할 제품의 광고 효과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에 총수들은 선을 그었다. 최태원 회장은 한 기자 간담회에서 SNS를 하는 이유에 대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자는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잘 모르면 뿔 달린 괴물 같은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군’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SNS를 한다. 뉴미디어 시대에는 소비자와 기업 대표 간 거리가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총수가 인플루언서로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고 봤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재벌 총수에 관심이 많다. 재벌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 사는지 궁금해한다. SNS가 활성화하면서 직접 총수와 소통하면서 제품 관련 질문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팔로워 수도 수만명에서 수십 만명에 달하면서 자연스레 영향력이 커졌고,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요즘 소비자는 단순히 기능만을 위해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담긴 메시지와 스토리를 본다”며 “재벌이 입거나 쓴 아이템을 쓰면서 그 사람의 이미지와 철학을 향유하려는 욕구가 소비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글 시시비비 귤
시시비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