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실시된 건데요. 고용노동부는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정의했습니다. 정부는 개정안 시행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면 사용자가 즉시 이를 조사한 뒤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 장소를 옮겨주거나,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했죠. 만일 피해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장치를 두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직장인들의 근무 환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본인의 말과 행동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지 몰라 조심하게 된다는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폭언이나 갑질을 당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괴롭히는 유형은 다양합니다. 막무가내로 폭언하거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피해자에게 모욕을 주는 가해자도 있지만, 은근히 특정 직원을 따돌리거나 부당한 지시를 강요하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신고를 피해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다”, “직장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수년째 이어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피해자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쿠쿠홈시스 상품개발팀 직원들은 팀장한테 수년간 폭언을 들어왔다. /MBCNEWS 유튜브 캡처


“뇌가 있냐”,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냐”


2022년 2월 ‘쿠쿠(CUCKOO)하세요’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생활가전 업체 쿠쿠홀딩스의 자회사 쿠쿠홈시스 40대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 연휴가 끝나고 이틀이 지난 2월 4일 기술연구소 상품개발팀 소속 최모(45) 과장이 경기도 시흥시 직원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경기도 시흥경찰서 관계자는 “고인이 직장 괴롭힘으로 우울증을 겪었고, 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상품개발팀 팀장이었는데요, 피해자는 최 과장뿐이 아니었습니다. 상품개발팀 소속 직원들은 수년 전부터 팀장한테 폭언과 욕설을 들었고, 2년 전인 2020년 3월에는 이 때문에 직원 4명이 집단 퇴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퇴사한 직원 4명은 회사를 나오기 전 회사에 공식 면담을 요청하고, 경영지원팀장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들이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파일도 있습니다. 다음은 음성파일에 담긴 대화 내용입니다.


직원 A “뇌가 있냐는 둥,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느냐는 둥, 바보 아니냐, 대학교 나왔냐, 연봉을 삭감하겠다···”


경영지원팀장 “좀 밉상스럽게 감정을 건드리는구나.”


직원 B “자리에 없으면 뭘 하는지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 하고···”


경영지원팀장 “아랫사람에 대한 신뢰도 없고···”


이때까지만 해도 경영지원팀장은 피해 직원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팀장은 임원인 기술본부장에게 보고하겠다고 피해 직원 앞에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팀장은 오히려 직원들에게 “일이 힘들겠거니, 사람이 조금 많이 쪼았겠거니, 이 정도 수준이지. 그렇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회사라는 조직이”라고 말하며 타일렀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보면 피해 사실을 접수한 사측이 바로 진상 조사를 해야 하지만, 쿠쿠홈시스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2개월이 지나 상품개발팀 직원 절반인 4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최근 사망한 최 과장도 상품개발팀장의 폭언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직장인 익명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통해 나왔습니다.


“애가 아프대. 집사람도 아프대. 그렇다고 회사한테 징징대? 그럼 XX, 집에 가서 애새끼 봐. 누가 계속 다니래? 강요한 사람 아무도 없어.”, “X새끼, XX새끼, 너 찾아가서 죽인다, 넌 쓸모없는 새끼야.” 막장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인데요, 모두 쿠쿠홈시스 상품개발팀 직원들이 팀장한테 들은 말입니다.


MBCentertainment 유튜브 캡처


공부 못해서 ‘좋소’ 간 게 문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입은 직원이 쉽게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해 사실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부 동료나 외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피해자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거나 실적을 채웠다면 상사의 폭언이 덜하거나 없었을 거고, 따라서 상사의 폭언에 대한 책임 일부가 피해자에게도 있다고 말합니다. 피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도 일부 누리꾼은 “갑질을 당하기 싫었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에 갔어야 한다”, “‘좋소(중소기업을 낮잡아 부르는 말)’에 갔으면 어떻게든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라고 말합니다.


대기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20년 9월 우리나라 기업 중 9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현대자동차의 남양연구소 디자인센터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이찬희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휴직계까지 썼다고 합니다. 생전 아내에게 “내가 죽으면 묘비명에 죽어라 일만 하다가 죽었다고 써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이찬희 책임연구원. 그의 동료는 MBC와 인터뷰에서 센터장이 바뀐 다음부터 이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MBCNEWS 유튜브 캡처


제보자의 발언 내용을 보면 센터장은 퇴근하기 1시간 전 추가 업무를 지시하면서 “내일 아침에 보자. 그런데 야근은 하지 마. 우리는 프로페셔널이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직원들은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나와 일을 했습니다.


고 이찬희씨의 부인은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는 날도 부지기수였고, 회사에서 자고 오는 날도 많았다”라고 했습니다. 2020년 1월, 센터장실에 찾아가 면담하고 돌아온 이찬희 책임연구원은 그날 새벽 야근을 하다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이찬희입니다. 제가 부족한 게 많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당시 센터를 이끌던 사람은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입니다. 그는 이찬희씨가 사망하기 4개월 전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출연했습니다. 2021년 12월에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그 뒤로도 승승장구했습니다. 이 센터장과 현대자동차 측 모두 이씨의 사망 이후 별다른 입장 표명이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언론을 통해 사건이 재조명되자 사측은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밝혔고,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이 센터장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동료의 뒷모습을 배웅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글 시시비비 영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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