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해외로 옮기는 기업들
인재 채용, 투자 유치 위해라지만…
“플립이 성공 보증 수표는 아냐”

‘플립(Flip)’

‘뒤집다’, ‘젖히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입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본사를 이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인 경우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거죠.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 자회사를 두는 구조 대부분이 플립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플립할 경우 해외 법인이 본사가 되고 국내 법인은 자회사로 바뀝니다. 이때 한국 법인이 갖고 있던 주식은 해외 법인에 출자하고 주주들은 해외 현지에서 발행하는 주식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 국내 법인 주식을 해외 법인에 양도하고 해외 법인 신주를 받는 셈입니다.

비프로컴퍼니 홈페이지. /비프로컴퍼니 제공

최근 국내 스타트업 ‘비프로컴퍼니’가 영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플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프로컴퍼니는 AI 기반으로 경기 영상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스타트업입니다. 비프로컴퍼니는 강현욱 대표가 2015년 창업한 회사입니다.

핵심 서비스는 비프로일레븐입니다. 비프로일레븐은 크게 영상 촬영 및 편집, 데이터 분석, 정보 공유 플랫폼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운동장에 설치한 카메라로 선수들의 경기와 훈련을 촬영해 감독과 코치진에 영상을 실시간으로 제공합니다.

이 기술력으로 세계에서 잘 나가는 구단을 고객사로 두고 있습니다. 2016년 유소년 축구팀, 하부 리그팀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왓퍼드는 물론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 등 명문 축구팀을 고객사로 만들었죠. 2021년 기준 전 세계 1300여개 축구팀이 비프로일레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알토스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스프링캠프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총 223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죠.

이런 비프로컴퍼니가 플립을 택한 건 고객사가 대부분 해외에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창업초기 비프로컴퍼니는 K리그와 유소년축구단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비프로컴퍼니는  2017년부터 유럽에 진출한 국내 선수들을 통해 독일 프로축구 리그에 진출했습니다. 독일은 1부에서 5부 리그까지 389개의 구단이 있습니다. 또 1부 리그를 제외하면 이전까지 AI영상 분석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보다 시장이 훨씬 컸습니다.

이에 비프로컴퍼니는 본사 이전을 택했습니다. 대부분 해외에 있는 고객사 의견을 수렴하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에 있어 접점을 늘리고자 했다고 합니다. 또 해외 투자 유치 기회를 얻기 위해 본사 이전을 선택했다고 밝혔습니다.

멜릭서 이하나 대표./ jobsN

◇유니콘 기업도 해외로

비프로컴퍼니처럼 플립을 택하는 국내 스타트업이 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비건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 데이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쿼리파이’도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기업용 채팅 응용프로그램(API) 개발 및 공급업체 ‘센드버드’는 2013년 국내에 법인을 설립했고, 이듬해 미국으로 본사를 옮겼습니다.

산타토익을 개발한 에듀 테크 스타트업 ‘뤼이드’도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플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뤼이드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2에서 약 2000억원의 투자를 받은 유니콘 기업입니다. 뤼이드는 국내보다 미국이 사업 확장과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플립을 하게 되면 뤼이드 지분 20%를 보유한 소프트뱅크는 약 25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부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플립을 동의한 것은 이전 후의 기업가치를 더 크게 본 것이죠. 법인 설립 예정지는 미국에서 규제 강도가 낮은 델라웨어주나 투자 유치와 인력 확보에 유리한 실리콘밸리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뤼이드는 기업가치가 1조 원에 가까운 유니콘급 기업 가운데 플립을 추진하는 첫 사례라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뤼이드 장영준 대표./ 뤼이드 제공

◇플립하는 이유는?

이렇게 많은 기업이 플립을 하고 준비하는 이유는 다양한데요, 몇 가지 대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지 투자 유치를 위해서입니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위치상으로 먼 한국보다는 현지에서 가까운 기업을 선호합니다. 또 법 제도, 규제 등이 낯선 타국보다는 자국에 있는 기업을 우선시하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고객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비프로컴퍼니의 경우가 대표적이죠. 비프로컴퍼니 고객은 대부분 해외에 있습니다. 이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객사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탈규제를 위해서입니다. 국내에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규제들이 스타트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원격 의료 및 헬스케어 분야의 경우 국내에만 존재하는 규제나 국내에는 아직 없는 제품 기준이 많습니다. 이를 피해 수월하게 제품을 개발하려고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것이죠.

이렇게 기업마다 다양한 이유로 플립을 하는데요,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이지만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경제효과 감소, 인력 유출 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국내 한 VC 관계자는 “본사 이전이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본사 이전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정말 많기 때문에 한국에 남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렇다고 국내에서 성장하는 기업들이 이른바 ‘탈조선’ 하는 것을 정부 입장에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규제 완화, 기업 혜택 증설 등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플립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니 플립에 대한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는 “해외로 본사를 옮긴다고 그 기업이 현지에서 성공하리란 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외로 나가면 해외 투자유치, 우수 인재 영입 등이 수월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해외 기반 사업이 잘 마련돼 있지 않다면 오히려 위험성이 크다”며 “플립을 추진할 때는 정말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하고 시뮬레이션해봐야 한다. 투자사 자문은 물론 주주들의 의견도 하나하나 고려하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습니다.


글 시시비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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