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重→두산에너빌리티, 현대중공업지주→HD현대 사명 교체
친환경 열풍 타고 화학사들은 사명서 ‘화학’ 빼
신사업 육성에 업종 명시는 걸림돌

최근 중후장대(重厚長大·무겁고, 두텁고, 길고, 큰 것을 뜻하는 말로 철강, 화학, 자동차, 조선주 등의 제조업을 지칭함) 기업들의 사명 변경이 줄잇고 있다. 저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제조업 이미지 탈피와 신사업 육성, 브랜드 위상 제고라는 궁극적 목표는 동일하다. 새 이름을 내건 기업들이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 중공업·철강도 다 바꾼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2월 24일 열린 이사회에서 ‘HD현대’로 사명을 변경하기로 했다. 새 사명은 ‘인간이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오는 3월 28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명 변경을 최종 확정한다.

중공업 부문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던 핵심 사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크다. 그럼에도 상징적인 ‘중공업’을 사명에서 제외한 것은 제조업 중심에 치우친 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고, 유연한 사업 역량을 갖추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HD현대의 CI.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현대중공업지주 관계자는 “새로운 사명은 회사가 추구하는 미래 지향점을 담고 있다”며 “이번 사명 변경을 계기로 투자형 지주회사로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그동안 신사업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 2020년 12월 선박 60억원을 출자해 자율운항 솔루션 전문회사 아비커스를 설립하고, 2021년 6월 국내 최초로 소형 선박을 완전 자율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2021년 하반기에는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 기업인 메디플러스솔루션을 인수하고 디지털 헬스케어·바이오 분야 벤처기업 발굴에 나서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핵심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두산에너빌리티(Doosanenerbility)’라는 이름으로 사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새 사명은 오는 3월 열리는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을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분당두산타워. /두산 제공

에너빌리티는 에너지(energy)와 가능성(ability)이 결합한 것으로, 새 사명에는 수소에너지 등 친환경 발전 사업을 발굴하고 디지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포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화력·원자력 발전 설비와 담수플랜트 위주에서 신사업 강화 의지가 새 회사 이름에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두산중공업의 사명 변경은 22년 만이다. 두산중공업은 한라그룹 현대양행으로 1962년 출발한 후 주인과 사명이 바뀌며 부침을 겪어왔다. 1980년 대우그룹이 현대양행을 인수한 뒤 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이 바뀌었으나 얼마 안 돼 대우가 사업권을 박탈당하면서 국영화됐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민영화가 결정됐고 2000년 12월 두산그룹에 넘어가면서 두산중공업이 됐다.

KG스틸로 사명을 변경하는 KG동부제철. /KG동부제철 제공

철강 업계에서는 KG동부제철이 ‘KG스틸’로 사명을 바꾼다. KG동부제철은 지난 2월 23일 열린 이사회에서 상호 변경을 골자로 하는 정관변경안을 의결했다. 해당 안건은 오는 3월 말 열릴 주총에서 최종 결정된다.

KG동부제철의 사명 변경은 2019년 KG그룹에 인수돼 현재 사명을 사용한 지 2년6개월 만이다. KG동부제철은 사명 변경을 통해 내부 결집을 다지고, 올해를 재도약·새출발 원년으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특히 컬러강판 브랜드 엑스톤, 가전용 친환경 컬러강판(ECO PCM) 등의 제품 기술력을 앞세워 수출 증대와 고객 친화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구상이다.

이외에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강판도 지난 2월 17일 열린 기업설명회를 통해 사명 변경 추진 계획을 알렸다. 채택이 유력한 사명은 ‘포스코스틸리온’이다. 단순히 포스코에서 만드는 제품(포스코강판)으로 오인되거나 외부 투자자들의 혼선을 겪는 것을 막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일원화된 영문 사명 변경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

포스코강판은 올해 사명 변경과 함께 고급 강건재 브랜드 인피넬리 판매 확대와 차세대 컬러 프린트 기술 확보, 친환경 제품 개발 등 먹거리 확보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사명 변경, “비용보다 혜택 커”

2021년에도 친환경 바람을 타고 화학사 사이에 사명 변경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탄소중립 요구와 함께 ESG 경영이 주목되면서 화학사들이 잇따라 사명에서 ‘화학’을 뗐다.

SK종합화학은 2021년 9월 ‘SK지오센트릭’으로 사명으로 교체하면서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을 선포했다. 지오센트릭(geocentric)은 우리말로 ‘지구 중심적’이라는 뜻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탄소사업에서 그린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한화종합화학도 같은 달 ‘한화임팩트’로 사명을 바꾸고 기술혁신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SK종합화학도 지난해 사명에서 화학을 떼고 SK지오센트릭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SK지오센트릭 제공

사명 변경에는 상표 출원부터 상호 등기, 각종 문서 변경 등 번거로운 절차가 수반된다. 또 많게는 수십 억원에 달하는 비용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사명을 교체하는 이유는 들이는 비용보다 얻는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명 변경은 최근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나 지향점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자체적으로도 환기하는 효과가 있다”며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사명 변경으로 얻게 되는 효과가 크다고 판단되면 보통 기업들은 사명 변경에 나선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를 포함해 많은 투자를 유치하는 효과도 있다고 부연했다.

학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사명 변경이 사업간 경계 붕괴 현상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빅블러(Big Blur) 시대, 즉 기술 간 융합을 통해 이종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들이 기존에 없던 영역으로 신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사명 변경 작업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명에 ‘중공업’, ‘화학’ 등을 넣어 업종을 명확히 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게 효과적이었다면 이제는 오히려 사업 확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기업명은 급격한 트렌드 변화 속에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적 이미지를 부여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며 “다만 새 출발에 부합하는 사업 성과나 체질 개선, 실질적인 변화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 약화 등의 불안만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글 시시비비 키코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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