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생의 ‘문과침공’이 현실이 됐습니다. 입시와 취업전선에서 문과생들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입니다.

인문·사회 계열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을 넘어 ‘문망’(문과라서 망했다)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요. 정보통신기술(IT) 중심의 취업시장에서 갈 곳 잃은 문과생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면서 쓰는 말입니다. 문과생의 현실과 이들이 택한 대안책 등을 알아봤습니다.

KBS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에서 최후의 1인이 마지막 문제에 쓴 답안. /KBS

이과생 교차지원율↑…문과생은 ‘문들문들’

흔히 서울대 경영학과는 법학과에 이어 ‘문과 톱’이 진학하는 학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22년 이변이 생겼습니다. 서울대 경영대학 합격자 가운데 8명이 등록하지 않아 추가 합격자가 나온 것입니다. 이는 이례적인 일로 꼽히는데, 이과생들의 문과침공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2022학년도 수능 수학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과생들이 대거 주요 대학 ‘문과’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벌어진 일이죠.

최근 서울시교육청 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2022년 서울 주요 대학 정시모집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대상으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지역 22개 주요 대학 평균이 39.60%에 달했습니다. 서강대(80.3%), 연세대(69.6%), 중앙대(69.31%), 경희대(60.61%), 서울대(60.00%)에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이 두드러집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원인으로 2022년도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지목됩니다. 이전 수능에서 문·이과생은 국어와 영어만 공통으로 치르고, 수학과 탐구 영역은 각자 진로에 맞춰 따로 시험을 봤습니다. 수학의 경우 문과생은 문과생끼리, 이과생은 이과생끼리 등급과 점수를 매기는 구조였죠. 그런데 2022년도 수능부터 수학 영역에서 문·이과생 구분 없이 한꺼번에 등급과 점수를 매기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시험은 문·이과생 ‘공통과목’ 22문제와 ‘선택과목’ 8문제로 총 30문제가 출제되는데, 상대적으로 수학에 능한 이과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새로 도입된 ‘선택 과목에 따른 표준점수’ 제도에 따라 ‘미적분’이나 ‘기하’ 과목이 ‘확률과 통계’보다 더 높은 표준점수를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이과 계열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택하고, 문과 계열은 확률과 통계를 봅니다. 문·이과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죠. 이번 수능에서 수학 1등급을 받은 학생의 약 94%가 이과생이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이과생의 문과 침공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과생들이 수학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대입에서 유리한 위치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문과생은 대입문이 더 좁아졌습니다. 교차지원으로 합격한 이과생들이 다른 이과 계열 학과를 겨냥해 반수할 가능성도 커 재수생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수험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문들문들(문과 부들부들)하다”, “문과생이 무슨 죄냐, 너무 무섭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취업문도 ‘고생문’

바늘구멍같은 대학 입시를 통과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문과생에게 취업문은 더 좁습니다. 취업 시장에서 IT나 소프트웨어(SW) 중심의 이공계 선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문과생을 많이 채용했던 은행권도 지점을 줄이고,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할 인력을 집중적으로 뽑고 있습니다.

실제로 문과계열 전반에서 취업자 수가 줄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통계청의 ‘전공계열별 경제활동인구’ 자료를 보면, 인문학 전공 취업자는 2021년 1분기 2년 새 2만7700명이 줄었고, 사회과학·언론정보학은 8600명이 줄었습니다. 경영·행정·법학 역시 1600명 줄었습니다. 반면 교육이나 예술, 자연과학·수학·통계학, 정보통신기술, 공학·제조·건설, 농림어업·수의학, 보건, 복지, 서비스 등은 모두 취업자 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일자리의 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2021년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인문학 박사의 37.3%가 연봉 20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학 박사 취득자 중 연봉 2000만원 미만은 5.1%에 불과합니다.

반면 연봉 5000만원 이상인 인문학 박사 취득자는 18.4%로, 공학 박사 취득자(58.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취업 시장이 이공계 첨단 기술분야에 집중되면서 인문·사회학 전공은 존립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 155개가 사라졌습니다. 2012년에 962개였던 인문계 학과가 2021년 들어 807개가 되면서 16%가량 줄어든 것이죠. 반면 공학계열은 2012년 1333개에서 2021년 1446개로 113개(8.5%)나 늘었습니다.

개발자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스타트업’의 한 장면. /tvN

코딩 배우고, 자격증 따고…문과생이 살아남는 법

IT 중심의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코딩 등을 배우는 문과생들도 늘고 있습니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구직자 설문조사에서 ‘코딩을 배우고 싶다’고 밝힌 문과생 응답 비율은 63.8%에 달했습니다.

실제로 주요 IT 교육기관 교육생의 70% 이상이 비전공자였습니다. IT 교육 기관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데이터 사이언스 등 취업용 IT 기술을 가르칩니다. IT 교육기관 패스트캠퍼스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등 취준생이 선망하는 인기 IT기업의 약칭) 개발자 양성 과정’을 밟은 수강생 중 72%가 이과생이 아닌 문과, 예술계 등 비전공자였다고 전했습니다. 정부 예산을 받아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프랑스의 IT 교육기관(에콜42)과 운영하는 코딩학교(42서울)에도 문과생 교육생이 많습니다. 비전공자와 전공자 비중이 6대 4 정도라고 합니다.

대학들도 이런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는 모든 입학생이 졸업하려면 코딩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합니다. 컴퓨팅 사고와 소프트웨어 코딩, 문제해결과 알고리즘, 인공지능(AI) 기초와 활용, 데이터분석기초 등 소프트웨어(SW)와 인공지능(AI) 관련 과목 4개를 필수로 수강해야 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상아탑’을 넘어 취업 전선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습니다.

글 시시비비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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