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3월7일 ‘중고차사업 비전과 사업 방향’을 공개했습니다.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는 게 골자였는데요, 쉽게 말해 자사 중고차를 사들여 품질을 인증한 뒤 되파는 사업에 뛰어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수입차에 이어 국내 최대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마저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업계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당장 중소 중고차 매매업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기업이 직접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 중소업체는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소비자들은 “정보 비대칭성이 높은 중고차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며 현대차의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 소식을 반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고차 시장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현대자동차의 인증 중고차 서비스 소개 영상. /현대자동차 유튜브 캡처


◇중고차 매입∙검수 후 제조사가 되팔이

현대자동차는 수년 전부터 인증 중고차 사업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외국 자동차 브랜드가 오래 전부터 인증 중고차를 판매해왔습니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와 아우디 등 독일 3대 제조사뿐 아니라 포르쉐나 람보르기니 등 일부 슈퍼카 브랜드도 자체적으로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 고객이 타던 차뿐 아니라 전시차나 시승차를 수리와 품질 검사를 거쳐 도로 고객에게 판매합니다. 예를 들어 포르쉐는 2002년 포르쉐 인증 중고차(Porsche Approved)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문 기술자와 컨설턴트가 중고차 내부와 외관 상태, 주행거리와 사고 유무 등을 포함한 111개 항목을 검사하고 매입을 결정합니다. 매입한 차는 품질과 가치를 높이는 재상품화 과정을 거쳐 가격을 책정한 뒤 고객에게 선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7월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해 2021년 5월까지 2450대가 넘는 차량을 인도했습니다.

인증 중고차 시장의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지속되면서 신차 인도 기간이 길어졌는데요, 계약 후 차량을 받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리는 대신 인증 중고차로 고개를 돌리는 소비자도 많아졌습니다.

일부 중고차는 신차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데요, 이런 가격 역전 현상 또한 인증 중고차 시장의 인기를 더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 브랜드는 판매량으로 따지면 메르세데스 벤츠·BMW·아우디·폭스바겐 순인데요, 이들 4개 브랜드는 2021년에만 인증 중고차 2만8584대를 팔았습니다. 2017년에는 1만4902대, 2018년에는 1만9572대였습니다. 4년 만에 판매량이 2배가량 늘어난 셈입니다. 현재 한국 시장에 진출한 수입차 브랜드가 운영하는 인증 중고차 전시장은 총 93곳입니다. 독일 4개 회사가 그중 61곳(65.59%)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벤츠가 23곳으로 가장 많고, BMW가 20곳으로 2위입니다.

인증 중고차가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인 이유는 가격이나 출고 기간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객이 자동차 전문가이거나 전문가와 동행하지 않는 이상 개인 고객이 시장에 나온 중고차의 품질을 제대로 가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객이 차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사고차를 무사고차로 판매하거나, 하자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비싼 가격에 떠넘기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때문에 고객 입장에선 브랜드에서 인증한 중고차를 구입할 때 더 안심할 수 있고, 제조사 입장에서는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차량의 잔존가치를 끌어올려 중고차 가격을 방어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 제조사는 신차와 같은 보증 혜택을 제공하는데요, 이런 점도 소비자가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찾게 만들고 있습니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 포르쉐. /포르쉐 홈페이지 캡처

◇대기업이라고 군침만 흘린 현대차

이처럼 수입차는 다 하는 인증 중고차 사업을 그간 왜 현대차는 못했을까요. 2013년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란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3년 동안 해당 시장에 대한 투자나 직접 진출이 제한됩니다.

2016년 2월 열린 제39차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고차 매매업은 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 자동판매기 운영업 등과 함께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받았습니다. 2019년 2월 재지정 만료 이후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가 상생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담당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법정 기한이었던 2020년 5월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2022년 3월 9일 대선 이후로 결정 기일을 미뤘습니다.

현대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이 더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아닌 만큼, 대기업도 중고차 매매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현대차는 2021년 12월 본격적으로 인증 중고차 사업 진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현대차는 이미 해외에서는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현대차의 인증 중고차가 연간 8만대가량 팔립니다. 신차의 10% 수준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어쨌든 현대자동차를 바라보는 국내 중소 중고차 시장 관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대기업이 끼어들면 중소기업은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점유율을 뺏기다 결국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언젠가 대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제조사 대부분 자체적으로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하고 있다. /네이버 검색화면 캡처

현대차의 중고차사업 비전과 사업 방향을 보면 소비자가 혹할 부분이 많습니다. 현대차는 5년, 10만km 이내 자사 차량을 대상으로 인증 중고차를 판매한다고 밝혔는데요, 전용 하이테크센터에서 200개 항목을 대상으로 품질검사와 수리를 거친 자동차만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시세나 판매 순위를 제공하는 통합정보 포털을 만들고, 기존 차량을 매입하고 신차를 할인해주는 보상판매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또 가상현실을 활용한 온라인 가상 전시장도 열 계획입니다. 마치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처럼 중고차를 팔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중소기업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시선 때문인지 시장 점유율은 자체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는데요, 2022년 2.5%로 시작해 2023년 3.6%, 2024년 5.1%까지만 점유율을 올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대선 이후 3월 중 중고차 시장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심의위원회를 개최합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조건부로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허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과연 앞으로 중고차 시장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글 시시비비 영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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